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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nterview
생활과 예술 그 경계의 공간
덕영목공소 & 덕영카페
인터뷰_’덕영카페’대표 정재훈 작가
글_정연주 작가
사진_기획홍보단
작은 도로의 모퉁이에서 환하게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목공소에는 가득 쌓여있는 나뭇조각들 뒤로 기이하게 생긴 철재 조각품과 가지각색의 공구들이 보인다.
그 옆에는 이용소와 같은 3선 줄이 덕영카페라는 글자와 함께 있는 동그란 사인볼이 돌아가는 카페가 있다.
전혀 다른 공간처럼 보이는 이 두 공간은 작가 정재훈이 운영하는 곳이다.
작가의 친구들은 덕영목공소와 카페를 보고 “꼭 정재훈 같다.” 라고 말한다.
작가 정재훈의 공간들은 그의 작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그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들로 아늑함을 자아낸다.
D : 대문 J : 정재훈 작가
D : 덕영’라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 이름을 어떻게 지었나?
J : 공사를 모두 직접 했다. 공사 중 창고에서 오래된 덕영이용소 전단과 바리깡, 드라이어 등을 발견하고 공간이 지닌 시간도 함께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D : 장소 선택의 이유?
J : 졸업하자마자 선택한 작업실 공간이 지금의 덕영목공소 2층이다. 졸업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보여주기만을 위한 작업에 회의를 느끼며 새로운 환기를 위해 덕영목공소를 만들었고 작년 2월 덕영카페를 오픈했다.
D :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이 느끼거나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J :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공간을 만든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런 의도를 넣지 않고 공간을 구성하려 애썼다. 또한, 의도뿐 아니라 공간의 일방적인 해석에도 폭력이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기에 덕영카페내의 30년 전 두꺼비집, 수도관, 덕영이용소 전단을 그대로 두었다.
D : 공사도 직접했다고 들었다. 공간 준비를 어떻게 했나?
J : 카페와 목공소, 이 작은 테이블, 의자 하나하나를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직접 다 했다. 커피도 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을 배우기 위해 유명한 바리스타를 찾아가기도 하였다. 이제는 작은 카페를 컨설팅해 줄 수 있을 정도다.
D : 목공소공간이 밖에서도 훤히 보이게 오픈한 이유는?
J : 작가 활동을 한창 열심히 할 때 작가의 생활이 동물원의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쇼윈도 역시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 만든 장치로 현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은 서로의 관심을 원하지 않는가? 본인도 아직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해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D : 목공소에서 하는 일은?
J : 소규모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거나 동네에서 필요한 일, 예를 들면 동네 할머니가 도마를 갈아달라고 하면 갈아드리는 역할을 한다. (웃음)
D : 목공소에서 의뢰받은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J : 유골함에 넣을 물건을 유골함에 들어갈 사이즈로 잘라 유골함에 넣어달라 요청한 일이 있었다. 돌아가신 분도 목수라서 그의 유족들이 일부러 목공소를 찾아 왔다고 한다.
D : 목공소에서 목공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나 기회가 있나?
J : 안전문제 때문에 수업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잘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재능은 따로 있어야 한다. 설명보다는 직접 몸으로 느끼는 작업성향이 있어서인지 가르치는 것보다는 직접 해보라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수업이 생겨도 배우는 사람이 힘이 들 것이다.
D : 블로그나 SNS상에 덕영목공소와 카페의 이야기가 많다. 비결이 따로 있는지?
J : 전략적으로 블로그나 SNS로 홍보하는 카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덕영카페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단발적인 눈에 띄기는 쉽다. 그러나 열기가 식으면 사람들은 금세 돌아선다고 생각한다. 공간 운영의 기본 베이스는 놀이이지만 그 기본의 충실함이 필요하다.
중앙 미술대전 수상을 시작으로 대구문화재단 청년작가 1기로 탄탄히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던 작가가 갑자기 작업활동을 중단하고 목수가 되어 나타났다.
이 유망한 작가에게 많은 기대를 주었던 사람들은 그가 만든 덕영목공소와 카페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공간을 만든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는 작가활동만으로는 생계유지 어려움이 있었으며 목공소와 카페가 사회생활 연습의 첫 단계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말끝에는 감출 수 없는 예술가만의 열정이 보인다.
작가 활동 동안 조금은 폐쇄적이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던 그가 덕영목공소를 운영하며 동네 사람들과 처음으로 인사하며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목공소 바로 아래에 있는 장애인일터의 장애우들과도 말없이 담배를 나누어 필 수 있는, 허울뿐인 소통이 아닌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 덕영목공소와 카페이다.
그의 20대는 건축조각과 디자인조각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였고 20대 이후 사회구조에 관심이 생기며 인간의 정신으로 옮겨왔다.
보여주기 식의 예술에 회의를 느끼며 작업 활동을 중단한지 3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전시활동- 다시 말하면 ‘보여주기’ 만을 잠시 쉬었을 뿐 작업 자체를 멈춘 것은 아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덕영목공소에 가득 쌓여있는 나무조각들은 작업의 부산물이며 안쪽 깊숙이 있는 조그만 작가만의 공간에는 작가의 작업 스케치가 가득 벽에 걸려있다.
작가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작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작업을 위한 작업, 생활을 위한 작업을 추구하며 그 끝에는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작업물, 바로 카페와 목공소가 본인의 가장 큰 작업물이다” 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얼핏 보면 평범한 카페, 평범한 목공소가 문화공간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영목공소와 덕영카페 이곳에는 다른 어느 공간보다 더 친근하고 가까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본인의 첫 사회생활이 된 이 공간에서 한 예술가의 소통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 어느새 작가도 모르게 작가의 마음이 주위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누구나가 편하게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목공소에서 도마를 갈아달라는 작은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원하는 소통이 하나의 방법만이 아닌 만큼 정재훈작가 역시 계속해서 본인이 가야하는 방향을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작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는 그가 내민 명함에는 목수 ‘정덕영’이라고 되어있다.
잠시 엉뚱한 곳에서 소통을 시도하다가 본업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한다.
정재훈 작가에게 덕영목공소와 카페, 지금의 시도는 어떻게 하면 작업을 생활화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