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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대구 청년의 삶, 적당히 치열하게!
– 영화 <수성못>을 보고 –
글_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대구 출신 유지영 감독의 영화 <수성못>. 영화 도입부, 카메라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희뿌연 수성못 수면 아래를 비추다가 갑자기 위로 솟구쳐 오리배 동동 떠 있는 쾌적한 유원지 풍경을 보여준다. 앞으로 혼탁한 물밑과 쾌적한 물위의 접점에서 ‘적당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놀고먹고 죽어가는 대구 청년의 삶이 펼쳐질 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영화 <수성못> 장면
먼저, 적당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20대 초반의 희정. 대구 소재 지방대를 때려치우고 유원지로 유명한 수성못에서 알바를 하며 서울 소재 대학 편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무엇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서울에 가서 살아보려 한다. 그러려면 편입 시험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한 달 80만원이라도 벌려고 하루 종일 유원지 관리하는 알바에 나섰다. 집안이 넉넉지 않아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가 없다. predicament! 틈을 내 짬짬이 영어 단어 외우지만 ‘곤궁’한 몸 때문에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영화 <수성못> 장면
고된 알바에 지친 희정은 길가에서 타인이 조금만 접근해도 적대감을 바로 표출할 정도로 감정의 날이 잔뜩 서있다. 집에 돌아가서도 마찬가지. 남들처럼 취업할 생각이나 하지 다 늦게 웬 공부냐는 엄마의 타박에 바로 폭발한다.
“내가 엄마한테 뭐 도와달라고 그랬나?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왜 참견인데?”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 일도 안 하고 주구장창 책만 읽고 있는 남동생에게도 가시 돋친 말을 던진다.
“임마, 치열하게 살아라. 치열하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서울 소재 대학에 편입하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할 뿐이다. 실제 편입에 성공하려면 정말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지만 알바 하느라 제대로 공부를 못한다. 그나마 예기치 않은 자살 소동에 휘말려 공부시간을 뺏기고 만다. 마침내 시험 날은 다가왔고 서울로 가 편입시험을 치른다. 3주 후 합격자 발표 날에 확인한 두 글자, ‘탈락.’
영화 <수성못> 장면
희정의 남동생 희준은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적당히 치열하게 놀고먹고 있는 중이다. 친구가 단 한 명 없고 수면제 없으면 잠조차 이룰 수 없다. 하루 종일 하는 거라곤 엄마가 차려준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는 것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것뿐이다. 운동도 안 하니 나날이 몸이 부풀어 올라 누나에게 김정은 닮았다는 놀림을 받는다. 사람 만나기도 포기하고 돈벌이도 안 하고 있지만, 남자라면 마땅히 군대에 가야한다는 ‘규범적 사실’은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신체검사를 계속 받지만 그때마다 정신과 7급 판정을 받아 군대에 가지 못한다.
비사회적인 희준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고 먼저 말을 건네는 상대는 누나 희정이다. 밥상 앞에서 희정에게 연달아 묻는다.
“니, 편입준비 잘 되고 있나?”
“올라가면 생활비는 우얄낀데?”
걱정하다가도, 누나는 좋겠다며 부러움을 표시한다. 뭐가 좋겠다는 거냐는 되물음에 말한다.
“하고 싶은 게 있잖아.”
할 게 없으면 돈이라도 벌라는 희정의 지청구에 돈 벌어도 쓸 데가 없다며 짜증을 낸다. 하루는 엄마와 싸우고 뛰쳐나가는 희정과 마주친다.
“오희정, 니가 여자로 태어난 걸 고맙게 생각해라.”
뜬금없는 말에 희정이 웬 흰소리냐며 어이없어 하자 대뜸 쏘아붙인다.
“야, 니가 남자였어도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편입준비 한다고 했으면 집에서 가만뒀을까?”
영화 <수성못> 장면

결국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남자로서 하고 싶은 일을 집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렇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희준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 그러려면 집 밖을 나와 남들 앞에 인간으로 현상해야 한다. 하지만 고도비만 몸매에 비호감 얼굴이라 자신이 없다. 남자라는 사실만이라도 인정받고 싶다. 군대에 가려고 계속 시도하는 이유다. 틈만 나면 담배를 입에 문다. 이미 오염된 의례인 담배 피우는 일로 남자임을 과시하려 든다. 엄마는 집에서 애기 다루듯 밥만 챙겨줄 뿐 남자로 인정을 해주지는 않는다. 아버지와는 아예 대화가 끊겨 있다. 남은 사람은 오로지 누나인데, 누나로부터 “쓸모없는 새끼!”라는 말을 듣자 자살을 결심한다. 자살 카페에 가입해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예상대로, 실패.

또 다른 대구 청년인 영목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자살예방센터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희정처럼 서울로 탈출하는 것을 꿈꾸거나 희준처럼 집안에 처박혀 있는 대신 영목은 자살을 선택한다. 근데 적당히 치열하게 시도한 탓에 벌써 두 번이나 실패했다. 현재 겉으로는 자살예방센터에서 일을 돕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살 카페를 운영하면서 또 다른 동반자살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영목은 자살할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왜 자살을 시도했냐는 질문에 답한다.

“그냥, 뭐.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원래 자살 시도는 여자 친구가 먼저 했다. 맨날 울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도 내고 달래도 보았지만 결국 여자 친구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졌다. 여자 친구를 도와 자살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번개탄 피워놓고 동반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했다. 이번이 세 번째 시도. 새로 모은 자살 카페 회원들을 만난 후 자살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 여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 동안 고마웠다며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
영화 <수성못> 장면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만나지 말자.”
왜 이렇게 영목은 성공하지도 못하는 자살을 계속 시도하는 것일까? 그건 사실 자살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리더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그들에게 유서를 쓰게 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소집해 회의를 주도한다. 살아오면서 이만큼 리더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 동반자살이 계속 실패해야 또 다른 자살 카페를 만들어 리더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니 자살 시도도 적당히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대구의 세 청년은 하는 일은 달라도 ‘삶의 에토스’가 같다. ‘적당히 치열하게!’ 그러니 제대로 살지도 놀지도 죽지도 못한다. 어쩜 이렇게나 한결같을까?
편입 시험에 실패한 후 희정은 수성못 벤치에 앉아 투신자살을 생각한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옆에 앉는다. 수성못에서 투신자살 소동을 벌였던 남자다. 평생 가족밖에 모르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내가 바람나는 통에 삶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남자. 수성못은 그가 20년 전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곳이다.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얼른 집에 들어가.”
집? 잠시 고민하는 사이, 저 멀리 물가에서 또 다른 남자가 기타를 치며 울부짖고 있다. 어떤 남자가 매일 수성못에 나와 기타를 치다가 투신자살하여 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불현 듯 떠오른다. 집에 들어가야 하나, 저 남자를 따라가야 하나?
영화 <수성못> 장면

수성못에서 시작한 영화는 수성못에서 끝난다. 수성못의 혼탁한 ‘물밑’은 지방에서 패배감으로 주눅 든 채 살아가는 지방 청년의 처참한 죽음의 세계다. 반면 쾌적한 ‘물위’는 신자유주의 시대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하며 살아가는 서울 청년의 화려한 삶의 세계다. 죽음과 삶의 접점인 ‘수면’은 집이다. 이 집에는 평생 세상과 담쌓고 오직 가족만을 위해 성실하게 노동하며 살아온 부모가 있다.

부모는 자녀가 서울에 가서 경쟁하는 것을 극구 말린다. 지방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가 매니저 엄마에게 관리 경영된 서울 청년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또한 자녀가 죽음의 세계로 추락하는 것도 막는다. 집에만 있으면 어쨌든 간에 먹여주고 재워준다. 부모는 자녀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사코 붙잡으며, 나간 자녀에게는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닦달한다. 집 밖에는 패배와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집이야말로 ‘적당히 치열하게’라는 대구 청년의 에토스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어쩌랴, 대구에 만연한 이 문제적인 집을!

(사진출처_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