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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지금, 여기
글_강민희 대구한의대학교 조교수
1. 가장 일상적인 곳을 찾아서
익숙한 단어가 현실을 환기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런 단어 앞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기준 아래 내렸던 판단과 선택을 잠시 미루고 냉엄한 현실을 또렷이 보려고 애쓰게 된다. ‘지금, 여기’는 그런 단어 중 하나다. 이 말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고 대상과의 관계성을 생각하고, 이를 통해 이전보다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거나 이러한 가치에 부합되는 판단과 선택에 가까워진다. 그렇다. ‘지금, 여기’라는 말은 물리적 시공간을 특정하는 단어일 뿐 아니라, 일상에 대한 소박한 윤리학이기도 하다.
때로는 ‘지금, 여기’가 공동체의 비극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실마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비극이 “자신에겐 너무나 복잡 미묘한 삶의 많은 국면들이 타인의 삶에서는 아주 쉽고 단순해 보인다는 점(최윤필, 󰡔겹겹의 공간들󰡕)”에서 비롯됨을 고려할 때, 공동체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지금, 여기’를 살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지금’부터 우리들의 ‘여기’를 살펴보자. 어디가 좋을까? 그래, 도시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이 좋겠다. 편의점 같은 곳 말이다.
대구 롯데백화점(대구점)에 위치한 2층 건물의 ‘이마트 24편의점’
2. 새로운 일상의 시작
1992년 3월. 대구 최초의 편의점인 훼미리마트가 문을 열었다.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의 낮은 차원에서의 필수품(「신용카드」, 「동아일보」 1990.4.13.)”을 파는 24시간, 연중무휴의 “서구식 구멍가게.” 누군가는 의아했을 것이다. 뭣 하러 그 밤에 가게를 열어둔담, 전깃세 아깝게. 그 시간에 가게에 갈 일이 있겠어? 명절도 안 쇤단 말이야?
그러나 24+1의 시계를 가진 편의점을 찾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매일 1천 명이 넘는 이가 드나들었고,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은 2백만 원에 이르렀다. 같은 규모의 슈퍼마켓이 벌어들이는 금액의 2배 수준이었다. 편의점은 빠르게 확산됐다. 훼미리마트, LG25, 로손, 바이더웨이, 에이피엠, 아리랑마트, 써클-K, 그린마트, 코오롱마트, PEOPEL 24 등이 1백 50여개나 들어서 겨우 2년 만에 편의점 리좀(rhizom)이 형성됐다.물론 편의점도 부침을 겪었다. 1995년 상반기부터 문 닫는 편의점이 늘었다. 24시간 영업은 관리비 부담으로, 각종 경비 상승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졌다. 가격파괴형 점포가 늘고 경기침체가 지속된 것 역시 편의점의 폐점을 부추겼다. 곳곳에서 이러한 어려움이 지속될 것임을 단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편의점은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시키려는 듯 꾸준히 점포수를 늘렸다.
2018년 8월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인·허가 하는 업종별 데이터 개방’에 따르면 대구의 편의점 점포수는 328개로 인구 7,560명 당 1곳에 이른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의 산업과 서비스를 통합하고 흡수하며 때로는 연계하면서 금융과 치안, 복지 등에 관련된 공적 영역까지 진출했다. ‘서구식 구멍가게’가 사회적·문화적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고, 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편의점.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편의점의 불빛은 밝고, 밝으며, 밝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두 가지 빛, 네온사인과 편의점
3. 도시의 오아시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40평에 달하는 편의점은 2만여 종의 품목을 구비하고, 20평 남짓한 곳도 5천 종에 달하는 물건을 갖춘한다니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데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진지하게 찬거리를 고르는 주부, 고액을 인출하는 사람, 많은 양의 택배를 보내는 이들은 드물다. 그저 각자의 사정으로 헐레벌떡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온 이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목마른 사슴인 우리는 편의점에서 낮에 부치지 못한 택배의 송장을 작성하고, 수수료가 아깝지만 당장 필요한 소액을 인출한다. 당장이 아쉬운 물건도 편의점에서 산다. ‘지금’이 아니라면 굳이 ‘여기’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급하지만 않다면 내일 처리하는 게 돈이 덜 드는 일들을 우리는 편의점에서 처리한다. 편의점 문을 밀고 나오며 우리는 안도한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야, 큰일 날 뻔 했잖아. 그래서 편의점은 “평소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있어주는 그런 존재(채다인, 「나는 편의점에 탐닉한다」)”이고, 지금 당장 무엇인가가 필요한 우리에게 편의점은 “도심 곳곳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 그 자체다.
때로는 ‘나’가 타인과 다르지 않은 소비를 하고 있음을 편의점에서 깨닫곤 한다. 바꿔 말하면, 소비를 통해 남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기 위해 편의점에 가는 것이다. 어떤 편의점에 가더라도 비슷한 진열대에, 비슷한 물건이 비슷하게 진열돼 있다.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다가가면 비슷한 옷을 입은 비슷한 연령대의 ‘편돌이’나 ‘편순이’가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들에게 물건과 카드를 내민다. 그러면 그들은 다른 편의점에서도 볼 수 있는 바코드리더로 비슷해 보이는 바코드를 찍은 후 물건과 카드를 내민다. 이때의 편의점은 ‘낮은 차원에서의 생활필수품’을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면서 남과 다르지 않음을 체감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래서일까,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문장은 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앉아 지켜본 사람들은 비슷하게 피곤하고, 비슷하게 외롭고, 또 비슷하게 공허한 표정으로 편의점을 왔다, 간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낸 이들은 1+1이나 가장 수량이 적어 인기가 있음을 예측할 수 있는 물건을 사면서 소비의 패턴도 좇아간다. 우리는 입으로는 개성을 이야기하지만, 평범을 꿈꾸는 도시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양한 편의점 물품들(사진_GS25 페이스북, 이마트24 페이스북, CU 편의점 페이스북)
4. 덥기만 하고, 짜디짠 지구
편의점을 밤낮없이 지키고 선 ‘점주’와 ‘알바’들에게 이곳은 어떤 공간일까?
박민규의 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주인공 ‘나’는 “오후엔 주유소에서, 또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나’는 일하고 또 일하지만 “주요소에선 시간당 천오백 원을, 편의점에선 천원” 밖에 못 받는다. 그런 ‘나’에게 ‘편의점 사장’은 그러면서 세상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천 원씩 받고 배우면 어디가 덧나나.” 고된 삶을 살아가는, 그러나 장밋빛 내일을 꿈꾸기 어려운 ‘나’에게 편의점은 “덥기만 덥고. 짜디짠 지구”의 축소판이다.
‘짠내’는 편의점의 모습은 김영하의 「퀴즈쇼」에서 한층 진해진다. 소설의 주인공 ‘민수’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외조모 집에서 ‘추방’당한 후 오로지 생존을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삶의 문제가 더해진 편의점은 빠른 속도로 “미셸 푸코가 말한 원형감옥, 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브라더의 세계”와 비교되면서 “모든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단순히 양적인 크기와 관계로 환원”해버리는 돈에 대하 맹목적인 집착과 탐욕만 가득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처음부터 짠내나던 ‘민수’는 편의점에서 환대나 우애, 공감이나 배려와 같은 덕목이 감정의 잉여나 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타자화되는 것을 목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소설은 동화보다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다. 지긋지긋한 편의점에서 ‘민수’는 충격 받고 혼란을 겪지만,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자기발견과 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박민규 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김영하 「퀴즈쇼」
우리의 ‘지금, 여기’는 어떨까? 현실은 박민규와 김영하의 소설과 이란성 쌍둥이처럼 느껴진다.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오르면서 ‘알바’하는 재미가 쏠쏠할 거로 생각했지만, ‘알바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점주’가 조끼를 입고 바코드리더를 잡았다. 이제 하루의 반 이상을 계산대에 서서 바코드를 찍는 ‘점주’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그나마 낫다. 이마저도 어려워 본사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점주들이 적지 않으므로. 최저임금으로 인한 갈등과 피로. 그 최전선에 ‘점주’와 ‘알바’ 그리고 심야에 셔터를 내리는 편의점이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편의점은 소설보다 더 “덥기만 덥고. 짜디짜”다.
5. 새로운 ‘지금, 여기’를 위하여
누군가에게 편의점은 일확천금의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굳이 위치를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만한 ‘로또명당’이 있다. ‘경북 최다 당첨’이라는 수식어와 ‘1등 17명’이 적힌 현수막으로 장식된 그곳은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후가 되면 인산인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숫자 몇 개로 인생이 바뀔 리 없어, 난 당첨운이 없잖아. 그러나 그 편의점에서 가져온 ‘한 게임’의 흔적은 한없이 평범한 일주일에 소소한 설렘을 더해준다. 토요일 밤이면 로또로 대박난 사람은 그 편의점주라고 한탄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줄을 선다. ‘수저론’과 ‘삶포세대’에서 벗어나는 길은 ‘로또 뿐’이거나 ‘로또가 답’이기 때문이다.

사건사고의 현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며칠 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아르바이트비용을 아기기 위해 거의 맞교대로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새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에게 2시간 만에 500여만 원을 털렸다는 글이 게시되었다. ‘고담대구’의 악명이 환기되고, 점주에 대한 동정과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는 며칠이었다. ‘점주’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의 피로를 생각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니 충분히 안타까워하자. 그리고 경찰공무원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는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그가 불투명한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꿈 자체를 포기하는 편이 덜 괴롭다는 것을, ‘노오오력’이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 중 하나일지 모르니까. 그를 비롯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민수’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성장통은 지독했으나 이만큼 자랐다’는 엔딩을 맞이하길 바라는 것은, 우리네 삶이 소설이 아니므로 욕심에 불과한 것일까?

편의점에는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평온이 깃들어 있다

 

때로 편의점은 “술을 마시고 늦은 밤 택시에서 내리면 갑자기 허기가 지고 쓸쓸”할 때 찾아가 “파란 색 조끼를 입은 총각”과 인사를 나누고, “체질적으로 식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권하는 식빵을 들고 나오(이승훈, 「편의점」)”는 곳이다. 또한, “소주에 라면 한 개”가 당기고, “살아 온 지난날이 그날이 그날 같”은 “비오는 이런 날(박영식, 「편의점에 간다」)”에 찾는 일상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의 편의점은 참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특정 공간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함께 서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드물게 이루어지는 소통마저 무미건조하다는 것. 편의점에서 지금까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하다보면 이 공간은 도시의 섬처럼 쓸쓸하고, 쓸쓸하며,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대구에는 쓸쓸하지 않은 얼굴의 편의점도 있다. ‘민수’가 느꼈던 돈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탐욕이 아니라, “거래하고, 친구도 맺고, 다투기도 하(박영란, 「편의점 가는 기분」)”는 진짜 장사가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주는 얼굴. 혼자 일어서기 힘든 사람들의 삶을 돕기 위해 문을 연 자활 근로편의점이 그 얼굴의 주인이다.
서로가 당면한 복잡 미묘한 삶의 국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짜 소통이 이루어질 자활 근로편의점.
이곳을, 나는, 편의점의 새로운 ‘지금, 여기’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