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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
주 52시간 근무시대의 문화정책
글_김동일 대구가톨릭대 교수
롤러코스터를 타다
요즘 세상사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빠르고 혼란스럽다.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사건은 비교적 옛 일이 되어버렸다. 금세 전쟁이라도 날 듯 보였던 한반도 상황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이어진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국면으로 급격히 이행되고 있다. 일상의 변화 또한 크다. 수 년 간 제 자리 걸음에 머물던 최저 임금이 올해 시간 당 7,650원으로 껑충 뛰더니, 내년엔 8,350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여기에 ‘노동시간 감축’이라는 또 다른 변화가 뒤따랐다.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기존 68시간(평일40+초과12+휴일16)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당사자인 직장인과 아르바이트생조차 실감하지 못할 충격이다. 벌써부터 이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와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지난 2004년 처음 실시된 주5일 근무제가 이제야 실현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비로소 ‘과로사회’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다. 우리의 노동환경이 이제 본격적인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과연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한국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에 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 변화가 실업증가와 소득 감소, 궁극적으로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러한 상반되는 기대와 걱정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가늠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성급한 일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사회적 삶에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문화예술 정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문화기본법
이렇게 시끌벅적한 변화 속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그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줄 또 다른 변화의 퍼즐 조각이 존재한다. 이 퍼즐 조각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조각이야말로 앞에서 제기된 사회적 삶의 변화를 긍정/부정, 행복/불행, 선순환/악순환으로 나눌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문화기본법’의 제정이다. 문화에 대한 강조는 개화 이후 꾸준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입법된 ‘문화기본법’은 말 그대로 문화를 사회구성원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격상시켰다. 기본권이란 당연히 누려야 할 당위적 권리를 말한다. 문화기본권은 문화의 창조, 참여, 향유를 모든 국민들이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차별받지 않고 누려야할 권리로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국민의 문화적 욕구 충족과 실현을 지원할 의무를 갖는다. “이 법[문화기본법]은 문화가 민주국가의 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문화의 가치가 교육,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개인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도록 하고, 문화의 다양성, 자율성과 창조성의 원리가 조화롭게 실현되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문화기본법 2조)
참여와 실천, 가치으로서의 문화
이제 퍼즐 조각들을 서로 맞춰보자.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축소, 그리고 문화기본권. 도무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조각들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다소간의 비약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조각들을 연결하는 키워드를 대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참여’와 ‘실천’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몇 년간의 정치적 상황은 시민의 참여와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시민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로 세상사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구성원들을 물질 생산에 대한 절박함과 그에 따른 종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나 개인의 삶과 사회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의 의문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된다. 문화는 바로 그러한 의문에 대한 성찰을 구체화시킨 것이라 수 있다. 사회문화 이론가들은 문화를 “가치와 신념, 기호와 상징”으로 기술한다. 가치와 신념은 물질생산의 영역인 ‘경제’와 날카롭게 대질되는 문화의 존재 형식이다. 기호와 상징은 가치와 신념을 가장 정교하게 반영한 문화의 내용이며, 예술은 문화의 내용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다. 문화를 기본권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문화의 형식과 내용으로서의 가치와 신념, 기호와 상징을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이며,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문화는 동시대 국가와 시민이 갖추어야 할 자격이라는 것이다.
어울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펼치는 아트지.(행복북구문화재단 제공)
문화의 다양한 형태들
역사적으로 문화의 내용과 형태는 달랐다. 일제강점기의 문화는 이른바 ‘부드러운 지배’를 위한 통치수단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문화 역시 민족의식과 자긍심의 고취를 통한 ‘국민만들기’의 수단이었다. 본격적인 문화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의외로 권위주의 정부였다. 박정희 정부는 ‘앵포르멜’ 같은 당대 혁신적인 예술사조들을 공인했고, 전두환 정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인프라 확충에 힘썼다. 비로소 문화의 자율성을 위한 제도적 물적 조건이 갖추어졌다. 김영삼 정부는 이른바 ‘세계화’,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문화의 시대를 알렸고,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으로 문화와 경제 사이의 관계를 탐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비록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문화적 가치창출을 통한 혁신적 부가가치 창출을 지향했다. 과거 육체노동 중심의 생산체제 속에서 문화는 소수의 문화생산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된 정교한 결과물이었으며, 대중은 수동적으로 그 생산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은 비교적 저렴한 시장가격(입장권)을 통해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요구되는 문화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문화실천 주체의 적극성에 부합해야 한다. 그것은 보다 참여적이며, 과정 중심적이어야 한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때우는’ 문화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을 채워나가는 문화’가 될 것이다. 정해진 편성표를 따라 시청자와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일방적인 유포가 아니라 유저에 의해 직접 촬영, 편집, 업로드, 공유되는 콘텐츠 생산(유튜빙)이 될 것이다. 수동적인 독서가 아니라 직접 쓰여 지고 출판되고 공유되는 책-만들기가 될 것이다(독립출판). 이어폰을 타고 귀 속에서만 메아리치는 음악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지고 공연되는 음악만들기(인디뮤직)이 될 것이다. 이 때 문화는 주체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는 실천적, 과정 중심적, 공유의 문화이다. 삶 자체에 스며드는 문화는 이미 실험되고 있으며, 더욱 확장될 조짐이다.
대구 독립출판서점 ‘더폴락’
문화자본, 혹은 문화복지

여기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론을 잠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부르디외는 문화를 일종의 ‘자본’으로 정의한다. 경제자본과 마찬가지로 문화 역시 축적, 증식된다. 무엇보다 문화자본은 특정한 조건 위에서 경제자본(돈)으로 변환된다.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은 서로 환류하면서 자본의 총량을 확대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동시대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자들이 문화와 경제 사이의 변환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설정하는 반면, 가난한 자는 경제자본으로 변환할 수 있는 문화(자본)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축적되고 증식되는 문화(자본)는 행위자의 육체에 ‘체화’, 즉 ‘스며든다.’ 과정, 혹은 참여로서의 문화는 자본으로서의 문화를 지칭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이다. 노동자가 늘 가난한 노동자로 머물고, 노동자의 아이들이 또한 노동자로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극’은 그들이 문화에 참여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외계층이 과정 중심적 문화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복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문화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단순히 물질적 혜택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문화에 참여하도록, 다른 말로 하면, 문화자본을 축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문화를 통해 삶을 방향 짓는 가치와 신념, 상징과 기호를 체화하도록 돕는 일이다.

문화지원 정책
그렇다면 오늘날 문화정책은 어떠해야 할까? 문화기본권은 국가와 지자체에게 국민의 문화 향유, 참여, 창조를 지원할 의무를 지운다. 문화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면, 국가와 지자체의 문화정책을 대리하는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주민들이 과정 중심적 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상승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문화적인 관점에서 그 변화는 직장인, 시민을 포함하는 사회구성원의 적극적 참여와 실천 역량의 비약적인 확대로 나타날 것이다. 예술가들 또한 공연장이나 미술관에서 수동적으로 관객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에 다가서야 한다.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기관, 지역문화재단은 기존의 창작 중심의 지원을 넘어 지역주민, 혹은 근로자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보다 확충할 필요가 있다. 때로 지역주민, 혹은 근로자가 기획을 주도하고 오히려 예술가들이 보조하는 현장중심 문화 실천 프로그램들이 제안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과 노조, 지역 NGO, 지자체, 그리고 예술가 사이의 적극적인 협력을 유도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컨설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축소, 최저 임금상승의 상승은 우리 삶이 새로운 질적 변화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한다. 노동환경과 경제수준만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수는 없다. 문화 수준이야말로 선진국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내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정책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