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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리뷰
글_서영완 작곡가

대구시립무용단 DCDC(Daegu Contemporary Dance Company)의 예술 감독 김성용은 그의 첫 작품 ‘군중-세상을 향한 양날의 검’으로 지난 2017년 12월 우리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을 가득 매운 그때의 감동 이후 10개월만인 지난 2018년 10월, 그와 대구시립무용단의 두 번째 작품 ‘트리플 빌(Triple Bill)’은 또 한번 우리의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첫 번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장면장면의 에너지가 채 가시기 전이기도 했고 그 무대가 우리에게 남겨두었던 감동이 컸던 만큼 그 두 번째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이 작품의 음악작곡을 맡아 줄 것을 제안 받은 순간 나에게도 큰 부담으로 공유되는 모양이 되었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장면

 

첫 정기공연 작품제목은 김성용 감독의 폭력을 소재로 한 연작시리즈 중 하나인 ‘군중’으로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그 작품이 지닌 함의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작품 ‘트리플 빌’은 사뭇 다른 뉘앙스를 가졌다. 3의 개수를 뜻하는 ‘트리플(Triple)’, 그리고 영수증을 뜻하는 빌(Bill)의 합성어로 되어있어 제목만으로는 작품과의 계연성을 짐작하게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티켓 한 장으로 세 가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형식을 일컫는 단어라는 점에서 그 기획의도는 충분히 전달되는 제목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김성용 감독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컴퍼니인 벨기에 ‘니드컴퍼니’와 이스라엘 ‘키부츠 컨템프러리 댄스컴퍼니’에서 활동중인 한인 안무자 허성임과 김수정의 두 작품과 함께 무대에 올려졌다. 한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감독으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도였을지는 모르지만 안무자로서의 개인보다는 예술감독으로서 시립무용단 단체를 먼저 생각하는, 또한 대구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고려한 김성용 감독의 배려깊음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숙제는 이 세 개의 작품이 어떻게 한 무대 안에서 서로 다른 뉘앙스를 관객들에게 전달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각각의 작품들이 어떻게 하나의 큰 작품으로 연결 될지였을 것이다. 자칫 각각의 틀이 전체의 틀을 흐트러 버릴 수도 있다는 이러한 위험은 조명이라는 무대장치로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어 이런 위험을 현명하게 비켜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중책의 주인공은 LG아트센터에서 다년간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 단체들의 조명을 감당했던 송영견 감독으로, 모든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최대한 관객에게 의미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듯 했으며 각각의 작품을 통해 다양하고 과감한 표현적 접근을 보여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무대로 모아주기에 충분했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Vedi, Amavi.> 장면

 

공연이 있었던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은 공연전 이런 여러 가지 난관을 알리 없는 많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그리고 무용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 그리고 일반시민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모습에서 가히 시립무용단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무대에 들어서자 내려진 막위에 그려진 수성못의 오리배 그림은 그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약간은 난감한 기분을 만들었지만 이내 시작종이 울리고 어두워진 장내는 첫 번째 작품을 기다리는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조명이 켜진 후 첫 번째 작품인 김수정 감독의 ‘Vedi, Amavi.’가 반복되는 현악기의 힘찬 선율과 함께 무용수의 몸동작만을 강조한 조명으로 시작되었다. 한명 한명의 무용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음악은 더욱 강렬해지고 이후 갑자기 음악이 멈춰선 자리에서는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몸을 두드려 내는 규칙적이고 원초적인 리듬으로 그 첫 번째 클라이막스를 정리했다. 이후 쓰러지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일으켜 세우기를 실패하는 장면 이후 이어진 두 번째 크라이막스로 연결된다. 13개 각각의 조명아래 가로로 늘어선 안무자들은 뿌려지는 스모스를 뒤로하고 일렬로 줄지어서서 무대 앞뒤로 분주히 움직이며 펼쳐지는 군무로 시작 되었다. 무대의 앞부분과 뒷부분, 두 개의 레이어를 입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 무용수들은 무대 앞과 뒤로 번갈아 움직이고 그 13명의 통일된 움직임은 때로는 1명, 때로는 3명의 무용수만을 남기면서 분리된다. 이 화려한 움직임은 절제되고 반복되는 안무를 통해 긴장의 정점으로 끊임없이 치닫고 있지만 육중하리만큼 무거운 리듬이 강조된 음악, 무대 앞부분과 뒷부분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조명(뚜렷한 몸짓을 보여주는 무대 전반부 조명, 그리고 무용수의 실루엣만을 강조하는 무대 후반부의 조명)이 그 정점을 더욱 상승시켜 주었다. 13명의 무용수만으로 그런 거대한 흐름을 연출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첫 번째 무대를 맡은 김수정 안무가의 역할은 충분했다고 보여진다. 보여진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장면

 

두 번째 무대는 허성임 안무가의 ‘Meaningless meaning.’으로 ‘의미없음의 의미 있음.’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미없음의 의미’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충실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작가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의미 없는 움직임의 의미와 의미 있는 움직임의 의미…’라 적혀있었다. 의미없음이 반복되었을 때, 그 반복은 의미 없음 위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의미는 곧 우리들에게 어떠한 질문으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보여지는 작품이다. 의미는 우리의 과거와 맞닿아있다. 과거의 회상, 과거에 대한 후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허성임 감독의 이번 작품을 통해 감상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과거에 묻혀진 어떤 기억세포를 일으켜 세우게 만들까 라는 기대감으로 두 번째 무대는 시작되었다. 여성무용수 9명으로만 이루어진 이번 작품에서 모든 무용수들은 서로 밀착되어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움직임으로 마치 역할이 정해진 놀이를 하는 듯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무용수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거친 숨을 내 몰아쉬는 가운데 부르는 느린 노래가 나오는 장면을 포함시켜 그 극적인 느낌을 배가 시키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중후반부에 나오는 리듬이 강조되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짙게 사용되었다. 9명의 무용수 각각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가혹하리만큼 강렬한 역할을 통해 반복되는 동작들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었고 그 마지막의 동작과 음악 그리고 조명은 인간에 대한 근본의 외로움, 그것을 통해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손을 들어 ‘안녕’이라는 인사로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장면

세 번째 작품은 김성용 감독의 작품 ‘선물(The Gift)’이다. 특이할 점은 대구 정기공연을 목표로 서울과 베트남의 관객들을 통해 실질적인 검증과정과 테스트를 거친 후 이번무대에 올려 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그가 얼마나 이 정기공연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실제 많은 리뷰를 통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 ‘선물’은 김성용 감독의 작품해설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길 끝에서 보니 어느 것 하나도 헛것이 없다.’라는 문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의 길이인 30분이라는 시간을 통해 6명의 무용수들은 각각의 안무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전달하고 그 개개의 몸짓들은 결국 모든 무용수들을 통해 공유되며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 잡으면서도, 때로는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의 이미지로 분화된다. 이런 복잡한 구조는 6명의 무용수들의 여러 조합을 이루게 만들고 마침내는 하나의 통일된 몸짓, ‘선물’로 이어진다. 음악 또한 6명의 무용수 각각을 나타내는 6개의 특징적인 소리들로 작업되어졌다. 안무와 마찬가지로 6개의 특징적 소리들은 서로 다른 조합과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여러 장면들이 진행됨에 따라 그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완시키는 유기물로 완성되어졌다. 김성용 감독의 작품은 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마치 높은 위치에 무용수를 배치함으로서 작품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게 하는 것처럼 이번 무대에서는 무대 좌측 상단에 6명 각각의 무용수들을 각각 한번씩 스크린상에 클로즈업 되게 했다. 이는 전체 작품속에 존재하는 무용수들의 의미를 개인적이고 직접적으로 관객들과 연관되게 하면서 무대에서 연기하는 무용수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관계 또한 유기적으로 묶어버리고 있다. 이를 통해 ‘선물’은 이내 ‘존재’, ‘관계’, ‘공존’으로 그 공간을 매우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조명은 굉장히 소극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소극적인 조명은 하얀 플로어 우측에 배치된 투명책상과 의자, 그리고 왼쪽 상단에 위치한 하얀 스크린을 시종일관 밝게 비추고 있다. 이렇게 무대위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고 있는 오브제들은 장면 장면의 변화에 따라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공연장에 채워지게 했다. 이러한 송영견 감독의 조명 이미지는 또한 모든 무용수들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최대한의 의미로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세심하게 컨트롤 되었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트리플 빌’ 장면

이번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트리플 빌’은 김수정, 허성임 그리고 김성용 감독의 작품들로 ‘규모’, ‘섬세함’,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젊은 안무가들은 이곳 대구에서 세계를 품는 엄청난 에너지를 ‘이정도면 잘 했지’, ‘대견하다’의 수준이 아닌 어느 곳에 내어 놓아도 자랑스러울 최상의 수준으로 무대위에 쏟아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있었던 정기공연은 대구시립무용단의 새로운 비상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그 비상은 관객들을 기대하게 하고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예술단체로서 성장케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단체의 주체인 단원들의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우수한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직 젊고 어린 무용수이 꿈을 키울 것 이라는 점 등에서 그러하고, 또한 이번 ‘트리플 빌’은 ‘의미 있는 사랑 가득한 선물’로 우리에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