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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 #1
who am I
글_김하나 문화공동체대가야 / 극단 난연 대표, 작가
호기심에서 시작하다.
극단 한울림에서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여 많이 배우고 많은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활동하며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비전공자인데 어떻게 작가가 되었습니까?’였다. 왜냐면 난 연극과 관련된 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글과 관련 된 학과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학교 다닐 때 부터 운동과 미술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대학도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으며 졸업 후에도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리켰다.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의아해 하는 분이 많으셨다.
글을 쓰게 된 건 극단에 들어와서 부터였다. 처음부터 작가가 목표는 아니었다. 배우에 욕심을 두고 시작했는데 호기심이 발단이 됐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도전정신을 만들어낸다. 글을 쓰는 법을 몰랐기에 배우 활동을 하며 대본을 보고 흉내내기부터 시작했다. 그땐 아무도 내가 작가로써 지금까지 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극 「세븐데이즈」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승부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분명 거기엔 나를 지원하고 응원해준 대표님과 동료들의 힘이 컸다. 다만 큰 기대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잘하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에 힘을 발휘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난 글을 쓰고 그것이 공연이 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걸 싫어하는 나로썬 스스로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날 붙들어 준 건 단 하나였다. 글이 살아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는 그 순간을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난 내 글이 무대에 올라가는 그때 이 일을 멈출 수 없음을 알았다. 인생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다위의 홀로선 배처럼 항해하다

지금의 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고향인 고령에 ‘문화공동체대가야’란 이름으로 문화활동사업을 하고 있다. 또 최근에 극단 난연을 만들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언제나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설레면서도 두렵다. 하지만 처음부터 도전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어느 순간 안정이라는 무서운 습관이 몸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극단 한울림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극단을 나온다는 건 나에겐 큰 결심이었다. 극단이란 곳이 주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극단 소속으로 활동하면 작품을 펼칠 기회도 많으며 실수를 보듬어주는 울타리가 있어 안정적이기도 하다. 많은 활동을 할 기회도 생기고 실패할 가능성도 적다. 이런 보장된 공간을 나오는 건 나로썬 과감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꿈꾸고 아직 겪지 못한 인생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건 누구나 갖는 욕망이지 않을까? 나를 위해 4년 전 둥지를 떠나 첫 도약을 시작했다. 애기 마냥 걱정하시던 대표님에겐 “웃으며 언제나 든든히 계셔 달라 날다가 지치면 쉴 수 있는 고향처럼 뿌리 깊고 튼튼한 나무로 지켜 봐 달라.” 는 말과 함께 부모 품에서 떠나듯 먼 여행을 결심했다.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하면서 우여 곡절도 참 많았다. 인간적 배신도 당해보고 스스로 일을 찾기 위해 전화 한통에도 간절해지고 바닥부터 다시라는 생각에 설렘과 괴로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선언한 나의 30대는 폭풍우가 치는 바다위의 홀로 선 배처럼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많은 경험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작은 파도에도 휘청거리던 내가 어느 정도 강풍엔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이 글에 고스란히 담길 필력을 키우길 바라며 오늘도 항해한다.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해선 세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배우를 시작으로 작가가 됐다. 주목을 받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 부담이지만, 아름다운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배우의 꿈을 놓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욕심이 많아 이도 저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배우로써 길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연이 끝나면 모든 관객은 배우에게 박수를 친다. 관객의 한마디는 배우에게 적용된다. 관심과 사랑은 배우에게 1차적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너무나 좋았다. 공연이 끝난 후 받는 박수가 좋았고 연기 연습을 하며 갖는 괴로움도 즐거웠다. 마약과 같은 중독이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난 빠져 나갈 구멍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배우를 하다 지적을 당하거나 지치면 작가라는 구멍으로 숨었고 작가라는 굴에서 지치면 배우라는 구멍으로 달렸다. 그것도 한때였을 뿐 노력하지 않는 실력 없는 배우를 누가 써주겠는가? 어려서 가능했던 것을 실력으로 착각했던 난 나의 오만을 통해 한계를 깨달았다.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글도 배우도 성장하지 못하는 미련한 행동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세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 뒤, 글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우라는 중독을 끊을 수 없어 기회가 오면 그 순간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좋아하는 걸 어찌 막겠는가? 어떤 면에선 배우로써 활동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무대 위를 알고 있다는 건 글을 쓸 때 유리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작품이 공연으로 되는 과정에 있어 필치 못할 수정을 인정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본의 대화체와 배우의 대화체는 다르기 때문이다. 배우와 연출의 해석과 성격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배우와 연출을 해 본 경험은 공연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수정이 필요 없을 만큼의 좋은 글을 쓴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로썬 이 또한 배움이기 생각했다.

연극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한개의 별이 어둠을 밝혀 주 듯

프리 선언을 하고 3개의 작품이 대구 연극제에 올라갔다. 「사발, 이도다완」, 「우리 집에 왜 왔니?」,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연극제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지금 까지 가꾸어 놓았던 나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내 이름 세 글자를 연극제에 올리는 것은 항상 감동이었다. 글 쓰는 법도 몰랐던 내가 늦은 나이에서 시작한 작가라는 길. 그 길에 수고 했다며 토닥여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경연이라는 것이 주는 긴장감도 무시 할 수 없다. 이것은 배우만이 아니라 배우 작가 연출 무대 등 그외 모든 제작진들에게 그러 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나를 선보이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를 받고 쓴소리, 단소리 모두 듣는 순간이다. 이때는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도 하며 연극에 온 힘을 쏟는다.

이번 연극제는 내게 좀 특별했다. 그 이유는 연극제 때 다루어진 인물 때문이다. 바로 「이육사」. 역사극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한 인물을 두고 사실과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육사는 독립 운동가이자 글을 쓴 작가이기도 했기에 더욱 그랬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를 다시 서점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막막했다. 도대체 무엇을 쓰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육사의 책을 있는 대로 다 사서는 집에서 무작위로 읽기 시작했다. 그의 시부터 그의 산문집 등 그가 집필한 글과 그의 일대기 등을 반복하여 보았다.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틈만 나면 들여다봤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 가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 지 알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그의 사진을 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 하고 싶은데요? 지금 나에게 무슨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요?”
돌아오는 건 오히려 물음 이였다.
“나는 누구니? 나는 뭐하는 사람이니?”
그 대답이 듣고 싶어 던진 질문에 오히려 역공을 당한 난, 더 이상 물어 볼 수 가 없었다. 그 뒤로 그의 시와 산문을 읽으며 상상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난 그것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당장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사는데 누군가의 인생의 답을 구하는 게 잘 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괴롭지만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연극 「버지니아」

결과적으로 비록 큰 상은 타지 못했지만,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작품이 됐다. 연극제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바닥에 책들과 자료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짧지만 굵직한 몇 달을 보낸 후 그 흔적을 홀로 정리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처음이었다. 그의 시는 어느새 내 마음에 한 개의 별이 되어 다가 왔고 새벽까지 잠 못 들며 그를 그리고 썼던 내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의 시와 그를 알아내려 써내려간 글에서 나는 나를 다시 보게 되고 글의 기쁨을 찾게 되었다. 가슴으로 써낸 글은 그 어떤 단어도 손상되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언제나 ‘수정하셔도 됩니다!’ 했던 나였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고쳐질 때마다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의 시와 그를 알아가며 내가 찾아내고 만들어간 이육사는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게 했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이런 작업의 행운을 또 언제 만나게 될까?

숨어 있는 글을 쓰다.

「안녕,다온아」, 「호야 내새끼」는 경험을 통해 나온 작품이다. 실제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에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글의 소재를 찾는 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소재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학창시절 때 겪은 일이나 가족과의 대화 등이 작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직접 겪고 항상 들어온 대화체만큼 생동감 넘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로써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고정되지 않은 생각으로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은 상상보단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경험이 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역사극이다.

「사발, 이도다완」,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같은 역사극 또한 실제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다. 실제 존재한 인물과 사건을 다룬 다는 것은 항상 어렵다. 그 시대에 살아 본적이 없으므로 상상만으로 그 인물의 말 성격 습관 생각 배경 등 허구를 실제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오만해져서도 너무 겸손해서도 안 된다. 역사책의 작은 한 줄을 토대로 몇 페이지의 대사와 상황을 만들어 내고 짧게 명시된 사건을 두고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작업이다. 같은 인물과 사건을 두고 몇 년이 흘러 다른 작품이 나올 수 도 있다. 상상을 구현한다는 건 지금의 순간이 참 이여야 한다. 세상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그것을 찾아내고 숨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은 삶의 원동력이고 작가의 길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번 기대한다. 미친 듯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만나는 것을.

연극 「호야 내새끼」
기회와 자유는 공존하지 않는다.

대구에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건 나에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기자님은 ‘대구에 작가가 없다. 뛰어난 작가 발굴이 시급하다’고 글을 올리셨다. 하지만, 대구에 많은 젊은 작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그들이 드러나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젊은 작가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작가 영역을 침범당하고 원하지 않는 각색 및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행위들로 인하여 스스로 작가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선 세대차이로 인한 글의 변화나 극의 변화도 충분히 있다. 그것을 경험에 빚대 실력과 경험의 부족으로만 치부하여 빛을 보지 못하거나 아예 작가의 길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신세대와 구세대 모두의 몫이다. 작가의 부제엔 글에 대한 제대로 된 금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작품을 써서 그것이 공연이 되면 그때 뿐, 재공연이 되더라도 작가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일회성 작품으로 치부된다. 공연을 올려 주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기라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할 것이다. 몇 개월을 고심하여 내 놓은 작품을 일회성으로 치부된다면 점점 작가는 생계적 문제를 이유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관례가 아니다. 당연히 지급 받고 대우 받아야 될 문제이다. 젊고 경험이 부족하단 이유로 자유의사를 무시당한 각색도 억울한데 금전 문제도 해결 되지 않는다면 누가 글을 쓰겠는가? 말로는 ‘젊은 예술인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잘 되어야 예술계가 큰다’ 라고 하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젊은 예술인들도 버틸 힘이 없어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예쁘다는 말만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다. 관심과 좋은 환경도 좋지만 물을 주어야 튼튼하게 자란다. 젊은 예술인들이 돈 때문에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