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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4
여가로 “삶”에 색과 향을 입히다
글_장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1. 우리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 부정적 산물
한국은 지난 70여 년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삶의 다른 영역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 반작용도 있었다. 고도의 압축 성장은 빠른 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했지만, 반작용으로 사회·문화적으로는 활력을 잃고 늙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실적으로 고령사회로 너무 급속히 나아가고 있으며,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고,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행복한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경제적 성장기에는 삶의 의미를 경제적 성공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경제적 침체기의 지속은 유일한 것처럼 보였던 삶의 목표도 희미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든 사회, 현재 가장 큰 이슈인 저출산고령화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들은 이전의 경제, 성장, 경쟁 일변도의 삶의 방향성의 부정적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성급한 일반화에 이르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의 결과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우리가 달려온 길은 행복하자고, 더 잘 살아보자고 달려온 길이다. 그리고 그간의 고단함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전에 비해 비약적인 변화가 있었다. 1960년 20억 달러에 불과했던 GDP는 2016년 1조 4,044억 달러로 세계 11위 규모가 되었고, 세계에 여섯 나라밖에 없었던 ’2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이상) 당당히 7번째 국가가 되었다. 경제의 비약적 발전은 일차적인 삶의 여건과 관련된 지표들 예를 들면, 의료기관수, 평균수명, 자동차 보유대수, 주택보급률 등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결실로 나타났다. 한편,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삶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 ‘빨리 빨리’문화가 대표적인 한국문화로 정착했고, 경제적 발전을 위해 방향성 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한 덕분에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무한 경쟁의 문화가 우리사회의 뿌리 내린지 오래됐다.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고,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경제적 재도약을 위해 무던히 고단함을 감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과거의 영광재현이라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다음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 이유로 바뀐 것 외에는 변화된 것이 없다. 요약하면, 고단함의 명확한 결실은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단해도, 아니 더욱 고단해져도 경제적인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전의 고단함은 더 풍성한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고단함, 과로, 피로가 더 이상 경제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찌되었던 우리의 고단함은 삶과 생존의 기본적인 토대인 경제적, 물리적 여건 만드는 데 큰 기여를 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네 삶의 의미를 구성해왔다. 그러나 바쁨과 고단함은 삶의 그림자 영역도 동시에 만들어냈다. 2015년 현재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주요국가중 2위, 공동체(지원관계망) 지수 OECD 주요 36개국 중 최하위, 사회의 갈등지수 OECD 국가 중 5위, 12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더 나은 삶의 지수 38개국 ’12년 24위에서 ’16년 28위, 그 외에도 우울감 및 분노의 상승 등 정신의 붕괴 등이 동반되었다. 경제적 발전 이면의 삶의 영역 붕괴는 우리사회 전반적인 불균형, 기형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단함의 결실이 한편으로는 경제적 발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영역이 형편없이 붕괴되고 있었다는 역설이 존재하고 있다.

2. 우리의 현재

최근 들어 한참은 경제적으로 경도된 삶에 대해 각성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8년 가을에 진입하는 즈음 “워라밸”, “소확행”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는 노동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인 자율적 영역에 대한 문제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는 의미다.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고간다. 소득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도 이제 살만한 삶이 될 수 있다고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가시간과과 가처분 소득의 함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노동시간(여가시간의 여집합)은 소득과 일정부분 비례관계에 있다. 그런데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일정시간, 일정소득이 되면 노동시간은 소득에 대해 이전의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노동시간을 줄이고 전체적인 효용을 위해 여가시간을 택한다는 의미다. 여전히 노동시간이 소득에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소득이 삶의 영위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시간을 택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득, 경제력 등이 여가와 자율성에도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볼 만은 없다. 앞서 주지했듯 노동, 경제의 틀에서만 보면 다른 영역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여유와 여가시간은 경제를 넘어서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 앞서 다양한 삶의 영역 지표들이 형편없이 나타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삶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면 또 너무 성급한 진단일까?
1978년 사회심리학자인 존달리(John Darley)와 대니얼 베이트슨(Daniel Basteson)이 한 흥미로운 실험은 시간의 문제가 우리의 삶과 문화에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에 대한 단초가 된다. 착한 사마리아 인1) 실험으로 알려진 이 실험은 마음속 확신(지식, 신념)과 시간적 여유가 사람들의 도움행동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실험설계를 간단히 살펴보면, 실험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착한 사마리아 인’을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게하고, 비교집단의 신학생들에게는 성경 내용 중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하였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게는 설교에 가야하는 시간이 적당히 있다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넉넉하다고 했으며, 세 번째 그룹에게는 시간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발표할 장소로 가게 되는데, 발표하러 가는 길에 학생들은 머리를 숙이고 눈은 감고 기침과 신음을 하며 쓰러져 있는 남자와 마주치게 설계하였다. 연구 질문은 과연 누가 멈춰 서서 그들 도울 것 인가였다. 착한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설교를 준비한 학생들이 도움행동을 많이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도움행동을 하는 기준은 “시간의 문제”였다. 시간에 쫓기는 그룹의 학생 중 10% 만이 도움행동을 하였고, 시간이 적당히 있는 그룹의 학생 40%,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룹의 학생은 63%가 도움행동을 하였다. 연구자들은 시간적 여유가 지식이나 확신만큼 혹은 그것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바쁘지 않음이 공동체적 행동 나아가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3. 우리가 가야할 길
현재 우리의 삶을 담을 그릇인 “시간”의 문제는 확실히 정치적 아젠다가 되었다. 그런데, 시간만 생기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외부적 조건에 즉각적으로 반응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70년 간 사실상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를 끌어왔고, 그 과정에서 개인은 경제적 동물로 진화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시간의 자율성을 줘도 ‘자유로부터 도피’ 하려는 사람들,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더 이상 시간의 제약이 없는데도 다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에 정부의 탓도 있으니,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무엇으로 삶의 시간을 채울 것인가’ 이 문제만 남았다. 너무 유행이 돼서 우리 모두 아는 이야기인 ‘4차 산업 혁명’은 우리의 미래에 가장 큰 화두다. 현실적으로도 체감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차지하고,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살펴보면 4차 산업 혁명은 잉여생산과 삶, 그리고 진짜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잉여생산은 모든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결실이다. 모든 잉여생산이 노동력을 줄이진 못했지만 노동력의 감소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4차 산업의 경우, 인간의 노동력을 그전보다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점에서 더욱더 많은 변화들을 예상케 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는 자신의 존재의미, 정체성의 문제다. 일하는 시간이 준다는 것은 기존에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실현을 결정하던 일(Work)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대로 지금까지 희생되었던 삶의 시간에 행해지는 활동, 즉 여가활동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일이다. 사람들 특히, 남녀가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첫 번째 질문은 직업이고, 다음 질문은 어김없이 취미인데, 앞으로는 질문의 순서가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질문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여가, 관계, 즐거움, 행복과 같은 감성 영역2)은 인공지능과 진짜사람(Human Authenticity)을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미래에 여가가 사람의 향기와 색을 더해 진짜사람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부분에 정부, 지자체가 관여하는 것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고,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늘어난 삶의 여백에 문화여가 활동을 배치해 향기와 색을 입히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다양하고 건강한 여가활동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문화정책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중앙정부 주도의 문화·체육·관광·콘텐츠 생산과 공급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이 때문에 공급 생태계는 세계에 어디 내 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는 된다. 이제부터는 국민과의 접점인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세심하게 사람들의 참여를 고려한 정책을 디자인해야 할 때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은 다른 관점으로 일시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경과 배경은 항상 같이 있지만 전경과 배경을 바꾸어 인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할 과제다.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삶에 색과 향기가 더해지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 1)‘착한 사마리아 인’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도중에 강도에게 두드려 맞아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신앙심이 깊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모른 척 했지만, 멸시당하는 소수 민족인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봐주었다는 이야기다.
  • 2)영국의 연구에 의하면 미래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 1위는 여가치료사다(Frey & Osborne,2013). 여가, 관계, 감성 영역의 직업이 미래에 사라지지 않을 직업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진짜사람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