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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에세이
대구예술의 힘 : 시인, 박해수
박해수는 억울하다
글_우호성, 캐리커처_김승윤
3년 전 세상을 떠난 박해수 시인이 억울하다? 70을 못 넘기고 저 세상으로 갔으면 억울한 일이 부지기수겠으나 두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간이역 시비 독식’ 시인으로 몰려 온갖 비난을 받으며 살아온 일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도 황당하게 비명횡사한 일이다.
‘간이역 시비 독식’이란 그가 대구문인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대구경북 지역 간이역에 본인이 쓴 시비를 독점적으로 세웠다는 논란이다. 그 전말은 이렇다. 그는 2005년 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대구MBC가 기획한 ‘간이역 시비 캠페인’사업에 동참한다. 그가 고모역·지천역·화본역 등 대구경북 지역의 간이역을 주제로 쓴 시는 돌에 새겨지고 그 역에는 시비가 세워진다. 이렇게 선 간이역 시비는 모두 10개다.
그러자 대구문단에서는 “대구문협 회장인 박해수가 간이역 시비를 독점한다.” “그 지역의 간이역 시비는 그 지역의 시인이 쓴 시로 세우는 게 옳다.”, “박해수는 욕심이 너무 많다.” 등의 말이 나돌고 박해수를 비난하고 욕하고 험담하는 목소리는 높아간다.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샘과 질투 그리고 힐난의 대상이 되어 엄청나게 욕을 먹는다.
그는 억울했다. 대구문협 회장 자격이 아닌 오로지 간이역 시인의 자격으로 ‘간이역 시비 캠페인’사업에 참여했을 뿐인데 욕을 먹다니.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운을 잘 못 만나면 본의 아닌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그런데 정말 큰 구설을 만난 건 간이역 시비가 세워진 지 8~9년 지난 후다.
2013년 6월 14일, 한 일간지에 「박해수 시인 ‘간이역 시비’프로젝트 이후 ‘생존시인 시비 붐’ 기현상」이란 기사가 났다. 기자는 이 현상의 도화선은 박해수 시인이라고 못 박고, 간이역 시비 10기를 거론한 후 “당시 상당수 지역 문인은 자기 고향도 아니 타향에 고향 출신 시인을 무시하고 자기 이름으로 시비를 새운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표시했다.”고 적었다. 그동안 문인 사이에서만 은밀히 떠돌던 소문이 신문에 나자 사실로 굳어지는 꼴이 되었고, 구설이 언론에 의해 공론이 돼 버리고 말았고, 그는 생존 시인 시비 건립붐(나쁜 의미)을 야기한 ‘나쁜 시인’이 돼 버렸다.
평소 못마땅한 일이라도 웬만하면 속으로 삭이고 참아 넘기는 편인 그였지만 이번에 그렇지 않았다. 담당 기자에게 항의를 했던 모양이다. 1주일 후 해당 일간지에 그의 대응이 길게 나왔다. 그는 “그동안 간이역 시 864편을 지었고 4권의 간이역 시집을 냈고 ‘간이역 시인’으로 알려졌다. 내 글이 월간지에 실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걸 본 대구MBC가 ‘경부선철도 100주년 현대시 도입 100주년’기념 간이역 시비건립 사업을 추진했다. 많은 시인에게 기회를 주려 했지만 다들 무반응이어서 결국 내가 희생양이 됐고, 간이역을 살리기 위해 혼자 총대를 멨다.”고 밝혔다.
그의 이런 해명이 대구문단에 수용되었을까. 아니다. 부정적인 기사 혹은 까는 기사가 긍정적인 기사 혹은 해명 기사보다 더 잘 먹혀들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게 뉴스의 속성이다. 앞에 먼저 나쁜 의미의 기사가 나온 후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해명의 기사가 뒤에 나와 봤자 앞의 나쁜 기사에 관한 기억을 잘 지우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결국 그는 전국 문단에선 ‘간이역 시인’으로 불릴지라도 대구 문단에선 ‘간이역 시비 독점자’란 낙인을 받은 채 지내야 했다. 심지어 죽어서도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이다. 어느 시인이 다른 일간지에 그의 대표 시 「바다에 누워」를 친절히 해설하면서 ‘그는 생전에 무려 10기의 간이역 시비를 세우는 등 지역문단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고 한마디 덧붙였다. 아뿔싸.
마침 필자는 대구문인협회장으로 치룬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을 기회를 얻었는지라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간이역 시비 캠페인’을 기획한 공재성 PD에게 그 경과를 물어보았다. 공 PD는 “박해수 시인이 『신동아 』에 간이역에 관해 쓴 글을 보고 모티브를 얻었고, 그의 간이역 시집을 모두 사서 읽어 보고 이 사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공 PD는 “이 사업 에 동참을 부탁한 대상은 시인 박해수이지, 대구문협 회장 박해수는 아니었다.”고 확언했다.
어쩔거나. 그가 대구문협 회장을 맡지 않은 시기에 간이역 시비가 세워졌으면 구설은 없었을 텐데, 오이 밭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박해수 시인 본인은 물론 그 가족과 이웃들과 독자와 사회가 정말 억울해 할 일은 그의 비명횡사다. 그는 억울하게 죽었다. 병원의 잘못으로, 의사의 잘못으로, 의료사고로 죽었다. 이를 증명할 근거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그 유가족에게 발급한 조정중재 결정문에 적혀 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필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의 죽음에 대해 거론하기 싫다며 결정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장례와 의료사고 문제에 대해 앞장서서 일했던 그의 남동생 및 친구를 통해 들은 내용을 토대로 그의 억울한 죽음 과정을 적는다.
2015년 1월 20일. 그는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국선도를 한 후 11시쯤 갑자기 심한 복통을 느꼈다. 수성구 A병원으로 갔고 그곳서 복부CT를 찍었다. 그 결과를 본 의사는 대장암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는 여러 큰 병원 중 어느 병원으로 가면 좋을까를 개업의사인 친구에게 묻자 그 친구는 상급종합병원인 B병원을 추천했다. 그는 오후에 B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서 수술 받았으며 담담의가 누구냐를 묻고 자기도 그곳(다른 큰 병원)서 대장암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B병원서도 복부CT를 찍고 다음날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 검사를 위해선 미리 대장을 비워야 하므로, 그날 저녁 그는 간호사가 주는 물과 관장약을 마셨다. 마시는 도중 배가 아파 못 마시겠다고 해도 간호사는 마시라고 했다. 급기야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해도 의사는 오지 않고 간호사가 통증 주사만 놔주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또 관장약과 물을 주며 마시라고 했다. 그는 마셨으나 배가 빵빵해지며 몹시 아팠다. 간호사는 그래도 마시라고 했다. 그는 꾸역꾸역 다 마셨다. 복통이 극에 달해 죽을 지경이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자 가족들이 그를 찾으러 화장실로 갔다. 그가 의식을 잃은 채 화장실 바닥에 쓰려져 있었다. 의사 몇 명이 달려오고 심폐소생술도 했으나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 때가 오전 8~9시 사이였다.
그의 시신을 안치한 다음 날인 22일 그의 남동생이 담당 의사를 찾아갔다. 담당 의사는 레지던트와 컴퓨터로 CT사진을 보고 있었다. 남동생도 그걸 보았다. 비전문가인 남동생이 봐도 대장에 구멍이 난 모습이 보였다. “이게 천공이 아니야. 그래서 복막염이 생긴 게 아닌가. 대장에 구멍이 났는데도 관장약과 물을 마시라고 한 건 잘못 아닌가.” “CT사진만 잘 봤으면 복막염이란 걸 알았을 거 아니냐. 왜 장천공을 발견하지 못했느냐?” 이렇게 따지자 의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유족들 사이에선 이건 의료사고니 일단 장례를 미룬 채 경찰에 신고하고 검시를 하고 소송을 제기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의 부인은 그의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반대했다. 당시 필자는 남동생에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라고 권했다. 그의 장례를 치른 2개월 후쯤 남동생은 형수를 대신하여 실제로 의료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다. 의료중재원은 B병원의 의료과실을, 곧 그는 대장암이 아닌 복막염을 앓았는데도 B병원이 진단과 치료를 잘못한 탓에 죽음에 이르렀음을 확인했다. 그의 부인과 B병원은 의료중재원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합의(보상금 합의)했다.
그의 사망원인이 의료사고로 밝혀지긴 했지만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가. 처음 그를 진료한 병원이 그에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을 때 B병원이 아닌 다른 큰 병원으로 갔으면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어처구니없게도 큰 병원이란 B병원이 복막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람을 죽게 하다니, 의료진이 조금만 더 성실했다면 사람 박해수와 시인 박해수를 살려냈을 게 아닌가.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마음을 치료하는 시인을 살려내고 시인은 더 오래 시를 쓴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고 우리는 더 행복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