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술 공간들이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구에만 약 100여 곳 이상의 미술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미술계의 상황과 비교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여기에 매년 새로운 공간들까지 알게 모르게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규모의 차이는 있다. 공간별로 선보이는 미술의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취향도 각각이다.
다만 이 같은 외형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곳이 바로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멋진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일종의 ‘미술 박물관’이다.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연구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도 현재 1천여 점이 넘는 작품이 소장돼 있다. 주로 유명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기에 자산적인 가치도 상당하다.
이 정도 규모의 미술관이 또 있다. 두류공원에 위치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이곳의 소장품 역시 1천여 점이 넘는다. 특히 소장품 대부분이 대구 출신 작가 위주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의 전시나 기획은 주로 지역 미술에 집중돼 있다. 총 13개의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어 현재 대구에서는 가장 많은 숫자의 전시 공간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대구미술관’이 국내외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세련된 미술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이곳은 지역 미술을 기반으로 좀 더 고전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이러한 미술관의 형태는 앞으로 지역 내에서도 더욱 다양해질 전망인데, 최근에는 ‘대구간송미술관’, ‘근대미술관’ 등도 건립 논의 중이다. 다만 아직은 이들 가운데 ‘미술 박물관’으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소장품의 가치를 활용한 상설 전시라도 마련된다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는 전시에 따라 얼마간의 입장료를 받기도 하는 미술관보다 더 반가울 때도 있다. 무엇보다 대구에는 괜찮은 화랑들이 꽤 있다. 주로 잡지나 일간지 등의 지면에서 언급되는 국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곳들이다. 이들의 전시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혜택에 가깝다.
우선 서울에서도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리안갤러리’는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화랑이다. 프랭크 스텔라, 키키 스미스, 알렉스 카츠 등의 해외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손갤러리’ 역시 토니 크랙, 야니스 쿠넬리스 등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해외 작가들과 이강소, 정상화, 하종현 등의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다. 미니멀아트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성격을 선보이는 ‘갤러리 신라’도 있다. 국내를 비롯해 프랑스, 일본, 미국 등지의 미니멀아트 작업들을 주로 소개한다.
그런가 하면 ‘동원화랑’은 대구 화랑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주로 회화를 그리는 국내 중견 작가들이 한번쯤은 거쳐 간 곳이다. ‘갤러리 분도’에서는 현재 대구의 주요 작가들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매년 대구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도 열고 있다. ‘갤러리 전’ 역시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을 대구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보데갤러리’, ‘피앤씨갤러리’, ‘을갤러리’ 등 굵직한 해외 작가들을 소개하는 곳들도 운영 중이다.
‘갤러리 소헌’, ‘키다리갤러리’ 등 대구의 화랑가 봉산문화거리에서 꾸준히 자기만의 색채를 이어가는 화랑들도 있다. 회화 중심의 ‘대백프라자갤러리’를 필두로 각 백화점별 화랑들도 활발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작가들이 전시하고 싶은 공간으로 더 유명한 ‘갤러리 아소’ 같은 화랑도 있다. 이쯤 되니 무슨 가볼 만한 카페를 소개하는 느낌도 들지만, 마냥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의 침체와 환경적 변화로 최근에는 봉산문화거리 화랑들이 예년에 비해 갈수록 활기를 잃는 등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미술 공간은 이러한 ‘미술관’과 ‘화랑’을 비롯해 이 두 가지의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나려는 ‘대안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대구에도 10여 년 넘게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싹’과 같은 대안 공간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형식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공간들이 더 많다. 물론 이들 공간은 대부분 ‘비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웬만한 화랑이나 공간보다 더 많은 국내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펄’을 비롯해 ‘[b]스페이스’, ‘아트클럽 삼덕’, ‘굿스페이스’, ‘리알티’, ‘루모스’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 전시장’들이 그 예다. 여기에 미술도서관이자 전시 공간이기도 한 ‘아트도서관’도 있다. 형식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는 만큼 개관 시간이나 전시 등의 운영 방식도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포토존을 통해 SNS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대구예술발전소’도 있다.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한 이곳에서는 레지던시와 더불어 독특한 형태의 전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인근에 위치한 새로운 창작 공간 ‘수창청춘맨숀’,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 자리한 미술 공간 ‘닷 자갈마당 아트 스페이스’와 함께 수창동 일대에 새로운 미술 관광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창작 공간’은 대체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다.
한편, 구별로 위치한 ‘공공 전시장’은 오늘날 지역 미술계의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부터 중견, 원로 작가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대부분의 전시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술 공간은 ‘미술’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미술과의 서먹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다. 이들 공간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다름 아닌 ‘전시장의 문턱’으로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처럼 많은 미술 공간들이 대구에 문을 열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함이 아닐까.
SNS 상에서의 모습이지만, 그 문턱이 심리적으로나마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반갑다. 여기에 그보다도 물리적으로 더 많은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낮아지는 문턱 너머에서 미술도 이를 환영하는 듯하다. SNS를 통해 올라 온 작품들의 모습도 어쩐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