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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
검붉은 문장에 대한 기억
– 정화진의 시세계 –
글_송현지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사
1990년대 초반, 정화진이 잇따라 내놓았던 두 권의 시집,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민음사, 1990)와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민음사, 1994)를 읽어보았던 이들이라면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살고 있던 ‘우산리’를 잊지 못하였을 것이다. 소녀가 할아버지와 함께 고기를 잡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던 할머니를 지켜보던 곳, 신열을 앓던 그녀가 살아나기도 했던 그곳 우산리. 물과 불이, 삶과 죽음이 한데 뒤섞여 있던 이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정화진의 유년을, 그 고스란히 남아있던 상처와 기억들을 보았다.

그러나 ‘우산리’는 오랫동안 저 두 시집 안에 갇혀 있었다. 정화진의 새로운 시들을 읽을 수 없던 시간들 속에서 그곳은 가끔 문을 열고 찾아오는 이들만을 반겨줄 뿐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할 수 일이라곤 종종 그곳을 들여다보며 그리움을 달래거나 다른 이들에게 그 문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오래되자 그 문은 조금씩 녹이 슬어 쉽게 열리지 않았고 주변의 숲들마저 그 문을 천천히 가려버리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정화진의 우산리는 그 문을 한 번 열어 본 이들만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아름답고 슬픈 문 앞에 서성이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화진이 새로이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의 지난 시집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새로운 시들은 우리를 더 이상 우산리로 데려가지 않으며, 청바지를 입고 “녹슨 부엌”에 앉아 그곳을 기억하던 화자는 (「녹슨 부엌」 )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정화진의 시는 그 우산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더욱 다정한 말을 건네므로 그녀의 신작시들을 함께 읽기 위하여 이 글은 우산리가 있던 오래된 두 시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정화진 시집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

정화진의 시는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녀는 곰팡이가 피어 있던 습하고 작은 방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지만(「맨드라미 속」) 그 기억들은 주로 부엌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것은 자전적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듯 그녀가 이 부엌을 통해 유년을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화진의 어린 화자는 여러 번 큰 병을 앓았고 그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할머니는 부엌에서 갖은 동물들을 죽여 약을 달였다.
그런데 자신을 살렸던 부엌에 대해 정화진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부엌이 아픈 자신을 낫게 하기 위하여 칼을 씻은 물을 주고, 칼로 땅을 십자표로 긋는 미신을 서슴지 않으며(「칼이 확대된다」), 자라의 목을 따기도 하였던,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있었던 공간이었던 한편, 자신의 생명을 위해 많은 동물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죽이거나, 할머니가 가마솥에 삶았던 동물들을 정화진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기억들로 그녀는 마당에 피어나던 맨드라미의 붉은 육체에서 “막, 잘라 얹어 놓은 개 대가리”(「맨드라미」)를 본다. 자신 때문에 죽은 개가 마당에 스며들어 저 붉고, 서늘하고, 선명한 맨드라미로 피어났다는 상상은 그녀가 그들의 죽음을, 그리고 스스로의 죄를 얼마나 생생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 사 온 고기를 삶으면서도 그녀는 “불거진 눈알들이 끓고 있”(「칼끝에 부서지는 빛」)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에 대한 죄책감과는 별개로 할머니에 대해 정화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좀 더 복잡하다. 그녀는 분명, 할머니가 새끼가 있는 자라의 목을 잘라 자신의 “입술을 열고”, “자라의 피”와 그것의 가느다란 영혼 하나”를 부었다는 것을(「징거미 더듬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시에서도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먹은 자라가 새끼들을 둔 어미 자라였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고백하면서도 그녀는 할머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다.

“아…… 할머니는 자라의 목을 어떻게 잘랐을까”
―「남쪽 마당」부분 부분

시인의 저 말에는 할머니의 잔인한 행동을 탓하는 마음보다는 자라에 대한 미안함, 더 나아가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다. 손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다정한 할머니가 자라의 목을 자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탄식하며 시인은 그 자라들의 목을 자르며 힘들었을 할머니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의 감정을 세심하게 헤아렸던 그녀였기에, 성장하여 다시 이 부엌을 생각하였을 때 그녀는 이 부엌에서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웬 여자들이 증오의 시선으로, 어렴풋이, 그림자처럼/밖을 내다본다 비녀를 지른 듯한 여자들이/한 무리 부엌 아궁이 곁에서/우두커니 낱말이나 문장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불기도 구원도 없는 부엌을 지키고 있다//수세미로 문지른 듯 줄무늬 투성이인 늙은 문장이 어눌하게 굼틀대며 그 부엌문을 나온다//문장의 첫머리가 검붉다(중략)//그러나 먼저 불기 없는 부엌에 불을,/검푸르고 낮고 음울하게 마당귀로 목을 늘어뜨리고 늙은 문장이 몇 마디 낱말을 잇는다//부엌은 여전히 불안하고 어둡고/불완전하기만 하다
– 「불완전한 문장」 부분

“나는 혹은 그들은 할머니는 어머니는”(「불의 가장자리」)과 같이 시인이 이 ‘불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불러 모으자 이 부엌은 더 이상 우산리의 작은 부엌에 머무르지 않는다. 불기도, 구원도 없는 이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여자들을 그리며 시인은 과연 할머니가 그 부엌의 열기에서 따뜻함을 느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폐렴 말기의 허파를 떼어 들고 겨우겨우 온” 여자아이에게서 “작은 허파 하나를 잽싸게 낚아”챘던 것이 “사내 아이”(「징거미 더듬이」)였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는 할머니에게 칼과 불을 쥐어주고 그녀의 온기를 빼앗았던, 그리고 그녀들에게 어눌한 문장을 뱉게 하였던 다른 존재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들이 맨드라미와 같은 그 검붉은 문장을 뱉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자신의 “거무스름하게 거친 문장”이 행여 마모시킬세라(「고정된 풍경」) 시인은 검붉었던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두 시집에서 계속해서 더듬는다.

최근 발표된 시에서 보건대 이제 정화진의 시는 새로운 부엌을 그리고자 하는 것 같다. 물론 부엌에 있는 그녀들은 여전히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녀는 딸로 보이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그녀에게 했던 것과 같고도 다른 방식의 위로를 전한다.

얘야, 갈 곳 없는 공원 뒷길 이층 카페에서 만나자/바삭거리는 밀웜과 양상추와 에픽테토스의 지팡이로 기우뚱 세월을 견뎌보자구나
―「양상추만 바삭바삭」 부분
다른 동물의 목을 자르거나 불로 조리하지 않아도 완성되는 음식을 함께 먹는 일. 이 글은 시인이 내민 이 양상추를 함께 ‘바삭바삭’ 먹기 위하여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먹었던 그 검붉은 음식들을 기억해야만 우리는 그녀의 다음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대화나 나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