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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주 52시간 근무시대, 일상의 변화를 들여다보다
글_이정미 대구경북연구원
1. 우리가 꿈꾸는 ‘저녁’은 왔는가?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은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주었다. 지난 7월 시행 초기에는 업종 간 혼란으로 부정적 견해가 존재했지만 시행 3개월째 접어들면서 각종 여론조사결과와 언론매체는 긍정적인 일상의 변화상을 전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4.2%가 노동시간 단축 정책 도입을 ‘잘된 일’로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과연 대한민국이 꿈꾸는 저녁은 왔는가? ‘오래 일하는 노동문화’를 바꾸자는 근본취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추세이나, 업종과 업무 형태에 따라 현장의 변화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근무환경이 더 나빠지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 : 일과 생활의 균형)’을 꿈꾸는 ‘주 52시간 근무제’ 이후 각종 언론매체에 나타난 현장을 들어보았다.
지난 8월 16일에 개최된 대구예술발전소 <매체, 사람, 풍경> 오픈 공연
IT업계에 종사하는 A씨에게 주 52시간 근무는 ‘다른 세상’의 일이다. ‘저녁 있는 삶 대신 ‘비공식 야근’, 즉 교통비나 저녁식대 제공 등이 없는 공짜 야근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A씨의 회사는 하루 8시간 근무를 하고 나면 PC가 자동적으로 종료되는 ‘PC오프제’를 시행 중이다. 또한 PC오프제로 인해 너무 일찍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업무시간 20분 전에 컴퓨터가 켜지도록 하는 ‘PC온’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회사 정책에 따라 컴퓨터는 오전 8시 40분에 켜지고 오후 6시에 꺼지지만 A씨는 여전히 근무시간 전후에 자리에 남아 개인 노트북으로 잔업을 수행하곤 한다. 몸은 회사에 남아있는데 회사컴퓨터로 작업하지 못하고 개인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불편을 겪으며, 그동안 야근에 따라 지급받았던 초과근무 수당과 저녁식사비, 교통비 등의 혜택은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A씨의 경우는 일감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예전보다 근무환경이 나빠진 사례이다. 결국 A씨는 ‘워라밸’을 꿈꾸며 퇴사하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B씨는 그간 신규 서비스나 기존 서비스의 업그레이드 등을 앞두고 이른바 ‘크런치모드(Crunch Mode)1)‘로 집중적으로 일해 왔다. 주 52시간이라는 절대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트렌드를 선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회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B씨는 일부 대형 게임사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탄력적(선택적) 노동시간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소규모로 운영되는 게임업체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여서 상대적 격차를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최근 넥슨은 게임업계 최초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크런치모드’를 워라밸모드(Work & Life Balance Mode)로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2)
그간 아무런 댓가 없이 관행적으로 시행되었던 야근과 주말 출근 문화를 개선하고 ‘정당한 노동과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위메프는 맞춤형 복지정책으로 ‘핀셋복지’를 시행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슈퍼우먼방지제도’, 신규 직원을 위한 ‘웰컴휴가’, 생일 등 특별한 기념일에 조기 퇴근을 보장하는 등의 맞춤형 복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메프의 실적 또한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데,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밤샘 작업이 당연시 되는 방송계에 종사하는 C씨는 근로기분법 개정 이후 밤샘 촬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제작기간이 늘어나 다른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어 소득이 감소되었다고 한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문화·콘텐츠분야가 특례 업종에서 제외되어 밤샘 촬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촬영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 제작기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방송사가 정규직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대체 인력을 뽑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과 책임에서 자유로운 외주 제작 비율을 높이면서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동료의 경우 오히려 일감이 늘었다고 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혹자는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만든 ‘낀세대’를 말한다. 오전 9시 칼출근과 오후 6시 칼퇴근에 따라 ‘업무사슬’에서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댓가 없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중간에 끼여서 수행해야 하는 세대.

반면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D씨는 ‘워라밸’을 찾았다고 한다. 야근과 회식이 줄면서 이른바 ‘칼퇴근’ 후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요가, 필라테스 등을 배우거나 평일 저녁 도서관이나 공연장, 영화관 등을 찾는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따라 문화여가를 중심으로 한 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을 중심으로 일상을 쳇바퀴처럼 살다가 갑자기 생긴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미’를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는 ‘하비박스(Hobby-Box)’등의 신산업이 등장하고 있고, 개인의 성향과 여건에 따라 맞춤형 문화여가프로그램을 기획해주는 ‘문화여가코디네이터’도 등장하고 있다. ‘취향공동체’로 대변되는 생활문화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생활문화 속 취향 공동체는 개인과 지역사회의 향유와 소비, 생산에 이바지하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2. ‘정당한 노동’을 말하다
법 개정에 따라 대기업과 일부 중소기업 등에서는 직원의 동기 부여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무제 등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탄력근무제는 업무 특성에 따라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3개월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 근무’로 조정하는 방식인데, 게임업계의 경우 크런치모드 기간에는 근로시간을 늘이고 나머지 기간에는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근무시간을 업무특성에 맞게 ‘분기 단위’ 등으로 조정하여 총 근로시간 내에서 8시에서 5시 또는 10시에서 7시 등으로 변형하여 일하는 제도이다. 연구개발(R&D) 관련 직업분야에서는 업무 수행 방법이나 업무시간 배분을 직원의 재량에 맡겨 자율적으로 조정·시행하도록 하는 ‘재량근무제’를 실시하는 기업도 있다. 또한 조기 퇴근과 초과근무를 선택적으로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타임 패키지(In Time Package)’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도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는 상황에 맞춰 집중근무나 개인용무 등을 시행할 수 있는데, 개인 사정으로 조기 퇴근하는 경우 일정 기간 내에 본인이 원하는 날 초과근무를 병행하여 주 평균 40시간을 맞추어 일하는 것이다. 또한 ‘집중 근무시간’을 설정하여 회의나 티타임, 흡연 등을 자제하는 ‘3무(無) 운동’을 시행하는 기업도 있다. 그밖에도 업무시간 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업무 지시를 줄이도록 하는 ‘레알(Real) 휴(休)’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선 사례는 일부 직종과 기업에 그치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많다. 대부분의 노동현장은 ‘탄력근무제’ 등도 도입하기 어려운 실정으로, 언론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른바 ‘워라밸적’ 노동문화는 오히려 노동여건에 대해 상대적 격차를 느끼게 하고 있어 ‘新노동문화 양극화 현상’을 낳기도 한다.

3. 다른 나라의 ‘저녁’은 어떠한가?

유럽 국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단축근로의 경험을 쌓아오면서 산업별·업무별·기업별 상황을 고려하고 노사 협약 등에 기반을 둔 ‘노동시간 탄력성’을 중점으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노사문화를 바탕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노동시간 조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노사가 상생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 퇴근 후에 집에서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2014년 업무 시간 이외에 e메일 전송 등을 금지하는 ‘안티스트레스(Anti-stress)’법 입법을 추진했다.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휴식시간에는 일체 업무 연락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연장근로나 연장근로의 가산임금과 복지혜택 등에 대해서는 사업장의 단체협약에 맡기고 있는데,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도 생겼다. 예를 들어 기본근로시간이 하루 8시간 근무를 초과하여 하루 10시간을 일하면 2시간을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넣고, 추후에 근로시간 단축이나 휴가 등에 쓸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근무시간 외에 디지털 기기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계약법 개정안이 발효되었다. 프랑스는 법정 근로시간이 35시간/주이다. 연장근로는 연간 총량 22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단체협약이나 근로감독관의 승인을 얻을 경우 이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하고 초과한 만큼 가산임금이나 의무 휴일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최단시간 근로국가인 네덜란드 근로자는 주당 29시간을 일하는데, 2000년 제정된 ‘근로시간조정법’3)에 따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차별은 없다. 이탈리아, 호주,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 등의 근로자도 하루 6~8시간 일하며, 연간 3주~8주에 이르는 장기휴가를 보장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최고의 복지와 소득을 자랑하는 국가들로 우리나라의 상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본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초과근무로 인한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 4일 근로제도를 실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또한 근무시간 단축을 위한 다양한 홍보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오후 3시에 조기 퇴근하는 ‘프리미엄 금요일(Premium Friday)’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보안업체가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드론을 통해 일과시간 후 사무실에 남아 야근하는 직원을 찾아내어 퇴근 안내 방송을 내보내는 이른바 ‘퇴근드론’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당 보안업체는 향후 드론에 얼굴 인식 기능을 탑재하여 직원 중 누가 초과 근무를 하는지를 자동 감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퇴근드론(사진 출처: http://bzit.donga.com/)
4. ‘다양성’을 말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 등의 국가에서는 ‘다양성’의 수용을 노동여건 개선의 중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러한 다양성을 논의하고 받아들이고 시행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이른바 ‘新노동문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2014년을 전후로 하여 우리사회에 다양성이 중요 담론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영화에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영화 ‘그녀(her)’, ‘킬 유어 달링’, ‘비긴 어게인’ 등 다양성 영화들이 사랑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가족, 세대차이, 행복 등의 안건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TV 프로그램도 방영되고 있다. 다양성과 개방성이 점차 중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노동문화, 놀이문화, 토론문화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은 언어나 의상, 전통, 도덕과 가치에 대한 관념, 주변과의 상호작용 등 사람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포괄한다. 오늘날 사회는 일과 삶 사이의 균형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요구한다. 느림과 빠름,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지방화와 세계화, 삶의 양과 질, 물질과 정신, 기술과 인문 사이의 균형 등이 그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장에서 모두를 똑같이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없다. 따라서 다수의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보편성이 아니라 다양성(多樣性)일 것이다. 그간 압축성장을 위한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보편성은 개인과 사회의 다양성을 홀대해 왔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공정하고 행복한 노동문화가 자리 잡고 공정한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되기 위해서 고민해야하는 지점은 바로 ‘다양성’의 수용과 ‘공정’일 것이다.

  • 1)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뜻함.
  • 2)한겨례신문 참조(2018.9.3.). http://www.hani.co.kr/.
  • 3)근로시간조정법이란 노동자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것을 요구할 권리를 주고 사용자의 거부권은 제한한 법. 노동자는 자신의, 근로시간을 정하고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받지만 이로 인한 수당·사회보장·직업훈련 기회 등에 차별을 받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