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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 #3
우리 난민들
글_박자현 작가
‘우리는 우리의 집을 잃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일상적인 삶이 지닌 친밀함을 잃었음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잃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이 세계에 어느 정도 소용된다는 자신감을 잃었음을 의미한다…-우리 난민들, 한나 아렌트(양창아 번역)

2017년 여름 대구 구도심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에서 3개월간 작업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 공간이 대구 성매매 집결지인 자갈마당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있다는 것을 면접을 보러가서 알게 되었다. 문화예술공간이 어떤 연관으로 성매매 집결지와 가까이 위치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다리던 입주를 하고 얼마 후 같이 입주한 왕덕경 작가와 늦은 금요일 밤 5층 건물 테라스에서 영화를 보았다. 언노운걸(The Unknown Girl)이라는 영화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매춘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불법체류자 소녀의 사망사건에 책임을 느끼게 되고, 살해된 이민자 소녀의 이름과 그녀가 죽임을 당한 경위를 찾아 나선다.

자갈마당에서 돌보는 길고양이들
영화를 다보고 나서 왕덕경 작가와 나는 둘 다 사실은 영화 보다 테라스 너머 붉은 불빛들이 켜진 자갈마당 입구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 속 현실은 내가 있는 건물 바로 맞은편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그 맞은편 안전한 건물에서 영화 속 장면이 아닌 실제의 거리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 가까운 물리적인 거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일었다.

대구에 지내면서 이곳 작업실이 있는 예술 공간 외에 자갈마당 중심에 위치한 건물과 수창2공원 옆 사택 부지 또한 갤러리와 문화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2017년 말경에 오픈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갈마당을 둘러싸고 바로 인접하여 세 군대의 문화예술공간이 위치한 것이다. 그리고 10월 말경에는 자갈마당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에 입주민들이 입주할 예정이었다. 아파트에 입주민이 입주하는 시기인 2017년 10월 말까지 대구시와 중구청은 자갈마당 업소를 폐쇄하고 종사자들에게 떠나라고 통보했다.

대구에 여름은 이미 알고 있던 터라 한낮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밤이 되면 작업실 건물 앞 수창2공원 벤치에 앉아 있곤 했다. 늦은 밤이 오면 자갈마당 앞 거리에 지나가는 남성들을 호객하는 이모님들도 공원 벤치에 강아지들과 같이 앉아 계셨다. 덕경 작가와 나는 우리를 경계하고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 강아지들에게 매달리고 간식을 사서 강아지들을 어르고 달랬다. 우리를 보면 등을 돌리고 앉는 메리와 공순이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가게 앞에 앉아 있는 공순이 / 정성스러운 빗질에 즐거워하는 메리
메리와 공순이는 유기견으로 떠돌다가 이 거리에서 아프고 마른체로 발견되어 자갈마당에 언니들과 이모들이 구조하고 돈을 모아 치료해 돌보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모님들은 우리들 작업실 안에 침대와 선풍기는 있는지 부산에서 옷가지는 가지고 왔는지 물으며 우리를 걱정해 주었지만 나는 어쩌면 이번 겨울 지나기 전에 떠나야할지도 모르는 이모님들의 상황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원 너머 완공이 다된 아파트를 바라보며 한 이모님께서는 자신들은 아무래도 떠나야 할 텐데 그러면 공원 옆에서 살고 있는 메리는 어찌 하냐고 탄식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강아지들과 이모님들과 앉아 있으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즐겁다가도 나는 내가 이공원에 왜 앉아 있는지 의심스럽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내가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남자들이 가게 입구로 오면 이모님들이 건물 안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거나, 한번도 공원에서 만나거나 얘기해본 적 없는 건물 안 언니들이 문밖으로 나와 이모들을 부를 때 그럴 때면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강아지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뉴스들을 들춰보며 이런 문구들을 본다.’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가 예정된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 밀집지역(일명 자갈마당)이 문화예술 시설 단지로 개발된다. 장기적으로 달성공원과 연계한 개발 방안도 추진된다.’

테라스에 앉아 왠지 희미해져가는 듯이 보이는 자갈마당을 바라보면서 작가로 이곳 예술 공간에 잠시 머물다 떠나야하는 나의 이동이 자갈마당에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사람들의 내몰림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너달 혹은 일년.. 지내던 작업실을 떠나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다시 또 원서를 내고 경쟁을 통해 다시 계약하는 것을 반복하는 지금의 예술가들의 단발적인 움직임은 대기업과 시가 만드는 도시정책에 필요한 일부로써 기능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걸 하고 지원서를 쓰고 있는 걸까?

이번주는 6개월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에 지원하기 위해 원서를 써야한다. 많은 작가들이 지원할 것 같아 경쟁율이 높을 것 같다고 걱정들이 들려온다. 원서는 천천히 쓰기로 하고 내일 대구 자갈마당 중심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하는 ‘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미술 행위’라는 강연을 들으러 갈 생각이다. ‘성매매 집결지 내의 전시공간에서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궁하다. 강연을 듣고 밤까지 기다렸다가 공원에서 이모님들과 강아지들을 만나고 싶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자갈마당의 단디.수채.21X29cm.2017 / 자갈마당의 양돌이.수채.21X29cm.2017
대구에 머물렀던 마지막 달 9월 늦은 시간에 근처 동물원에 갔다.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앉은 동물들은 미동 없이 낯선 나를 응시 했다. 비가내린 뒤라 안개가 어두운 시야를 더 흐리게 했다. 멀리서 굵고 낮게 울리는 소리를 시작으로 우리안의 동물들이 일제히 같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서럽게 우는 듯 한 낮고 슬픈 동물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한번도 서로 만나본 적이 없을 각각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일제히 같이 울었다. 울음은 잦아들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시작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종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 다른데 함께 소리치고 울면서 그 목소리가 울타리를 넘어 같은 대기를 형성 했다.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나온 해녀할머니가 생각났다. 자신의 지난 삶을, 일찍 떠나보낸 딸을, 노래처럼 울음처럼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전할 때 출렁이고 넘쳐흐르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