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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 공간들
글_이승욱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대구에도 SNS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미술 공간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끔 일을 핑계 삼아 그렇게 SNS 상에서 공유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먼저 심리적으로나마 전시장의 문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여느 카페에서 찍는 사진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모습들 때문이다. 어쨌든 긍정적이다. 비록 젊은 여성층에 한정된 현상일지라도 말이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술 공간들이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구에만 약 100여 곳 이상의 미술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미술계의 상황과 비교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여기에 매년 새로운 공간들까지 알게 모르게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규모의 차이는 있다. 공간별로 선보이는 미술의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취향도 각각이다.
대구미술관 <쿠사마 야요이>전 전시장 전경
아무래도 그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대구미술관’이다. 2013년 32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 <쿠사마 야요이>展으로도 화제가 됐던 곳이다. 올해도 <간송 조선 회화 명품>展과 <김환기>展을 통해 19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이곳의 특징은 현재 대부분의 국내 국공립미술관이 그러하듯 대규모의 현대미술 전시를 주로 선보인다는 것. 그로 인해 대구뿐 아니라 현재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그것도 비교적 근사한 전시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다.
다만 이 같은 외형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곳이 바로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멋진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일종의 ‘미술 박물관’이다.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연구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도 현재 1천여 점이 넘는 작품이 소장돼 있다. 주로 유명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기에 자산적인 가치도 상당하다.

이 정도 규모의 미술관이 또 있다. 두류공원에 위치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이곳의 소장품 역시 1천여 점이 넘는다. 특히 소장품 대부분이 대구 출신 작가 위주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의 전시나 기획은 주로 지역 미술에 집중돼 있다. 총 13개의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어 현재 대구에서는 가장 많은 숫자의 전시 공간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대구미술관’이 국내외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세련된 미술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이곳은 지역 미술을 기반으로 좀 더 고전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①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 ② 경북대학교미술관(사진출처_페이스북) ③ 인당뮤지엄(사진출처_홈페이지)
공교롭게도 이들 두 미술관은 모두 대구시가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공공적 특징을 보여주는 예다.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듯 현재 지역 내 각 대학에도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미술을 비롯해 만화, 포스터 등의 독특한 전시들을 선보이는 ‘경북대학교미술관’, 국내 유명 작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이는 대구보건대학교의 ‘인당뮤지엄’, 또 계명대학교의 ‘극재미술관’ 등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미술관도 있다. 서예나 한국화 등 동양미술을 다루는 곳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소헌미술관’은 서예가 소헌 김만호의 작품과 자료 1천여 점을 모아놓은 서예 전문 미술관이다. ‘학강미술관’은 한국화가 김진혁이 직접 수집한 2천여 점의 고서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조선 및 근대 전후의 고서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으로도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에 2015년 작고한 한국화가 정치환의 작품을 전시하는 ‘정치환미술관’도 얼마 전 개관했다.
이러한 미술관의 형태는 앞으로 지역 내에서도 더욱 다양해질 전망인데, 최근에는 ‘대구간송미술관’, ‘근대미술관’ 등도 건립 논의 중이다. 다만 아직은 이들 가운데 ‘미술 박물관’으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소장품의 가치를 활용한 상설 전시라도 마련된다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다.
학강미술관
물론 이와는 또 다른 의미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공간도 있다. ‘갤러리’라고도 불리는 ‘화랑’이다. 화랑은 본래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렇다고 마냥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공간이라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전시에 따라 얼마간의 입장료를 받기도 하는 미술관보다 더 반가울 때도 있다. 무엇보다 대구에는 괜찮은 화랑들이 꽤 있다. 주로 잡지나 일간지 등의 지면에서 언급되는 국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곳들이다. 이들의 전시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혜택에 가깝다.
우선 서울에서도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리안갤러리’는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화랑이다. 프랭크 스텔라, 키키 스미스, 알렉스 카츠 등의 해외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손갤러리’ 역시 토니 크랙, 야니스 쿠넬리스 등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해외 작가들과 이강소, 정상화, 하종현 등의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다. 미니멀아트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성격을 선보이는 ‘갤러리 신라’도 있다. 국내를 비롯해 프랑스, 일본, 미국 등지의 미니멀아트 작업들을 주로 소개한다.
① 리안갤러리 ② 우손갤러리(사진출처_홈페이지) ③ 갤러리 분도

그런가 하면 ‘동원화랑’은 대구 화랑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주로 회화를 그리는 국내 중견 작가들이 한번쯤은 거쳐 간 곳이다. ‘갤러리 분도’에서는 현재 대구의 주요 작가들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매년 대구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도 열고 있다. ‘갤러리 전’ 역시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을 대구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보데갤러리’, ‘피앤씨갤러리’, ‘을갤러리’ 등 굵직한 해외 작가들을 소개하는 곳들도 운영 중이다.
‘갤러리 소헌’, ‘키다리갤러리’ 등 대구의 화랑가 봉산문화거리에서 꾸준히 자기만의 색채를 이어가는 화랑들도 있다. 회화 중심의 ‘대백프라자갤러리’를 필두로 각 백화점별 화랑들도 활발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며, 작가들이 전시하고 싶은 공간으로 더 유명한 ‘갤러리 아소’ 같은 화랑도 있다. 이쯤 되니 무슨 가볼 만한 카페를 소개하는 느낌도 들지만, 마냥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의 침체와 환경적 변화로 최근에는 봉산문화거리 화랑들이 예년에 비해 갈수록 활기를 잃는 등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미술 공간은 이러한 ‘미술관’과 ‘화랑’을 비롯해 이 두 가지의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나려는 ‘대안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대구에도 10여 년 넘게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싹’과 같은 대안 공간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형식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공간들이 더 많다. 물론 이들 공간은 대부분 ‘비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웬만한 화랑이나 공간보다 더 많은 국내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펄’을 비롯해 ‘[b]스페이스’, ‘아트클럽 삼덕’, ‘굿스페이스’, ‘리알티’, ‘루모스’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 전시장’들이 그 예다. 여기에 미술도서관이자 전시 공간이기도 한 ‘아트도서관’도 있다. 형식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는 만큼 개관 시간이나 전시 등의 운영 방식도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b]스페이스
입주 공간과 전시장이 결합된 형태의 ‘창작 공간’도 있다. 국내 미술계의 추세에 따라 현재 이들 대부분은 문화재단 등의 공공 영역에서 운영 중이다. 전국적인 레지전시로 자리매김한 ‘가창창작스튜디오’와 범어역 지하도를 거점으로 하는 ‘범어아트스트리트’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포토존을 통해 SNS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대구예술발전소’도 있다.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한 이곳에서는 레지던시와 더불어 독특한 형태의 전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인근에 위치한 새로운 창작 공간 ‘수창청춘맨숀’,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 자리한 미술 공간 ‘닷 자갈마당 아트 스페이스’와 함께 수창동 일대에 새로운 미술 관광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창작 공간’은 대체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다.
한편, 구별로 위치한 ‘공공 전시장’은 오늘날 지역 미술계의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부터 중견, 원로 작가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대부분의 전시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① 대구예술발전소 전경 및 내부 ② 갓 자갈마당 아트 스페이스(사진출처_홈페이지)
어느덧 대구 현대미술계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봉산문화회관’은 유리상자, 기억공작소 등의 전시들로 대구를 비롯한 국내 현대미술계의 주요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서양화가들을 중심으로 지역 작가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는 ‘수성아트피아’ 역시 지역 미술계의 주요 전시들이 열리는 공간이다. 이밖에도 웃는얼굴아트센터, 아양아트센터, 어울아트센터, 대덕문화전당 등 각 기초자치단체 혹은 산하 재단에서 운영 중인 이들 공간은 무엇보다 인근 주민들을 포함해 누구나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미술 공간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들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술 공간은 ‘미술’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미술과의 서먹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다. 이들 공간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다름 아닌 ‘전시장의 문턱’으로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처럼 많은 미술 공간들이 대구에 문을 열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함이 아닐까.
SNS 상에서의 모습이지만, 그 문턱이 심리적으로나마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반갑다. 여기에 그보다도 물리적으로 더 많은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낮아지는 문턱 너머에서 미술도 이를 환영하는 듯하다. SNS를 통해 올라 온 작품들의 모습도 어쩐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