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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_릴레이기고#2
사람을 바라보다
글_이경희 시각예술 작가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간다. 갓난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그 엄청난 본능적 에너지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각인시키며,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을 알아가려는 본능 말이다. 아이는 끝을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고 소모하며,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을 치열하게 알아가려 한다. 한 아이의 입장에서 이 과정들을 상상해보면, 세상에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와 끊임없이 독대하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물론 실제로 인간은 이보다 좀 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세상의 모든 대상을 맞은편에 선 지극히 독립된 존재로서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다’ 혹은 ‘안다’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기에 타자와의 단독적인 만남은 치열한 경험이며, 에너지이다.

우리는 미술의 영역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세상과 독대해 왔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을 많이 보아왔다. 작가가 마주한 그 대상은 인간이기도 하고, 자연이나 동물, 혹은 무생물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림이기도 하고, 조각이기도 하며, 혹은 신체이기도 하다. 작가의 무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관찰과 관계맺음은 대상을 꿰뚫어보는 직관적 판단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시각을 타고 들어오는 강렬한 표현은 나머지 것들을 부가적인 설명으로 만들어버린다. 말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함정 속에 바로 시각예술이 있다. 앞서 말했듯 많은 시각 예술가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여 세계와 독대한다. 그리고 직관적 판단을 통해 오로지 감각을 통해서 읽혀지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1. 시선
「인수에게-你」2015
「인수에게-你」, 단채널비디오, 00:09:51, 2015
2015년 봄, 나는 항저우에 있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추운 날씨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 날씨로 넘어갈 때까지 나는 내가 아는 한 사람 ‘인수’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사실 처음 작업을 계획할 당시에 나는 여러 장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멋진 문장의 편지를 자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가장 나중에 하게 될 뿐더러 그리 길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계획대로 편지를 쓰려 노력했지만, 각각의 편지는 지루하고 평이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낱말과 문장으로 이루어진 ‘텍스트’일 뿐 다른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글을 쓰기보다 도리어 낯선 도시에서 스쳐가는 낯선 사람들과 대상을 관찰하고, ‘인수’라고 느껴지는 대상을 발견하면, 늘 들고 다니던 드로잉 북에 그려내거나 혹은 핸디카메라로 촬영했다. 함께 지내는 동료작가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홀로 마주한 장면 속에서 나왔다. 세 달 동안 꽤나 꾸준히 나의 시선은 나를 스치는 타인을 향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맴돌던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장면과 대상을 이어 편지 하나를 완성했다. 작업의 메시지는 무작위로 등장하는 대상들 속에서 그리고 ‘너’의 존재를 더듬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의 시선을 타고 ‘너’를 통과해 ‘세상’으로 향한다.
2. 사람을 들여다보다
Berlin 「Drawing」2016
Untitled, draw on a napkin, tissues, installation, 2016

가창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있던 2015년도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안정된 창작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는지 그 당시 고민 중이던 많은 부분들을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작업의 형태보다는 작업의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였고, 나의 시선이 왜 ‘사람’으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이제 ‘누구’를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2015년은 항저우 교환 레지던시 외에도 가창창작스튜디오에서 「이곳에 살기 위하여」(2015)라는 제목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개인전을 열었고, 삼산리 마을 공동체 내에서 실종된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흐릿한 꿈」(2015)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연달아 공연했다. 2016년 베를린에서 작업을 하면서 나는 언어적으로 제한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과정을 겪으며, 작업을 말로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간 나의 작업들은 언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다는 생각에, 시각예술가로서 앞으로 방향키를 고쳐 잡아야한다고 마음먹게 되었던 것 같다.

베를린에서는 세 번에 걸쳐 오픈 하우스에서 작품을 선보여야 했고, 그 중 한 번은 베를린에서 한 드로잉을 공간에 설치하여 전시하였다. 나는 주변에서 수집한, 찢어지거나 구겨지기 쉬운 물체 위에 매우 개인적인 영역인 ‘감정’이 매체를 통해 외부로 드러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시위 도중에 울고 있는 사람들, 카메라 앞에서 분노와 울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서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시공간에서 그들의 얼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연약한 매체 위에서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었다.

「Do extract for one essay」 2017
이 작업의 시작은 나의 관념 속에 있는 바다와 실재의 바다가 완전히 다르다는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 작업을 할 당시에 부산에 머물고 있었고, 작업실에서 5분 거리에 바닷가가 위치해 있었기에 작업실을 오가는 과정에서 늘 바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전에 나의 상상 속에 있던 바다는 에메랄드빛의 눈부신 바다였지만, 막상 내 앞에서 철썩거리는 바다는 어찌나 내 심신을 괴롭게 하였는지 모른다. 바다는 그저 아름다운 블루오션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할지 모르는 이 사실이 나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나는 도대체 이 착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착각의 경로를 추적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접한 매체 속의 바다이미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다의 이미지만을 수집하려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영화, 드라마, 광고, 시각예술 속의 바다이미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홀로 눈물을 삼키는 사람, 망망대해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람 등.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이 작업을 하며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과정은 나에게 꽤나 큰 만족감을 주었는데, 그것이 설령 연출된 장면이라 할지라도 바다를 배경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감정과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푸른 화면 속에 가둬두는 방식으로 관념과 실재의 차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바닷가에 북적이던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Do extract for one essay」, printed on OHP film, drawing on film, projector, installation, 2017
최근 나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미묘하게 변하는 사람의 형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설명할 수 없고, 나열할 수 없었던 삶의 수수께끼들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전보다는 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주목하고 드러내려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최근에는 직접 상황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에서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을 관찰하고 내재된 이면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호기심과 관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인 개입과 대면을 시도하는 과정은 지금까지 밟아온 작업의 과정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된다. 작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삶을 대면하여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들의 생의 단면만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