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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릴레이기고 #1
포즈에 갇힌, 납작한 사람들
글_김용선 사진가
아버지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술을 마시다 느닷없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영정사진으로 쓸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연신 고개를 휘저었으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걸쳐 입었다. 결국엔 평소 가지고 다니던 자동카메라로 얼렁뚱땅 사진을 찍고 앞에 있던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켰다. 그런데 그게 정말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찍은 사진이 그렇게 낯설어 보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여기 있다는 증거가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흔적이 됐다. 사진은 무엇인가. 내게 내내 풀리지 않은 질문이었다. 손으로 만져지던 아버지가 정말 저 납작한 종이에 압축되어 버리니 사진에 대한 질문에 나는 길을 잃었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대상과 마주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진의 특성을 정말 재현이라고 해도 좋을까. 촬영자는 카메라 뒤에 숨고 대상은 포즈 뒤에 숨는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겉껍질이 너무 많다. 속에 있는 알맹이 보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작은 카메라에 몸을 우겨넣듯이 눈을 갖다 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진을 찍는 일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작은 방으로 비집고 들어가 밖으로 난 창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창밖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상들은 본래의 제 모습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본인다운 모습을 연기하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우리가 숨는 곳은 포즈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단어 뒤에도 숨는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골라 사용할 땐 그것이 음성이나 문자의 형태를 띠어서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하지만 사실 단어 역시 카메라와 같이 하나의 방이다. 그 안에 들어가 자신을 숨기고 각 단어에 맞는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것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나는 늘 방 안에 숨어 세상을 내다본다.
<모범 약국 옆 두 번째 빨간 집 #6, Pigment Print, 가변크기 2016>
「Journal Extine」(2014-2015) 시리즈는 이런 고민에서 나온 산물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숨어 제 모습을 숨기기에 급급한데 한 개인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포즈에 갇힌 우리 모습을 찾아보기로 한다. 우선 촬영에 앞서 각각 모델과 세 번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를 둘러싼 각각의 포즈를 살펴본다. 취향으로 대변할 수 있는 모델의 오브제. 인터뷰 도중 입버릇처럼 했던 말. 인터뷰를 통해 받은 모델의 인상. 모델은 20대로 한정했다. 명확하진 않지만, 무엇이 되어버린 나이. 스무 명을 인터뷰하는 동안 내 이야기 역시 다른 이에게 스무 번 이야기했다. 나는 대상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이야기했다. 내 포즈는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작업 과정 중 내 이야기를 빼내며 내가 가진 포즈를 확인하는 것으로 정리가 돼버렸다. 내겐 주머니 속 담뱃재 같은 작업이다.
<계획의 계획 #18, pigment print, 120x180cm, 2015>
2015년 가창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여름 나는 대구문화재단 지원 사업 중 하나로 중국 항저우에 있었다. 아무 정보가 없는 곳에서 나는 습관처럼 세상의 여러 이미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무엇과 무엇이 충돌하는가. 중국에선 늘 길 위에 있었다. 중국은 공사 중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계획은 거짓말의 생존전략과 많이 닮았다. 자연을 밀고 들어온 자리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그 자리에 다시 자연을 내세우며, 자신이 숨기는 것은 무엇이고 대신 무엇을 드러내는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 본래의 사실을 은폐하기보단 유치하고 뻔뻔하게 일부러 티를 낸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드러내기와 감추기를 반복하며 제 모습을 흐리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겉껍데기처럼. 길을 걸으며 몸에 밴 포즈들을 싹 벗겨버리고 싶었다. 주관적 시점은 싹 지워버리면 포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포즈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내 몸은 점점 뻣뻣해졌다.
2015년 가창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전시 설치 전경
포즈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모습에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 둘, 셋하고 찍을 때 행동을 정지하는 순간이 아닌 그 전에 옷 매무새를 만지는 모습,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참았던 숨을 풀고 삐져나오는 날숨을 들여다 봐야 한다.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우리는 포즈에서 벗어 날 수 있다.「모범약국 옆 두 번째 빨간 집」(2012-2017)은 어릴 적부터 생활했던 공간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풀고자 했던 작업이다. 홍등가에서 자랐던 나는 늘 실체가 없는 비밀과 마주해야 했고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발설해선 안 됐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나는 내가 서있는 곳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홍등가에서 지내면서 봐온 것들은 법이나 사회 인식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 작업을 풀기 위해 나는 어떤 형식, 이를테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했다. 골목길 하나를 두고 홍등가에서 나와 일반인의 대열에 올라타며 내 자리는 어디인지 갈팡질팡했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그대로 보여줘야 했다. 설령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더라도.
<Journal Extime_동건, Pigment Print, 51x61cm, 2014>, <Journal Extime_명선, Pigment Print, 51x61cm, 2014>
다시 아버지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와 나는 사진을 찍으며 잠시 숨을 참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아버지의 첫 날숨은 내 막걸리 사발 바닥처럼 허옜다. 아버지는 숨을 참으며 어떤 결심을 했던 것일까.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모습이길 바랐을까. 종종 아버지의 마지막 포즈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아버지가 살던 집에 들어가 지냈다. 쓰다만 연애편지처럼 쪼그려 앉아 몸을 벅벅 씻었다. 아니 몸에 난 주름을 폈다. 그렇게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지만 이미 구겨진 건 말끔히 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가만히 포즈를 취해본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가 저 납작한 지지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