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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만으로도 축제가 되네!?
성황리에 막 내린 제12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글_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 / 뮤지컬 평론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구의 여름은 정말 특별한 곳이다. 바로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DIMF, 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 12번째 축제가 열렸다. 공식적인 시작에 앞서 열렸던 프레(pre) 대회까지 감안하면 횟수로는 13년이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모습, 무대에 쌓이는 박수와 열정을 보면 그야말로 뿌듯한 마음마저 느낄 수 있다. 단순히 공연만이 아니다.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열렸던 개막 축하공연, 동성로를 달궜던 딤프린지, 젊은 청춘들의 경연대회인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신진 예술가를 양성하는 뮤지컬 아카데미와 뮤지컬스타 선발대회, 전문가들의 뮤지컬 강연 등의 부대행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뮤지컬 관련 행사들이 연일 이어지며 성대한 축제를 펼쳤다. 유네스코 창의도시에서 열리는 아시아 유일의 뮤지컬 축제답게 매력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아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다.
제12회 DIMF 특별공연 ‘투란도트’ (사진_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홈페이지, 페이스북)
다양한 소재와 형식, 무대위 배우들의 열정 돋보여
뮤지컬 축제인 딤프의 공연들은 크게 비경쟁 부문과 경쟁 부문이 있다. 우선, 비경쟁 부문에서는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수준급 뮤지컬들을 초청해 막을 올리게 되는데, 이는 다시 국내 공연과 외국 공연, 그리고 자유롭게 참가하는 작품들로 이뤄지는 자유 참가작으로 나뉜다. 올해 딤프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각색한 체코 뮤지컬 ‘메피스토’를 시작으로 전설적인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이야기를 그린 프랑스 뮤지컬 ‘아이 러브 피아프’, 러시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과 사회생활의 아이러니가 담긴 코미디 중국산 뮤지컬 ‘미스터 앤 미시즈 싱긍’, 대만산 1인 뮤지컬 ‘맨 투밋’,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을 무대로 옮긴 카자흐스탄 뮤지컬 ‘소녀 지벡’ 등이 선보이며 인기를 누렸다.

특히, 폐막작이었던 영국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보기 드물게 대구 오페라하우스 전석 매진이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올리며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 인기 영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왓 어 필링(What a feeling)’, ‘매니악(Maniac)’, ‘아이 러브 록앤롤(I Love Rock N Roll’, ‘글로리아(Gloria)’ 등 추억의 팝송을 실감나는 안무와 함께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여주인공인 앨릭스 역의 조앤 클리프턴은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된 바 있는 댄스 경연 TV 프로그램인 ‘댄싱 윗 더 스타’에서 우승했던 인물로, 시종일관 에너지 넘치는 댄스 시퀀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1. 중국 뮤지컬 ‘미스터 앤 미시즈 싱글’2. 카자흐스탄 뮤지컬 ‘소녀 지벡’3. 영국 뮤지컬 ‘플래시댄스’
(사진_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홈페이지, 페이스북)
국내 뮤지컬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특별 공연으로 선보였던 대구산 뮤지컬 ‘투란도트’는 올해도 원숙한 수준의 완성도를 선보이며 장사진을 이뤘고, 창작 뮤지컬 최초로 유럽에 라이선스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지역에서 제작된 뮤지컬 작품이었던 ‘열두개의 달’과 ‘외솔’도 있었다. 특히, ‘외솔’은 국어학자 최남선의 일생을 다룬 울산 작품으로 대형 창작 뮤지컬로는 보기드문 완성도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 딤프는 유난히 대구에 거주하지 않는 학생이나 관계자, 외부 관객들이 많이 축제를 찾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아마도 축제에 참가한 작품운 딤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마니아 수준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된 결과로 보인다. 역으로 보자면 딤프가 지역성을 넘어 우리나라를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대표적인 뮤지컬 문화 축제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축제가 지역을 넘어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까지 활용될 수 있다는 성장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역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12회 DIMF 특별공연 ‘투란도트’ (사진_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홈페이지, 페이스북)

딤프의 경쟁 프로그램으로는 대학생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과 창작지원작이 대표적이다. 특히 창작지원작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뮤지컬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이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작품의 상업화된 무대를 최초로 선보일 환경을 제공하고 지원함으로써 딤프가 양질의 창작 뮤지컬을 발굴해내는 선도적 기능을 하는 제도다. 창작지원작 최우수작으로 선정될 경우 이듬해 공식 초청작으로 초청되며, 작품의 성격이나 완성도에 따라 해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등 향후 작품 발전 및 브랜드화를 위한 지원도 병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작품이 대중적 흥행을 거둔 경우도 많다. ‘식구를 찾아서’나 ‘스페셜 레터’, ‘마이 스캐어리 걸’ 그리고 최근 서울에서도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영화 원작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 등이 그렇다.

올해 딤프에서는 70여편 작품들이 지원해 4개 작품이 선정돼 첫 무대를 꾸몄다. 교도소에 수감된 셰프의 사연을 들려주는 ‘따뜻하게 부드럽게 달콤하게’, 30여년전 대구 미싱공장의 추억과 애틋한 사연을 그린 ‘미싱’, 인기 동화를 무대용 뮤지컬로 각색한 ‘엘리펀트 박스’ 그리고 뮤지컬로는 드문 서스펜스 스릴러 ‘블루 레인’이다. 올해의 최우수 창작 뮤지컬의 영광은 ‘블루 레인’에게 돌아갔다. 벌써부터 서울 공연의 일정을 묻는 경우도 많아 앞으로의 향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뮤지컬 ‘엘리펀트 박스’ (사진_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홈페이지, 페이스북)
좋은 공연 축제는 훌륭한 관광자원도 될 수 있어
공연으로 만들어진 축제는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대중들에게 소개해보고 검증받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것이 공연 축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좋은 공연 축제는 다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세계적인 명성의 여름 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Edinburgh Festival)이다. 런던에서 기차로 네 시간 넘게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북부 도시인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원래 에딘버러 페스티벌은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등 각종 문화예술 분야와 관련된 주제들로 펼쳐지는 수십개의 지역 축제들을 총칭하는 용어다. 거의 모든 행사가 8월에 열려 에딘버러 여름(Summer) 페스티벌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됐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 정신의 회복을 꾀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자하는 의도에서였는데, 그래서인지 축제에 참여하는 단체나 공연들도 단지 스코틀랜드나 영국만으로 국한시키는 대신, 안목을 세계로 돌려 국제적인 규모의 축제를 지향했다. 이런 연유로 붙여진 이 여름 축제의 공식 명칭은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EIF,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퍼포먼스
(사진_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pg/edfringe))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중 공연축제로 유명한 것은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ringe Festival, 혹은 줄여서 the fringe라고도 부른다)다. 1947년 여름축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공식 초청을 받지 못했던 8개의 소형 극단들이 도시 외곽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따로 열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이 공연들을 보고 “도시 외곽(fringe)의 비공식 초청 공연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이 돼도 집에 돌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기사를 쓴 것이 계기가 돼 ‘프린지’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지금도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더 프린지는 별개의 행사로 여겨지는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시작은 비록 작고 초라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더 프린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 축제로 통한다. 해마다 여름의 절정인 8월초 3주에 걸쳐 막을 올리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참가작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수백 개 극단과 프로덕션이 참여하는 대형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 때마다 무료 안내책자를 만들기도 하는데, 차라리 소규모 전화번호부라고 말해도 괜찮을 만큼 빼곡히 공연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지난해 에딘버러 프린지는 25일간 3,400여개의 공연이 간이공연장을 포함해 300개의 공연장에서 막을 올렸고, 축제로 인한 직접적인 수익금은 약 4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퍼포먼스
(사진_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pg/edfringe))
딤프, 아시아의 에딘버러 페스티벌로 성장하길

하지만 무엇보다 에딘버러 프린지가 지닌 가장 뛰어난 미덕이라면 그 스스로가 콘텐츠를 점검하고 성장시키는 일종의 ‘문화상품의 산실’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3~4만원의 입장권에 60분 남짓한 프린지의 공연들은 대부분 완성된 최종 버전의 공연들이라기보다 초기 제작단계이거나 쇼 케이스 수준의 무대들이다. 세트나 소품 등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대형 상업공연이 아니라 자그마한 객석과 무대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본 이야기 뼈대만으로 대중성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객석의 관객들도 공연 애호가나 관광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 제작물의 미래적 가치를 판단하고 지원을 고려하는 투자자들이나 프로듀서들이 많아 일종의 견본시장 기능을 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된 콘텐츠들은 다시 대형 공연가에서 흥행 콘텐츠로 부상하며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영국의 넌버벌 퍼포먼스 ‘스톰프’나 아르헨티나의 ‘델 라 구아다’ 우리 뮤지컬 ‘난타’나 ‘점프’ 등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유명해진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산물들이다.
지역마다 수십개의 축제가 난립하지만, 대부분 명목상의 의미만 있을 뿐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감안해보면, 대구가 공연예술 장르인 뮤지컬로 이렇게 좋은 반향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크게 박수를 보낼 만하다. 기왕이면 딤프가 아시아의 에딘버러 페스티벌로까지 성장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처럼만 계속 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아 흐뭇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