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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문화를 제대로 즐기는
‘루프탑 문화’
글_한윤조 매일신문사 특집부 차장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속, 포근한 봄기운이 담뿍 묻어난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위의 기세가 맹렬했던 터라 작은 봄기운 하나에도 몸과 마음이 기쁜 듯 반응하게 되는 봄의 초엽이다. 바람 속에 수만 개의 칼날이라도 박힌 듯 온몸을 베어낼 듯 달려들던 찬바람의 기세가 꺾인 것만으로도 “이젠 바깥나들이를 해볼 만하다”는 용기가 샘솟는다. 회색빛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요즘은 ‘루프탑’ 카페와 펍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잠시의 여유를 즐겨볼 수 있다. 특히 루프탑의 매력은 날씨가 무더워질수록, 어두운 밤일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반짝이는 조명 속 냉랭한 에어컨 공기가 아니라 부드러운 자연바람에 몸을 맡기고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을 들이켜기에 제격이다. 지난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루프탑으로 한번 나가보자.
광장코아에 위치한 루프탑 펍 ‘PP11’의 해 질 무렵 풍경
버려진 공간, 옥상의 재발견
루프탑이 인기를 끈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어느 건물에나 있는 옥상이지만, 이곳은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잊힌 공간이었다. 집값 비싼 지역에서는 가난한 청춘들이 기거하는 옥탑방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지만, 지역에서는 주로 물탱크와 빨랫줄이 걸려 있는 게 고작이었다. 고층 건물이 증가하면서 안전상 문제로 잘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치러질 무렵만 해도 ‘옥상’은 대구시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무허가 건축물과 잿빛 시멘트 옥상, 깨지거나 허물어진 슬레이트와 기와지붕, 색 바랜 방수천과 폐타이어로 덮인 곳들이 적지 않았다. 마라톤 코스 중계를 하는 중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낡고 칙칙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에 대비해 대대적인 정비를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옥상이 ‘하늘로 옮겨간 마당’으로 진화하면서 오히려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천덕꾸러기 놀던 땅이 금싸라기 요지로 귀한 대접을 받고, 예쁘게 치장하면서 요즘 옥상은 오히려 건물 내부공간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인기를 얻는 곳도 많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옥상은 ‘루프탑’이라는 단어로 더 친근하다. 루프탑 카페와 펍(Pub·맥주 등을 파는 선술집) 등이 다양해지면서 청춘들의 새로운 놀이공간이 되고 있다. 늘 삭막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일상에서 벗어나 열린 공간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해방감’이 많은 사람을 옥상으로 유혹하고 있다.
루프탑 카페 ‘7pm’ 창 밖으로 내려다본 수성구 모습
루프탑, 콘크리트 벽에서 벗어난 해방의 공간
‘루프탑’은 시원한 개방감으로 바람과 햇살을 즐길 수 있는 데다, 높은 전망으로 해 질 무렵 석양을 즐기기에도 딱이다. 밤에는 선선한 공기와 함께 반짝거리는 조명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점도 옥상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봄날엔 아직 밤 기온이 차지만, 도심에서도 마치 야외로 캠핑 나온 듯 모포 한 장을 온몸에 감싸고 서늘한 밤공기와 달빛을 감상하는 낭만도 있다.
대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앞장서 옥상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무한 변신을 꿈꾸는 도심 자투리 공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덕분에 수영장 루프탑으로 명성을 떨친 동성로 아벤티노를 비롯해 서문시장 시지 발롱데세(Ballon D’essai), 지산동 다이브(Dive), 월성동 비우프(Bewoof) 등 블로그와 SNS에서 이름난 카페들이 즐비하다.
광장코아에 위치한 ‘PP11’ 펍은 대구 지역 루프탑 중 가장 넓은 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760㎡(약 230평)의 확 트인 공간이 펼쳐진 이곳은 지난해 7월 한 손님이 올린 SNS 사진 덕택에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다.
PP11 김택현(47) 사장은 “사실 지난해는 시험 삼아 영업을 해 본 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활성화할 계획을 세웠지만, SNS에 올린 야경 사진이 인기를 얻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곳의 콘셉트는 ‘옥상 캠핑장’이다. 빈백과 흔들그네, 캠핑의자와 파라솔 등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고 바닥에 깔린 초록색 인조잔디가 마치 풀밭에 앉아있는 느낌을 준다. 여름이면 핑크빛 플라밍고 튜브가 한가로이 노니는 무릎 높이의 작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술 한 잔을 즐길 수도 있다. 옥상의 외벽은 3m 높이의 철제 빔으로 둘러싸여 안전성을 확실히 하면서도 넓은 유리를 통해 시야까지 함께 확보했다.
1. 광장코아에 위치한 루프탑 펍 ‘PP11’의 해 질 무렵 풍경. 하늘에 뜬 초승달의 모습이 은은하다.
2. 핑크빛 플라멩고가 노니는 무릎 높이 작은 수영장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누구나 인생 샷!
옥상 공간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사진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핫 플레이스의 공통점은 ‘사진빨’이 좋은 곳이라는 점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일이 흔해지다 보니 사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SNS 사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빛의 감도’인데 화사한 자연채광이 사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루프탑은 낮에는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갓 튀겨낸 팝콘처럼 튀어 오를 듯한 색감이 표현되고, 밤에는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 삼아 빛나는 조명의 매력이 배가 된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볼풀장으로 유명한 루프탑 카페 ‘플라방’
대구 중구 교동에 자리 잡은 ‘플라방'(PLBG)은 독특한 예술적 색채가 뿜어져 나오는 루프탑 카페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분홍빛으로 칠해진 화사한 옥상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노란색 트리에는 도넛과 아이스크림이 매달려 있고, 가운데 위치한 볼풀장에서는 파스텔 톤의 공들이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독특한 모습의 마네킹들과 아그리파 석고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플라방의 모든 인테리어와 각종 미술작품은 모두 이곳의 대표인 플라방 우(33·그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실명 대신 ‘플라방’을 이름처럼 사용한다) 씨가 손수 제작하고 그린 것이다. 온 카페가 거대한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의 작품은 미키마우스의 귀가 특징이다. 그래서 심지어 옥상의 트리도 잘 살펴보면 꼭대기에 미키마우스 귀를 달고 있다. 우 대표는 “예술적인 강렬함(그는 ‘징그러운 것’이라 칭했다)과 귀여운 매력이 함께 어우러진 예술작품 같은 카페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곳의 매력은 시즌마다 완전히 다른 공간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늘 가면 변함없는 장소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변신하는 묘미가 있다. 올해도 1월 1일부터 문을 닫고 대대적인 인테리어 교체작업에 들어가 3월 중 다시 문을 연다.
1. 카페 분위기 만큼이나 독특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는 ‘플라방’의 음료들
2. 미술을 전공한 작가이기도 한 ‘플라방 우’ 대표가 시그니처 캐릭터로 내세우는 미키마우스 귀
3. 알록달록한 색감과 볼풀장으로 유명한 루프탑 카페 ‘플라방’
4. 루프탑 카페 ‘플라방’ 한켠에 마련된 포토존. 역시 색감이 화려하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옥상은 많은 이들에게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속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 없이 사는 현대인들도 옥상에 올라서면 자연스레 고개 젖혀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대구 만촌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7PM’은 여유로운 휴식을 테마로 한 루프탑 카페형 펍이다. 건축과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해 온 서홍우(55) 대표는 멍 때리기 좋은 힐링공간을 만들기 위해 범어 시민체육공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만촌동에 직접 집을 짓고 루프탑을 설계했다. 테이블과 가구 등 카페 인테리어 하나하나 그의 손을 거쳤다.
‘7PM’이라는 카페 이름은 오후 7시가 힘든 회사 일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연인과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에서는 ‘7PM’의 일몰 풍경이 워낙 예쁘다 보니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이름으로 택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곳은 나지막한 언덕과 높은 아파트 사이로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뷰를 가졌다. 이곳은 비 오는 날도 넓게 열린 폴딩도어와 유리 천장을 이용해 충분히 분위기에 젖어 들 수 있다.

서 대표는 “어릴 적 읽었던 소설 ‘소나기’의 원두막처럼 비가 오는 바깥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창밖으로는 색색 지붕이 예쁜 주택가가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응답하라 1988’에나 등장하는 어릴 적 정겨운 풍경으로 되돌아간 인상을 준다.
폴딩도어로 넓게 창을 낸 ‘7pm’
작은 옥탑방 공간이 루프탑으로 변신하면 마치 나만의 안식처와도 같은 포근한 느낌을 선사한다. 경북대 북문 앞에 자리 잡은 ‘카페 산격’은 옥탑방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천정이 없는 야외 공간과 함께, 아늑한 방 안에 앉아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조명과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매력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물론 비가와도 멋스러운 공간이다.
멋진 루프탑 펍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도 있다. 대구경북의 유일한 수제맥주 공장인 ㈜대경맥주는 삼성라이온즈파크 1층에 에 맥주 제조시설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펍 ‘디퍼스트(D-First) 루프탑’을 운영 중이다. 외야에서 그라운드 전체를 조망하면서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