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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자력갱생 영화제 개척하기
: 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결산과 소회
글_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1] 단상 : 비슷한 시기에 열린 두 영화제 비교
#1. 2018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4.5(목)부터 11(수)까지 1주일간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열렸다.
#2.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는 5.3(목)부터 12(토)까지 10일간 전주 영화의 거리 CGV/메가박스/전주시네마타운/독립영화관/전주돔 3개 상업영화관과 1개 독립영화관, 1개 야외상영관에서 열렸다.
구분 개최횟수 행사기간 상영작 상영관수 상영횟수 관객수
장편 단편 합계
전주국제영화제 19회 10일 197편 44편 241편 16개 536회 80,200명
대구사회복지영화제 9회 7일 13편 25편 38편 1개 35회 908명
두 영화제의 예산과 행사인력은 수백 배 차이가 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와 위상을 가지며 국제영화제로서 국비 지원 및 전주시와 전라북도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기업과 지역사회의 후원 역시 적지 않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아직 영화계 내에서도 모르는 이가 훨씬 많고, 지역사회 내에서도 인지도가 낮다. 정부 지원 및 기업 후원은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제’영화제로서의 요건 외에는 집 평수가 심하게 차이 날 뿐 대구사회복지영화제 또한 영화제로서 최소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대마불사’란 사자성어는 영화제에도 들어맞는다. 물론 판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제는 영문명대로 ‘Film Festival’, 즉 영화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 행사인데 화려하고 큰 판이 될수록 취지상 더 효과가 배가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실질과 외형이 적절하게 조화되지 않는 몸집 부풀리기는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영화제가 넘쳐나는 가운데 간간히 들려오는 영화제 내의 불협화음과 부작용들은 그런 불편한 지점을 간혹 엿보게 만든다.

2018년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2018년 9회 영화제를 큰 탈 없이 지난 4월 마무리했다. 상영관 규모에 비해 관객도 적지 않았고, 언론방송 홍보나 열악하나마 재정적으로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신설한 섹션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 다큐 영화들을 보기 위해 서울이나 부산 등 타지에서 영화관계자들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구 지역사회에서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하는 줄도 몰랐네?’거나’벌써 9회나 되었나요?’ 에 머무는 실정이다.
[2] 영화제의 기원과 경과
pt1. 국내 대부분의 영화제가 중앙/지방정부의 지원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는 반면,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그 출발이 다소 상이하다. 2010년부터 영화제가 시작되었지만 그 전 이야기가 좀 있다. 2008-2009년 2년간 매월 정기상영회를 10여 차례 열었다. 상영회는 주로 보건의료와 사회복지 관련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구성원을 주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늘 바쁘다 보니 뜨문뜨문 열리는 상영회 홍보나 관객모집은 지루하고 힘 빠지는 순간의 연속이었고 이럴 바에야 몰아서 해보자! 는 부심이 바로 대구사회복지영화제의 탄생이었다.
2010년 제1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pt2. 그렇게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2010년 9월에 1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예산과 전문성 모두 부재한 가운데 초기에는 겪어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행착오를 통과의례로 거쳐야 했다. 1회 영화제는 사회복지의 날(9월 7일)에 맞춰 열렸지만, 당시 영화제 주력단위들이 병행하던 ‘대안사회복지학교’가 10-11월에 먼저 진행되던 중이라 2회 영화제부터 시기를 옮겨 4월 초ㆍ중순으로 시기가 고정되었다.
pt3.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지자체와 기업이 주관 및 후원하는 영화제는 수백이 넘지만 유독 대구광역시는 영화제가 적어서(당시에는 대구단편영화제가 거의 유일한 지역 내 영화제였다) 참고하거나 배우려면 일일이 영화제가 집중된 서울이나 부산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해야 했다. 그렇게 실수를 거듭하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상영작 선정이나 행사 홍보를 위한 실무를 자체적으로 소화하고, 영화제의 (거의 유일한) 강점이라 할 조직위원회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단체관람 및 실무인력 지원에 의지해 행사의 틀을 잡아나갔다. 정말 밑바닥 실전을 치룬 셈이다. 그렇게 영화제는 이어져왔다.
pt4. 회차를 거듭하면서 대구사회복지영화제의 특성이 형성되었다. (1) 대구지역에서 사회복지와 보건의료 사안을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2) 2000년대 이후 사회적 화두로 자리를 잡은 복지논의와의 연계성을 주제로 삼았다. (3) 예산 부분은 조직위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분담금을 종자돈으로 삼고 관객들의 소액후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특히 상영작 선정과 주제 관련해서는 이미 유사한 형태로 관련분야 단체가 주관하는 여러 부문영화제들(노인, 장애, 빈곤 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보편복지’담론과 이어지거나 그해의 화두가 되는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나 한국사회현실의 이면을 잡아내는 독립다큐멘터리가 부각되었다. 사실 굳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지나고 보니 그렇게 흘러온 경우가 많았다.
2014년 제5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3] 영화제의 1단계 정착
#1. 수백의 영화제가 국내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로 상징되는 ‘국제영화제’들에 익숙하다. 하지만 모든 영화제가 그렇게 대형화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1)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중심이 되는 ‘로컬’ㆍ’커뮤니티’ 영화제로 설정하고, (2) ‘보편복지’담론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이슈를 이해하거나 토론하는데 활용되는 방향으로 상영작 주제를 잡았다. 영화 애호가들의 기호 충족보다는 지역 시민교육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지려 고민해왔다. 3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런 면모는 8회까지 쭉 이어져왔다.
#2.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1단계 정립을 거치면서 5일간, 1.5개 상영관(상설 1관, 주말 1관 추가)에서 1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1,000여 명의 관객이 찾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독립다큐멘터리와 배리어프리 영화 외에 복지 논의의 확장을 위해 “환경과 복지” 섹션을 신설했고, 중요 선거가 연이어지면서 “복지와 정치” 섹션을 만들었다. 점점 섹션이 추가되면서 상영작 선정이나 작품 섭외를 위한 소요가 점점 늘어났고 당연히 필요예산도 증대되었다. 대구지역 내 영화제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영화제에 요구되는 기호와 의견도 다변화되었다. 1차 정립단계에서 다양하게 제기된 입장들은 영화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거장의 기원 : 고레에다 히로카즈)
[4] 변화의 기로에 선 9회 영화제 1부 : 성과
#1. ‘아홉수’라는 말처럼 9회 영화제 준비과정에서 곡절이 많았다. 이제 9년차 쯤 되면 안정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안정된 지원기반이 없이 매년 ‘헤쳐모여’식으로 조직위원회를 꾸려 예산을 마련하고 상근 사무국 없이 자원봉사에 의존해 실무를 치르는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매해마다 위기를 맞는다. 점점 높아지는 관객의 눈높이와 기대에 비해 취약하고 불안정한 영화제의 기반으로 맞춰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노릇이다. 현재의 소박한 취지를 유지하느냐 좀 더 맷집을 키워서 본격적인 영화제로 나아가느냐의 갈림길에서 갈지자 행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도 9회 영화제는 큰 탈 없이 진행되었다.
#2. 9회 영화제는 1단계로 정착된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다 해 본 셈이다. 직전 8회 영화제 상영작이 18편이었는데 9회는 두 배가 넘는 38편을 상영했고, 상영시간 확보를 위해 5일에서 7일로 행사 기간이 늘어났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요구와 기호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부문섹션을 보강했다. 영화 애호가(통칭 ‘시네필’)들의 기대에 부응해보고자 <거장의 기원> 섹션을 신설해 첫 단추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90년대 TV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했다. 또한 영화제가 기존 극장에서 소개하지 않는 독립영화들을 소개하는 “쇼케이스”역할을 수행하고자 소외된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독립단편애니> 섹션도 새롭게 선보였다. 최근 매해 벌어지는 선거 시기에 맞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복지와 정치> 섹션도 상영작을 대폭 확대하고, 근래 화두인 페미니즘과 퀴어 운동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2018년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에서 서울에서 단체로 방문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관계자들
#3. 영화제는 문을 닫지 않고 유지될수록 인지도나 홍보 측면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행사다. 9회까지 오면서 이제 영화제 개최를 홍보하면 최소한 대구지역에선 주요 방송이나 언론매체에서 기사화는 기본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영화제를 기다리는 소수의 관객층도 미약하나마 형성되고 있다. 특히 영화제가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역할, 멀티플렉스가 놓치거나 외면하는 독립영화나 영화제의 기획의도에 의한 섹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하게 지역에서도 영화제를 한다는 자족적인 평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건이 되는 한 영화제의 주제의식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관계자들의 평가나 검증을 통해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을 계속 쌓아나가고 있다. 다음해가 기다려지는 영화제가 된다는 것은 그런 축적의 결실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영화제나 상영회 기회가 부족한 대구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고 활용되는 showcase 기능은 시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보장하는 공익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동시에 영화제의 존재의의라 하겠다. ‘작지만 견고한 영화제’로서 9회 영화제는 긍정적인 평가를 과분하게 받았다.
[5] 변화의 기로에 선 9회 영화제 2부 : 한계
#1. 그러나 한계는 여전히 뚜렷하다. 잔치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대구사회복지영화제에는 돈 나올 데가 없다. 애초에 제대로 된 영화제를 알고 시작한 게 아니라 상영회 몇 개 조합하면 영화제가 되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보니 중장기적인 재원 마련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또한 조직위 참여단체의 대부분이 시정감시나 정부와 기업 비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원사업 신청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에 따른 재정지원과 거의 무관하게 자력갱생하는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상영작이 늘어가고 상영작 수급이나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부대행사 소요경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안정된 예산의 부재는 점점 치명적인 제약으로 다가오고 있다.
#2. 이어지는 고민은, 영화제의 초동주체라 할 조직위 참여단체들의 결합력의 저하이다.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특성상 영화제에 올인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힘들다. 지난 몇 해간은 ‘연대’취지로 함께 해 왔으나, 영화제의 자연스런 성장과정에서 단체들 간의 격차가 생기고, 실무를 주관하는 단체의 피로도 증대와, 겉도는 단체의 소외감은 쌍생아처럼 함께 증가하고 있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가 영화계에서는 약간씩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그런 인식이 시민사회단체 활동에선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역량이 모여 있기 때문에 영화제 초기에는 오히려 타 영화제에 비해 알뜰살뜰한 살림과 실무 제공도 이뤄졌지만, 영화제가 성장하면서 남들 하는 건 다 해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다 보니 영화 관련 전문역량의 공백은 점점 크게 드러나는 중이다.
2018년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6] 마무리 : 새로운 고민으로 이제 10주년을 준비한다
성과와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9회 영화제는 큰 탈 없이 치러졌고, 관객도 소규모 행사로서는 적지 않았으며, 워낙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치르다 보니 적자도 거의 나지 않았다. 다양한 상영작과 신규 섹션에 대한 평가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영화제의 방향성에 대해 ① 기존에 형성된 소규모 지역영화제로서의 소박함 ⇔ ② 주제 영화제로서 쇼케이스 역할 강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에 역부족임도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10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전과는 달리 5월말까지 평가와 전망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로 10회 영화제와 영화제를 치르기 위한 조직형태에 대한 전망이 드러나고 추진될 예정이다. 지역에서나 전국적으로 보나 매우 ‘의외적’으로 탄생하고 이어져온 대구사회복지영화제의 10주년은 어떻게 만들어질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지금도 열심히 굴러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