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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_신간소개
얘들아, 이리 와 자연과 놀자!
– 이정환, 『일락일락 라일락』(2018, 푸른책들) –
글_신상조 문학평론가
오랫동안 ‘동시<시’로 일관하던 한국 시단에 최근 들어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어린이다운 심리와 정서로 어른이 어린이를 위하여 쓴 시.”라는 동시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던 시인들이 너도나도 동시집을 출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는 성인으로 국한하던 문학의 수용자 층을 유아와 아동으로 확대 겨냥하는 출판사들의 전략에도 어느 정도 힘입은 바 있을 터다.
이정환 동시조집, 『일락일락 라일락』(2018, 푸른책들)
이정환 시인의 동시조집 『일락일락 라일락』(푸른책들)을 다소 유난스러워 보이는 이러한 시류로부터 구분하고 싶은 이유란, 동시와 함께 한 그의 이력이 이미 오래기 때문이다. 다음은 동시와 관련해서 그를 취재한 한 일간지의 기사다.
교실에서 늘 시조집을 읽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럴 듯 해보였는지 어린 제자들은 자신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시조를 써달라고 했다. 자신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동시조를 써달라고 주문까지 하더라.”
맑고 티 없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낸 시간은 동시조가 돼 이듬해 5월 한 권의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로 엮어졌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제자들에게 동시조집을 한 권씩 선물하며 약속을 지켰다. 당시 쓴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는 2002년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혀 밑에 도끼」는 2011년부터 5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가 현재 6학년 국어 교과서에 다시 실려서 국민 동시조가 됐고, 금년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공을 차다가」가 새롭게 수록되었다. 얼마 전 대구교육박물관을 개원하면서 뜰에 「친구야, 눈빛만 봐도」가 시비로 세워진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의 첫 번째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는 스테디셀러가 되어 2011년 이후 2천 권씩 5쇄를 펴낼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즐거워 아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끊임없이 시조 쓰기를 지도하고 있다.(대구일보 김지혜 기자)

초등학교 선생님인 시조시인이 반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시조를 썼다는 내용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어른이 어린이를 위하여 쓴 시’가 동시라는 기준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경우가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출간된 이정환 시인의 두 번째 동시조집은 시조로 된 동시라는 점에서 우선 의의를 갖는다. 민족적 정서와 감각에 4음보 율격의 정형성을 갖춘 시조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우리의 고유한 문학이다. 그러나 정형성이라는 말에 딱딱하거나 지루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사실 시조는 우리의 호흡이 가장 편안해하는 보법을 가진 장르다. 거기에 『일락일락 라일락』은 정형의 율격에 매이지 않는 다채로움으로 동심에 닿아 있는 새로운 율격을 창출한다.
한편으로 『일락일락 라일락』은 편백나무, 측백나무, 탱자나무, 꽃 등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노래한다. 「나무를 심어라」, 「나무 생각」, 「나무 안기」, 「어느 날 나무가」, 「서늘한 나무」, 「나무가 하늘 속으로」라는 일련의 제목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심을 바탕으로 자연탐미적인 성격을 보이는 그의 시는 “나무가/ 하는 생각을/ 귀담아 들어 보”(「나무 생각」)는 동화나 투사, “잎을 출렁거리며/ 꽃잎 바람에 흩으며” “나무가 하늘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나무가 하늘 속으로」)을 마음으로 그려보는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을 넘어, 그의 시는 자연 사물을 아이들 곁으로 바싹, 데려다 놓는다.

이정환 동시조집, 『일락일락 라일락』(2018, 푸른책들)
형식적인 면에서는 아동 독자에게 동시 읽기의 체험으로 “민족의 언어가 가지는 소리의 미감을 가장 극대화해서 맛보는 미적 경험”(장도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일락일락 라일락』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새 떼 오종종종/ 풀밭머리 앉았다가// 석류나무 가지 끝에/ 폴 포르르 날아올라// 입 모아 짹짹거려요./ 가지 살금 흔들어 대요.”(「참새들」)에서 드러나듯, ‘오종종종’, ‘폴 포르르’, ‘짹짹’, ‘살금’ 등 음성상징어가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다. “엄마, 잎이 없어요. 몽실몽실 몽우리예요.” 라며 시각적 심상을 자랑하며 피어나는 백목련의 모습이 “빵, 터질 것 같아요./ 귀 막아야 하나요.”(「백목련」)라며 청각적 심상으로 과감하게 전환하기도 한다. 이로써 시를 읽는 아이들의 감각이 음성상징어에서 오는 ‘소리의 미감’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음성상징어의 특징은 반복에 있고, 반복은 필연적으로 리듬을 형성한다. “주렁주렁 꽃송이들/ 향기마저 주렁주렁”(「아카시아꽃」), “치렁치렁 삼단머리”(「버드나무」), “하늘 가는 길/ 아는 듯/ 넘실넘실”(「미루나무」) 등에서 나타나듯, 음성상징어의 잦은 활용은 『일락일락 라일락』의 또 다른 특징인 간명하면서 역동적인 리듬과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표제작인 「라일락」을 살펴보자.
수수꽃다리 꽃 그늘
꽃그늘은 향기로워

아이들 둘러서서 바람을 부릅니다.

라일락
일락 라일락
일락일락
라일락
-「라일락」 전문

1연에서는 시각적 감각인 꽃그늘이 향기로 옮겨가면서 후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연의 ‘아이들 둘러서서 바람을 부릅니다.’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로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거나 오라고 할 때의 ‘부르다’이거나, 혹은 노래를 부른다고 할 때의 ‘부르다’가 그것이다. 박목월 시인은 “파랑새를 보고, 파랑새야 파랑새야 불러보고 싶은 생각, 그 생각을 솔직하게 여러분의 말로 파랑새야 파랑새야 불러보는 게 동요”라고 했다. 바람아, 바람아, 하고 아이들이 입을 모아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타고 라일락 향기가 사방으로 펴져나간다.
노랫소리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라일락의 향기가 점점 짙어진다.’라일락/ 일락 라일락/ 일락일락/ 라일락’은 단순히 운율을 맞추기 위한 구도도 되고, 한 행 한 행을 공간이라 놓고 향기가 사방으로 펴져간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정서가 간결하고 경쾌하게 나타난 일락일락(日樂日樂)이라는 의미는 또 어떠한가. 하지만 운율과 심상을 연결시키는 이런 해석 따위야 따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도처에서 솟아나는 라일락 향기 가득한 생명의 기운을 맛보면 그만이다.
이정환 동시조집, 『일락일락 라일락』(2018, 푸른책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독자로 하는 아동문학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교훈과 언어유희로서의 말 부림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눈을 들어 보아라.
사과밭
사과나무

빨갛게 익어서
아삭아삭한 사과들

저것 봐!
입으로만 꼭
말하는 것
아니란다.
-「사과나무」 전문

사과(沙果/砂果)가 사과(砂果)가 되고, 과일의 빨간 색은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얼굴이 된다. 동음이의어와 사물의 형태를 활용해서 그 대상을 교훈으로 삼는 동시에 언어유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교훈은 동심을 자극하는 산교육이므로 일방적이고 고리타분한 훈계를 뛰어넘는다.
『일락일락 라일락』은 식물의 이름을 가지고”있을 것 같죠./ 꼭 있을 것 같죠.// 있을 듯하면서도/ 정작 없는데도// 어딘가 있을 것 같죠./ 곧 뒤척일 것 같죠.”(「호랑가시나무 아래 호랑이는」)라며 수수께끼놀이를 한다. 수수께끼의 답은 엉뚱함에 있지만 주어진 문제 안에서의 엉뚱함이다. 아이들의 연상 능력을 기르는 데에 이만한 놀이도 없겠다. 여기에 전래의 해학적인 말놀이를 재현함도 빼놓을 수 없다. “뽕나무/ 앞에 서서/ 방귀 뀌지/ 말아요.// 뽕뽕뽕/ 뽕나무 잎/ 누에들의 밥이니까.// 뿌리에/ 비단 실타래/ 숨겨 놓은/ 저 뽕나무.”(「뽕나무」), “속은 텅 비었지만/ 비어서 악기지요.// 온 세상/ 맑은 소리들/ 그 안에/ 품은 나무.”(「대나무」) 같은 작품들은 언어유희를 하거나 유사한 대상이나 개념을 떠올리게 만듦으로써 훌륭한 식물도감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동시조집이 있어서 아이들은 좋겠다. 얘들아, 이리 와 자연과 놀자!
(사진출처_푸른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