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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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독립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1)
글_권현준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정책기획팀장
2017년 대구독립영화의 성과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성주 주민들의 사드배치 반대 투쟁을 그린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는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6월 극장 개봉을 통해 전국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으로 제작된 유지영 감독의 대구배경 영화 「수성못」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올해 4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 지역에서 오랫동안 단편영화 작업을 해오던 고현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지역 영화로는 최초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신인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 부문에 초청되어 장편 극영화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주었다.
수성못(유지영 감독) / 혜영(김용삼 감독)
단편영화에서도 그 활약은 빛났다. 첫 연출작인 「은하비디오」(2015년)로 제16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우수상을 받았던 김현정 감독은 두 번째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으로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이는 5년 만에 나온 대상이었다)과 제18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대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3대 단편영화제 중 하나인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졸업과제」, 「가족오락관」등 특유의 단편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김용삼 감독의 「혜영」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감독상, 제18회 대구단편영화 애플시네마 우수상을 받았다. 장편영화 연출부 스텝 등을 거쳐 오던 장병기 감독의 첫 연출작인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제19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관객상)과 제15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을 받았다.

나만 없는 집(김현정 감독)
그동안 대구 지역에서 독립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과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더불어 몇몇 작품들이 크고 작은 영화제에 진출하고 또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 여러 편이 동시에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대구에는 영화과도 없고(있었지만 사라졌다), 그렇다고 영화 제작과 관련한 인프라가 잘 조성된 것도 아니다. 독립영화는 지역 문화예술 분야의 변방이었다. 척박한 변방에서 일구어낸 이 성과는 비인기 종목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과 같다. 무관심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그 가능성과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인 것이 바로 2017년 대구독립영화의 성과였다.
맥북이면 다 되지요(장병기 감독)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성과

이러한 성과가 당연히 한순간에 얻어진 것은 아니다. 2000년,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활동하던 영화인들이 지역 영상제작 활성화를 목표로 설립한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이하 독협)는 20년 가까이 지역 독립영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크고 작은 상영회 개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지역 영화정책 연구 및 개발 등 지역 영화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올해 19회째를 맞이하는 대구단편영화제 역시 독협에서 주최하는 영화제로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구단편영화제에서는 대구경북 지역 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애플시네마’ 섹션 운영과 제작지원 프로그램인 ‘피칭포럼’을 통해, 지역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 밖에 지역 영화 생태계를 둘러싼 몇 가지 외부 환경의 변화들 역시 그 성과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시민들의 영상미디어에 대한 접근성 확대와 독립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지역 영화인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영화교육의 장이었다. 많은 젊은 영화인들이 배움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교육시설이었다. 그곳에서 단편영화제작 워크숍 등에 참여했던 수강생들은 현재 지역 영화현장에서 어느덧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력으로 성장해있다. 2011년에는 본격적인 제작지원제도인 대구다양성영화제작지원사업이 시행되었고, 이는 지역 영화인들이 작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5년에는 지역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개관하여, 지역의 작품들을 일상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계속 변화해왔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오늘의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역의 영화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서두에 언급된 연출자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협업해온 수많은 스텝의 경험과 노력이 더디지만 역량으로 쌓이고 쌓인 것이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낸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파란나비효과(박문칠 감독)
당면한 과제들

현장의 제작자들이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많은 제작자가 영화 교육을 받기 위해 대구를 떠났거나, 떠날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실제로 떠났다가 교육을 받고 다시 대구로 오는 경우도 있다. 제작 워크숍,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등 제작과정 전체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초과정 외에도, 시나리오, 프로듀싱, 촬영, 편집, 후반작업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세분화된 교육 과정 또한 필요하다. 한 예로, 지역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사운드믹싱, 색보정 등 영화를 최종으로 완성하는 후반 작업 분야이지만 이 과정은 대구에서는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초과정에서 고급과정까지 단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까지 제작 전 분야에 걸친 세분화된 교육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작동되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제작지원제도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현장의 제작자들은 대구다양성영화제작지원사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편당 지원되는 제작지원금이 적다는 점이다. 최대한 많은 작품을 지원하기 위한 점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하다. 그런데도 현재 단편영화의 편당 제작비는 제작의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 500만 원 이상이 소요되고, 제작 스텝들에 대한 적정한 인건비와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한다면 1,000만원 이상도 소요된다는 점에서 각 작품에 대한 지원금의 규모가 더욱 상향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작품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다른 한편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지점이다. 덧붙여,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각 장르의 특성에 맞춰 제작지원을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고현석 감독)
무엇보다 필요한 건 지속적인 관심
언급된 교육과 제작지원 분야 두 가지 외에도 지금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여러 조건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 확인한 건 다름 아닌 가능성이었다. 성과를 내서 보너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또다시 발현될 수 있는 안전망을 보다 촘촘히 갖추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무엇보다 성과는 잊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번의 성과가 지역 사회,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이 지역 독립영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기회가 되길 바란다. 지난 20년 가까이 무관심의 분야로 변방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야 중심으로 한 걸음 옮긴 느낌이다. 앞으로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듯이, 중심으로 옮겨 디뎌야 할 발걸음 역시 많이 남았다. 지역 독립영화는 여전히 변방이다.
  • 1)「변방에서 중심으로」는 1997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영화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채 20년의 역사도 갖지 못한 독립영화를 재조명한 작품으로, 비록 독립영화가 사회의 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한다는 믿음으로 제작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