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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 시인, 박해수
시가 노래가 될 수 있었던 박해수시인
글_서지월 시인

대구가 ‘시의 도시’라는 것도 그만큼 시인들이 서울 이외의 타도시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 박해수시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시만 쓰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시인의 시가 가곡이나 가요로 불리워져 빛을 발하는 시인도 있기 때문이다. 박해수시인은 아마 후자쪽으로 더 알려진 시인이라 본다.
시가 대중화되기란 그리 쉽지 않은데 1985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가요가 되어 매스컴을 타면서 알려지게 된 시가 ‘바다에 누워’인 것이다.

이 ‘바다에 누워’는 한 편의 시였다. 시인이 되기 위하여 통과되어야 하는 관문이 있는데 1974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된 시인의 작품이다. 그것이야 한국문단에서나 시인들만 아는 시로 읽혀져 왔었고 알 뿐이지 일반인들은 전혀 몰랐던게 사실이었다.

내가 박해수시인을 알게 된 것은 대륜문학회에서였다. 즉, 같은 대륜고등학교 출신 문인들 모임인 대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인데 내 고등학교 선배시인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대구에서 함께 했는데 대륜문학회 시인들은 평볌한 시인들이었기 보다 튀는 시인들이 많았다. 여기서 튀는 시인이란 문단 밖으로 알려지는데 기여한 시인을 말함이다. 대륜문학 출신인 정호승 김재진 서정윤같은 시인도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시인들이었고 보면 말이다.

그렇게 박해수시인의 ‘바다에 누워’가 MBC 대학가요제에서 높은음자리가 불러 대상을 차지해 기요로 전파될 줄은 시인 자신도 몰랐다.

앞서 밝힌 대로 박해수시인의 ‘바다에 누워’는 시인 등단후 신인이었을 때로 젊은 날 혈기왕성할 때의 그 시가 뚜엣가수 높은음자리에 의해 가요가 되어 불리워지기 시작했는데 경위는 이렇다고 한다. 시중에 떠돌다가 요행히 눈 맑은 젊은 뚜엣가수 높은음자리에 의해 눈에 뜨여 작곡되고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게 되어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박해수시인 곁에 있었는데 말이 많았다. 시인의 시가 가요로 작곡이 되어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것과 그 노래가 저자인 박해수시인도 몰랐다는데 있다. 높은음자리가 시를 도용한 셈이 되는데, 그래서 그 가수가 박해수시인에게 사과도 하고 해 무마된 일이기도 했다.

역시 대륜고등학교 같은 선배인기도 한 정호승시인의 시 <이별 노래>는 가수 이동원씨가 작곡하여 불렀는데 사전에 시인과 작곡자가 서로 알고 작곡이 되어 노래로 불리워진 것으로 아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성격을 달리한 경우였다.

여기에 나의 경우 중국 만주땅에 가면 <해란강 여울소리>라는 한국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사신문이 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매월 발간되는 연변가사협회에서는 발간하는 조선족 시인들의 가사를 수록하는 신문이다. 이 <해란강 여울소리>에 가사, 즉 노랫말이 게재되면 만주땅 전역의 음악전공 작곡가들이 이 신문을 보고 조선족가요 즉 연변가요로 작곡하여 연변TV 매체나 각종 조선족 문예공연 등을 통하여 불리워진다.

어느 해 만주땅 연길을 가니 그해의 6개월 전에 이미 내 시 ‘내 사랑’이 연변방송국의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고 연변가수가 불러 녹화까지 되어 연변TV의 ‘매주일가’라는 프로에 1주일간 방영되었다고 원로시인이신 연변시인협회 김응준회장님이 모임에서 내게 알려준 것이다. 열악한 만주땅에서 조선민족의 혼과 얼을 담아 노래로 불리워져 조선족 그들의 향수가 되기에 고마운 일로 여겨졌던 경우이다.

이처럼 다른 시인들은 좀처럼 해낼 수 없는 일(시가 가요가 되어 전파되는 것)을 박해수시인이 대륜문학의 선배로서 선봉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박해수시인의 시인에 대해 일반인은 물론 시인들도 잘 모르는 사건(?)이 있었다.

앞서 시인이 되기 위한 등단 관문이 있다고 했는데 박해수시인이 <한국문학>으로 등단하게 된 묘한 인연이 있었다. 나하고도 수 차례 담론을 펼친 바 있는데 박해수시인이 <한국문학>으로 등단하려 한게 아니라 그 이전 <문학사상>이라는데에 투고하여 심사위원 이어령교수에 의해 당선되었다가 낙선으로 밀려나서 다시 <한국문학>으로 등단한 것이었다.

박해수시인은 내게 술회한 바 있다. 자신이 그 당시 <한국문학> 이 아니라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수긍이 가는 말이긴 했다. 물론 개인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광주의 송수권시인의 경우를 보면 오로지 작품으로 한국시단을 강타해 온 유일무일한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송수권시인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박해수시인이 <한국문학>으로 등단함으로 얻은 것이 <바다의 누워>라는 시를 넘어서 가요로 불리워지는 행운이리라 본다.

여기서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전남 광주의 송수권시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인 등단 전이니까 더욱 서로 잘 모르는 상태인데 영호남간 광주의 송수권시인과 대구의 박해수시인이 각각 <문학사상> 신인발굴에 투고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시인의 시가 최종심에 올라 당선이냐 낙선이냐를 겨루었던 것이다. 당시 예심 심사위원은 이근배시인, 본심 심사위원은 서울대 김용직교수와 <문학사상> 발행인 겸 주간인 이어령교수였다. 박해수시인의 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가 이어령교수가 담배를 피면서 낙선시켜 휴지통에 버려진 송수권시인 시 <산문에 기대어>가 아까웠던 모양인지 다시 들추어보는 바람에 당선작이 뒤바뀌어 송수권시인이 당선되고 박해수시인은 낙선되어 쓴 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송수권시인은 당선시 ‘산문에 기대어’로 출발해 재작년 작고하기까지 한국시단에서 어머어마한 조명을 받은 시인으로 우뚝 선 대표적인 지역시인이었던 것이다. 내 문학사에서도 같은 민족정서를 담은 서정시인으로 그리고 가장 가깝게 지내며 평생을 함께 해 온 송수권시인이었기에 감히 해보는 말이다.

박해수시인의 말에 의하면 <한국문학>에 투고한 시는 <바다의 누워>가 아니라 했는데 그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한 시인은 한국시단을 향하여 한 시인은 전국민을 향하여 문학파급에 앞장섰다는 것은 좋은 일임엔 분명한 것 같다.

자료로 남기기에 충분하다고 보기에 대륜문학회 출신 시인들인 박해수 정호승 서지월 세 시인의 노래말을 여기 소개해 두고자 한다.

박해수시인의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시이다.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一萬)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抛物)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감은
만상(萬象)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脈)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無心)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 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 박해수 시 ‘바다에 누워’ 전문.
1985년 제9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작으로 높은음자리 김장수 작곡, 김장수 임은희가 부른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1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 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 듯 찢기워 간다.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2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 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 듯 찢기워 간다.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가수 이동원씨가 작곡해 부른 정호승시인의 이별노래이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라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 예술단장 겸 지휘자 리하수 작곡 연변군중예술관 가수 전예정씨가 불러 한국시인으로서는 처음 연변가요로 불리워지게 된 서지월시인의 ‘내 사랑’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그리움은 해지는 산능선 노을로 앉아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물을 마시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2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그리움은 창가에 이즈러진 조각달로 떠 있지만
누워 있다가도 문득
눈을 감았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연변 YB-TV「매주일가」에 방영 되어 만주땅 동북삼성 전역에 알려지면서 연변애창가요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시가 노래가 되어 불리워진 것은 김소월시인의 ‘개여울의 노래'(정미조 노래)를 비롯해 파인 김동환시인 시 ‘산 너머 남촌에는'(박재란 노래), 미당 서정주시인의 ‘저무는 황혼'(장사익 노래) 등 종종 있어왔지만 섬세한 시적 감각이 멜로디에 실려 다시 선보인다는 것이 쉽지 않고 보면 누가 말했던가. 그 시대의 한 편의 뛰어난 시는 100편의 시론(時論) 보다 값지고, 100편의 시가 발표되는 것 보다 한 편의 시가 노래가 되어 불리워지면 더 파급효과 가 크고 저변확대 되어 오래 간다고.

<서지월시인 약력>
  •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 – 1985년『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 시 당선으로 등단
  • –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 – 2013년, 연변과기대 및 평양과기대 총장으로부터 중국 연변「민족시문학상」수상
  • – 1999년부터 18차례에 걸쳐 만주기행을 다녀옴
  • – 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시와시학사),『백도라지꽃의 노래』(白桔梗花之歌, 료녕민족출판사), 『나무는 온몸 오로 시를 쓴다』(열린시학사) 등 있음
  • –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 –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