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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 #2
관조적 시각으로
글_육종석 미술작가
우리 모두는 천재
관조적인 습관이 예술가나 여타 천재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 관조하는 습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알려진 천재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관조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관조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을 넘어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된 직관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분명히 객관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르다. 객관적인 해석이 관찰을 통하여 논리적인 접근방식으로 이론화한 데이터의 축적이라 한다면 관조하는 방식은 사물을 보고 대하는 방식이 좀 더 직각적이기 때문이다.
육종석, spirogyra 2018, Acrylic, oil, and spray paint on canvas

미술로 이야기 한다면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 때 미학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직관적이고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감각에 의존해 작업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한 여성이 외출을 위해 화장을 할 때 파우더를 얼굴에 바르는 힘의 크기와 각도, 얼굴 전체에 퍼센트 단위로 나눈 파우더의 분포도 등을 논리적으로 계산해서 화장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보통은 경험에 의한 감각과 직각적인 반응을 통해서만 화장을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화장을 하는 방법이 객관적인 이론에 의한 것이 아닌 직관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직관성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발휘되며, 그 배경에는 다시 ‘왜’ 라는 내러티브가 존재하게 된다. 즉 화장을 하는 이유로서 다양한 약속들인 친구와의 약속이나 회사 면접, 장례식장 방문 등 그 외출의 목적에 따라 화장을 하는 방법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한 가지 행동법칙이 적용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동굴 안에서 인형의 그림자만을 보고 사물을 판단한 사람들이 태양이 비추는 동굴 밖 풍경에서 사물을 직접 경험한 사람을 조롱하고 야유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는 곧 19세기 후반 모네를 위시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비교 해볼 수 있는데 그들은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아카데미즘에 반발해 어두컴컴한 작업실에서 뛰쳐나와 태양빛 아래에서 사물을 직접 보고 직각적으로 반응 해 그림을 그렸다. 당연하게도 당시의 주류 회화에 비해 야외에서 직각적으로 그린 그림은 완성도 면에서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주류평단은 그들의 회화를 조롱하고 야유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이 사물을 관조하는 태도로서 동굴 밖으로 빠져나오는 직접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곧 반성하고, 이론적이며 미학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체험과 경험을 통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함으로서 스스로 관조적인 태도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관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행위는 예술의 접근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학(이론)을 통해 예술가가 된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 많은 예술가들이 미학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천재라는 사실을.
연이와 버들도령 동굴 밖을 엿보다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관조, 즉 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술가가 작업을 한다는 것은 결국 주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게 작업한다는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의무감이나 사명감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지한 관조가 필요하다. 자신의 언어, 성향, 외부의 주변상황 등,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을 중심으로 사회 또는 그 시대에 대한 포괄적인 메타포를 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서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일본)의 영화 「라쇼몽 1950」에서 4명의 주인공은 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심판대 앞에서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은 각자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항변으로서 각각 명예, 허세, 순결, 세속의 상징으로서 적용시켜 거짓말을 한다. 그들에게는 사건의 진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 자신의 성향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으로서 작동되어지며 이 상징성은 계급사회로 규정된 한 시대를 대변하는 은유로서의 부조리를 영화는 이야기 한다.
육종석, 수로는 균열에 의해 가물었다
이제 작업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형식적으로 작업의 접근방식은 모델, 연극, 다큐, 신체.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우선 모델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진열장 속 마네킹처럼 도구로서 사용되어지는 차가운 시각으로서의 형식이다. 연극은 모델과는 반대로 작위적인 성격이 강하며 도구가 아닌 감정이 섞인 형식이다. 다음으로 다큐는 말 그대로 현실적용성격이 강하며 무엇보다 사실에 입각한 접근 방식이기 때문에 작가의 개성보다 자료조사위주가 중심이 된다. 마지막으로 신체는 물질성이나 형태 자체이 집중하기 때문에 특정한 현상이나 질감 등 과학적이거나 관찰하는 방식으로의 접근방식이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이 네 가지의 형식을 응용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2018년 작 「Spirogyra」는 한국 전래동화 「연이와 버들도령」에서 시작한다. 동화의 내용은 눈이 많이 쌓인 한겨울 연이의 새엄마는 산나물이 먹고 싶다는 억지를 부리고 착한 연이는 눈 쌓인 산을 헤매다 한 동굴을 발견하고 너무 추웠던 연이는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동굴 반대편을 발견하는데 그곳은 따뜻한 봄 날씨의 낙원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버들도령은 연이에게 봄나물과 천도복숭아를 선물한다.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이 작업은 추운겨울을 암울한 현실에 대한 은유로 묘사하며 동굴 밖을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서 묘사한다. 그리고 그림을 보면 늪에 빠지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보여 지는 장소는 현실이기 때문에 왼편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 도피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밖은 암울한 겨울인데 도피처로 도망쳐온 곳이 지금 이 장소인 것인가.
육종석, 2015 섬, Oil and spray paint on canvas, 170×546(cm)
그림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내부적인 암울함과 외부적인 위기의 상황 속에서 정확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울한 정서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림을 세세히 살펴보면 부모의 품에 의존한 체 성장하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과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 시스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무개성의 무리들, 서로 다른 말만 늘어놓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늪에 빠진 사람들 등이 동굴의 출구 앞에 혼란스럽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는 형식적으로 모델로서의 배치와 연극으로서의 작위적이고 과장된 몸짓, 다큐로서 건물의 정보를 활용해서 이 암울한 낙원을 묘사하고 있다. 다시 동화로 돌아와서 이야기의 끝에 연이는 새엄마에게 죽임을 당한 버들도령과 황량하게 변한 낙원을 보며 슬퍼한다. 이제 연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 버들도령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고민해봐야 할 시기이다. 진정 우리에게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