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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리뷰
글_서영완 작곡가
‘군중-세상을 향한 양날의 검’이라는 주제로 무대에 올라간 대구시립무용단 제73회 정기공연은 2017년 12월부터 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성용의 데뷔 무대로 3월 13일, 14일 양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막을 올렸다. 김성용 감독은 경북예술고등학교를 졸업, 1997년 동아무용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2013년 제34회 서울무용제 대상작인 ‘초인’으로 안무대상 및 4개 부분을 석권하고 최근 2016년 미국 America College Dance Association에서는 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미국과 일본을 주 무대로 세계적인 안무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키워온 젊은 감독이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비교적 문화예술분야에 있어 보수적 뉘앙스를 짙은 대구지역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젊고 새로운 표현적 아이디어를 구사하는 예술감독이 활동하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대구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은 무용관계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매개가 됐던 것 같다. 또한 이번 정기공연 무대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의 재건축을 위해 무대장치 전체를 해체한 골격 그 상태로 진행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과감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콘크리트가 드러난 거친 기둥과 벽면, 그리고 낡은 공장을 연상하게 하는 다층의 레이어 사이를 관통하는 알루미늄 환풍구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날것의 음침함과 투박함을 풍기며 ‘군중’이라는 거친 아이디어를 매우 인상적으로 연출될 수 있게 한 훌륭한 세트 그 자체로 사용되어졌다. 이러한 공간 자체의 원형을 최대한 연출과 연결시켜 활용하는 ‘장소 특정적 연출’의 시도는 본 공연의 질감과 규모, 그리고 입체감을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즐길 수 있게 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하나의 무대로서 스스로를 작품에게 고스란히 내어준 이후 장렬히 전사하는 감동의 장면이 연상됐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이번 작품 <군중>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우리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 번째 무대 ‘집단전염, 익명의 구성원들이 가진 양날의 검<군중>’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개인이 익명이라는 이름으로서 군중을 형성하고, 그 군중이 야기 시킬 수 있는 집단의 폭력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춤추는 소녀를 집어삼키는 한 남성의 거대한 그림자는 그 자체로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연출해내며 악의 탄생을 알린다. 군중의 힘과 뜻의 규합을 요구하는 선동자의 외침, 그리고 저음 가득한 호흡으로부터 오는 무대는 본격적으로 군중이 가진 거대한 힘, 희망과 폭력이라는 양날의 검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저음의 울림은 중첩된 선율들과 함께 이내 군중 뒤로 사라지는 한 소녀의 죽음을 보여줬고, 군무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너무 쉽게 잊혀 어디론가 끌려 나가 사라지고, 악기의 규모와 볼륨의 곡선은 무대 뒤편에 일렬로 줄지어선 무용수들을 하나하나 군중으로 합류하게 하고, 무리는 곧 거대한 군중의 힘을 갖게 된다. 무대의 깊이와 넓이를 감안한다면 자칫 작품의 초점을 분산시키는 결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기우가 있었지만 이는 김성용 감독의 안무적 배려와 빛과 소리의 효과적인 사용 그리고 소품의 배치와 함께 비교적 친절하고 우아하게 진행됐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무대의 전체를 통해 보이는 각각의 군무들은 개별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으로 전달되었으며 그 모든 개별들은 군을 이루어 하나의 작품으로서 일관성을 잃지 않아 군중을 이루는 개별성과 집단성을 효과적이고 과감하게 표현했다. 모든 안무와 음악이 중단된 순간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은 군중의 사이를 배회하며 등장하고, 다시 음악과 군무가 시작되면서 희생자를 찾아 다른 시간의 레이어를 가지듯 느리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희생되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또 누군가는 그 희생자에게 침을 뱉는다. 이러한 표현은 무용을 보면서도 하나의 영화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극적효과로 전달되었고, 관객들의 시선 포인트를 일시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무대 ‘방관자 사회, 군중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제노비스>’는 희생자, 키티 제노비스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시인 딜런 토마스가 자신의 아버지 죽음 이후 남긴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마세요-Do not go gentle into the good night.”라는 시의 내레이션으로 제노비스와 함께 방관자들의 굳어진 얼굴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방관자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한다. 1964년 뉴욕에서 벌어진 실제사건을 소재로 한 무대는 피해자 ‘키티 제노비스’를 다시 무대 위로 소환시켰다. 뉴욕의 주거단지 사이에서 한 소녀의 범죄현장을 침묵으로 외면한 38가구의 방관자들은 ‘방과’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협으로부터 방어했던 사건으로 본 공연의 주요 모티브라 할 수 있는 이 불편한 장면을 익명이라는 의미의 푸른색 반투명 큐브 속에서 재현시킨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방관자와 가해자 그리고 희생자를 작은 박스 안에 함께 입체적으로 배치시키면서 이 잔인한 범죄현장을 과격하게 노출시켰다. 실루엣으로 처리된 이 장면은 마치 TV를 통해 보이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범죄장면에서는 투명판을 걷어 실사로 표현함으로서 그 장면을 더욱 강렬하고 충격적으로 전달하게 했다. 문화라는 행위가 작가로부터 관객으로 이어지는 일방적인 폭행과 같은 양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객들은 참여의 방식을 취하기 힘든, 그저 방관자라는 틀에 묶여버리게 된다. 이 상황은 시종일관 이 공연 전체를 관통하고 있지만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과 연결된다. 과녁을 향해 야구공을 던지는 사람과 그 사이에 놓인 무용수들을 단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이다. 양심이라는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은 미약해지고 ‘방관’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작품해설대로이다.

세 번째 무대 ‘모두를 위한 위로, 군중의 또 다른 얼굴<희망>’에서는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등장하고 상처 입은 방관자 즉 군중은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어 군중의 새로운 모습인 희망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 사용된 음악은 반복의 미를 매우 세련되게 표현하는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짐머(Hans Zimmer)의 작품이 사용되었다. 하나의 멜로디가 겹겹이 쌓이며 저음과 고음의 폭넓은 규모를 가지는 음악은 군중의 집단성과 폭력성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 반복이 주는 이점을 김성용 감독은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다. 반복은 익숙함을, 그 익숙함은 집중도를 가지게 하고 그 집중도는 작품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또한 딜런 토마스의 시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전달하는 규합의 선동적 메시지는 무용과 음악의 한계를 극복하는 선이라기보다 전반적인 극적효과를 배가시키는 장치로 치밀하고 객관적이고 극적이면서도 효과적이게 사용됐다. 또 무대 위의 모든 사물은 그 이유와 기능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극의 중간부분에서 등장한 유리를 든 무용수가 이후 희생자에게 침을 뱉는 장면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모든 소품을 통해 한 배우의 동선을 이해하게 하고 또한 그 행동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
이 작품을 통해 필자는 그저 반갑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이유는 현대예술에서 사용되는 이 현대라는 용어자체가 어렵고 난해하다라는 이미지와 연관된다는 것 자체를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고 본다면 이번 ‘군무’라는 작품을 통해 김성용 감독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점은 단순한 단어가 주는 선입견의 장벽이 아니라 사유하고 고민하게 하는 그 예술 본연의 기능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희망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진출처_대구시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