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타지에서 생계와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분주하고 바쁘게 살았던 예전을 떠올리면 여전히 매 때마다의 어려움이 있었겠으나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데만 에너지를 쏟으며 다른 여건들을 마련하느라 분주하지 않아도 되었던 나의 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레지던시 기간은 천국 같은 기회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기분. 에너지가 넘쳐 꿈을 꾸듯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가 친구들과 하하 호호 작업을 하던 때가 된 듯 나는 살짝 상기되어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얼마 만에 즐겁고 새로운 도전이 되었는가, 나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그림이 즐거워졌다. 게스트룸에서 펜 하나 달랑 들고 내려와 사다리를 타고 유리창을 도화지삼아 여기고 저기고 작은 이미지만 가능했었던 상상들을 확장시켜 펼쳐 내려갔다. 밤이면 깜깜한 밖의 공간이 낮에는 안팎의 미미한 경계에 숨어있던 그림들을 대비시켜 더욱 살아나게 해줬다. 낮에 널따란 유리벽 여기저기에 낙서?를 하고 돌아다니던 나는 스스로 이상한 나라의 행복한 앨리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껏 별 자랑거리 하나 없던 나는’나 허락받고 놀아요’하는 행복한 마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괜히 머리를 조금씩 탈색하고, 스스로 고수하던 오리지널리티의 규칙성을 깼다. 지금도 막히는 기분이 들고 답답해질 때면 노랗고 하얀 머리칼을 만들며 이때의 그 기분을 기억한다.
대구예술발전소는 내게는 맨발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린다. 맨 발이 부끄럽지 않은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곳.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에너지가 응축된 신비로운 공간에서 나는 살아 숨 쉬는 공간 자체를 느끼고 예술 안에 살 수 있었다.
예술발전소에서의 2월 개인전에선 작은 드로잉과 함께 작년 땀 흘려 제작한 큰 캔버스 화면으로 실험한 작업들의 일부를 선보였다. 큰 2층의 전시장을 분리해 완전히 나누어진 곳에서 같은 기수의 다른 작가들과 같은 시기 전시를 했으므로 그들이 그간 어떻게 작품을 발전시켜왔는가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한정된 전시 공간이 아닌 곳으로 작품들이 뻗어가 보여 진다면 하고 갈증을 느낀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티스트페어. 해치워야할 일들을 하나씩 끝내가는 가운데, 대구에서 작년부터 이어오던 작당들 중 전시로 발전된 형태를 가져온 궁극체, 대구 작당의 중심이었던 이벤트가 있다.
우리 만남의 중심에는 대구예술발전소가 있었다. 작년 대구 면접 때 만난 동문 정진경 작가에게서 같은 동문인 김소희 판화전문 작가를 소개받았고, 이후 우리는 예술발전소 소장님을 통해 대구에서 이미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정민제 작가를 만났다. 작가들이라 그런지 금새 누가 뭐랄 것 없이 이야기가 통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를 사귀듯 쉽게 친해졌다.
우리는 작품이면서 상품이며, 좀 더 대중에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파생 작품들과 이를 보여줄 전시를 고민했다. 작가들이 모여 놀다보니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 이미지는 전시 포스터로 이어 활용되어 우리 전시의 주요 상품이 되기도 했다. 과감히 이름을 내던진 우리의 <아티스트페어>는 전시와 함께 좀 더 대중에 미술이 쉽고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정진경, 김소희 작가주도의 실크스크린과 정민제 작가 주도의 패브릭리스 만들기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다들 즐겁게 잘도 만들어 벌였다.
그리고 사실 이 일을 제대로 벌이기 전에 우리는 몇 가지 실험들을 예술발전소에서 작당해 실험해보았다. 3월 15일 <욜로, 오 작가여!> 전시 오픈에 맞춰 우리는 하루치기 쇼케이스 전시를 2층 로비와 2층으로 연결된 1층-3층 계단에서 선보였고, 작품이 된 상품과 상품이 된 작품들을 판매했다. 당시 모여든 에너지 덕분일지, 사람들의 관심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우리의 열의는 판매 성과와 별개로 당일치기 전시를 마치면서 거둬들인 일부 현수막과 작품들을 4층의 빈 공간에 채워 넣게 하였고, 자연스러운 실제 전시 구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관심과 열기에 전시는 연장전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고, 전시는 이어졌다. 조금씩 전시 작품과 상품을 변경하고, 유리 쇼케이스에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과 굿즈들을 넣어 1층과 4층 공간에 전시했다. 복도 벽의 공간과 3층의 빈 공간들에도 작품들이 바뀌고, 현수막 들이 걸렸다. 정진경 작가는 최근까지 우리의 작품이 걸린 Studio 4번 방에서 작가의 생생한 작품 창작과정을 노출한 라이브 드로잉을 펼쳤다. 그리고 드디어 2주 전 로비의 일부를 제외한 작품이 철수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맞는 새 여름이 왔다.
정글을 뚫고 지나가는 시간 같다. 정신 못 차리게 더운 가운데 습한 기운에 피부는 따갑고 위로는 끝을 모르는 나뭇잎이 하늘을 막아 지금이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윙윙대는 모기와 벌레들이 눈과 귀를 괴롭힌다. 당장의 눈앞을 막는 잎사귀 덩굴들을 잘라내 가면서 어디 있을지 모를 뱀이나 큰 동물들을 피해서 조마조마 길을 뚫고 나가는데 이것이 길인지 아닌지도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피부에 베어 와 닿는 잎들을 거칠게 때로는 요령껏 거둬내며 한걸음 한 걸음 걷는다. 나는 어쩌면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내딛는다.
실제로 대학을 다시 다니는 꿈을 꾸었다. 자주 꾸는 꿈이지만 늘 각자의 작품은 언제나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빛나 언니와 송이언니, 남희와 동선이 오빠가 같이 다 작업에 열중해서 다닥다닥 작업실을 공유하며 펼쳐내는 큰 작품들을 보면서 매번 매력을 느낀다. 내 손, 내 작업에 대한 아쉬움보다 내가 펼칠 작품을 마음에 그리면서 꿈인 줄 모르고 다시 가슴이 뛰고 두근거린다.
그 예전 좁은 작업실을 공유하며 같이 몸을 부딪치고 생각과 시선을 공유하며 꿈을 키워나가던 시절의 그 옆자리 친구들은 당시엔 몰랐던 배고픈 현실을 잊게 만드는 힘이었던 듯하다. 이미 한참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서 각자의 삶의 길로 뿔뿔이 흩어져 나가, 안부의 소식조차 드문드문하고, 지방으로 내려와 작업을 이어간다며 작업실을 꾸려나가면서도 가장 큰 갈증 중 하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내 옆의 친구들, 그리고 함께 나누던 에너지 같다.
레지던시의 매력은 그런 것일까, 시작하면서 꿨던 그 꿈은 짧지만 찬란했던 2017년의 여름을 만들며 이후로 대구에서의 당연한 지지기반으로서의 왕래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현재의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나의 부족한 마음 솔직한 기록들은 매일 나보다 너그럽고 나보다 여유를 가진 세상에서 조금씩 부드럽게 나이를 먹는다. 새로 맞는 여름들에 찬란히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