문화공감

목차보기
문화공감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화공감 – 릴레이기고 #2
나는 대구예술발전소의 8기 입주 작가이다.
글_최민경 대구예술발전소 8기 입주 작가
나는 대구예술발전소의 8기 입주 작가이다.
2018년 12월에 있었던 성과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소소하게 기록해본다.
D-27일
대구예술발전소 P주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웹진 ‘대문’에 글을 기고하면 어떻겠나 하신다. “아……. 선생님… 개인전 준비 때문에… 글솜씨도 없는데……” 나는 자꾸 말끝을 흐린다. 주임님께서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업을 글로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설득하신다. 다정한 주임님의 목소리에 한없이 약해지는 나.
대구예술발전소 8기 입주작가 성과전 아이디어 스케치
D-26일
성과전이 얼마 남지 않은 입주 작가 K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녀의 손톱이 예쁜 갈색으로 칠해져있다. 난 다크한 검정색인데… 색색의 손톱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서로의 손을 바라보며 웃는다.
D-25일
세상에는 다수의 좋은 작가들이 있고 수많은 멋진 작품들이 있다. 대체 내가 왜! 작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자기만족인가?
D-24일
대구예술발전소는 창작공간으로서 장점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위치가 정말 예술이다. 서문시장, 북성로, 동성로가 가까워서 걸어서 재료들을 구입하러 갈 수 있다. 초반에는 서문시장을 갈 때마다 헤맸다. 이제는 1지구, 2지구, 아진상가 등을 단번에 찾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곧 예술발전소를 떠나야 하다니…아쉽다.
대구예술발전소 8기 입주작가 성과전 아이디어 스케치
D-23일
점심을 홀로 먹으며 영화 ‘스타 이즈 본’을 봤다. 컨트리 음악을 하는 스타가수인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은 외모에 자신이 없는 가수지망생 앨리(레이디 가가)에게 말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내 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에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그렇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구예술발전소 작업실 전경
D-20일
모든 작업들마다 애로 사항이 있겠지만, 설치 작업은 공간에 따라 좌우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전시 장소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야 한다.
벽에 붙었다 때었다 하면서 매번 점검을 해야 하니 하루에도 수없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대구예술발전소 4층 작업실은 천장이 높고 배관 시설들이 드러나 있는 멋진 공간으로 규모 있는 작업들을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벽에 사다리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바깥 야경을 바라볼 때 낭만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설치 작업 중간 점검
D-19일
전시에 쓸 작가노트를 C에게 보여줬다.
C 왈,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 약쟁이가 쓴 거 같아. 또라이 같애.” 라고 말한다. 조금 미안한지 “나쁜 건 아니다.” 라고 덧붙인다.
내가 봐도 또라이가 쓴 글 같긴 하다. 뭔가 정상적이고 근사하게 포장해서 쓰고 싶은데 방도가 없다. 내년에는 대구예술발전소에 작가와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C는 발터 벤야민의 책 같은 걸 읽고 영감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상징의 토르소’ 그런 말 얼마나 멋있냐며…
‘야! 나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읽었다고!’
부유하는 머리 부분
D-18일
스튜디오에 온 작가 L에게 작업이 어떠한가 물어보니 작업실 정리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작업에 대해 언급하기 힘들어서 그러나? 아니다. 작가 L은 아주 솔직한 사람이다. 내 작업실은 지금 혼돈 그 자체이다. 청소 해야지 하다가 생각한다.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인데 무슨 정리란 말인가…
한옥에 설치하여 중간 점검
D-16일
그동안 작업한 것들을 꾸역꾸역 차에 실어 시골집으로 갔다.
돌이켜보면 내 일생이 보따리 장사꾼처럼 짐을 한가득 가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노마드다. 미니멀하게 살고 싶은데 도무지 불가능하다.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으니 포기하자.
설치를 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어떤 작업은 전시에 내놓지 말자는 판단이 섰다. ‘저 작업은 페이크밍크만 사는데 이십만 원 썼는데……’ 재료비 쓴 것보다 알맞은 재료를 구하겠다고 서문시장을 오고 다닌 시간이 아쉽다. 그래도 중간 점검을 해서 다행이구나 싶다.
부유하는 머리 세부
D-14일
전시가 2주 남았다. 변수들은 어김없이 솟아오르고 절망과 기쁨이 교차하는 나날이다.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들, 그 자체는 만족감을 주지만 결과물을 볼 때는 불행하다.
처음으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서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작업을 못했고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곳에서 용기를 얻고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
나의 첫사랑 같은 대구예술발전소.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