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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
지역에서 바라보는 문화분권
글_장세길 전북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장
문화분권, 평등과 자유의 균형이 중요
취향과 관련돼 있는 문화향유는 계급적 특성에 따라 위계가 나뉜다. 상류층은 고급문화를, 하류층은 저급문화를 좋아하고 즐긴다. 문화사회학의 핵심인 부르디외(Bourdieu) 이론이 내세우는 기본 가설이다. 여기에서 상류층은 중심, 하류층은 지역과 통한다.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는 문화취향의 중앙 중심적 위계를 완화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문화의 민주화는 분권이라기보다 중앙의 문화적 역량을 지역이나 대중에게 분산하는, 한마디로 중앙 중심의 사고방식(김규원, 2015: 110)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이에 반해 문화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에 출발한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는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생활의 형평주의(egalitarianism)”(김용신, 2008: 48)를 강조한다. 즉 문화민주주의에서는 ‘평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 전략에서 관심을 갖는 대상은 문화의 ‘향유’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의 향유를 넘어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역에서의 문화분권 역시 문화의 향유와 함께 문화적 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사례를 소개한 김규원 박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글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프랑스에서) 지방분권이 시작되던 시기에 국가는 중앙적인 정책 철학을 지역에 분산하고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지역의 경우 중앙의 전문성, 역량 그리고 무엇보다 예산 지원에 매달렸던 환경이, 2단계로 진입하면서 점차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중략) ‘지역문화예산’이 문화부(정부)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전문성 차원에서도 지역 차원에서의 자발적 정책 수립에 더 이상 중앙의 ‘훈계’가 불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중략) 국가의 역할은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보장’하는 역할로 변화하게 되었다. (중략) 말로(Malraux) 시기의 문화민주주의도 아니며 랑(Lang) 시대의 지방의 분권을 넘어서 현재는 지방 자치에서 협력을 통한 ‘권역’의 발전을 지향한다.”(김규원, 2015: 113~126).
지역에서 문화분권은 평등과 자유의 균형이 중요하다.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과 더불어, 지역 스스로 문화를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는 조건, 즉 자유가 강화되어야 한다.
문화민주주의 가치를 내건 지역문화진흥계획이 지역별로 수립되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수립한 계획이 탑다운(top-down)되어 ‘지역의 냄새’가 사라진 계획들이 수립되고 말았다. ‘자유’는 고사하고 ‘평등’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김규원 박사가 소개한 것처럼, 우리의 문화분권은 아직 프랑스의 1단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제2차 지역문화진흥계획의 기간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로, 내년에 지역문화진흥계획을 다시 수립한다. 여전히 중앙의 훈계를 들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문화자치를 위한 전략을 마련할 것인지 뒤돌아볼 때이다. 이 글에서는 문화분권을 위한 지역의 과제로 △ 문화향유의 지역화, △ 권한과 권력의 분산, △ 협력을 통한 문화적 발전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평등과 자유의 조화를 위한 과제

첫째, 문화향유의 정책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지역에서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문화자본론에 기초한다. 고급예술을 중심에 놓고, 문화향유에 대한 접근성의 계급적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문화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핵심으로 삼는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 문화향유에 대한 정책적 목표를 ‘문화적 폭넓음(omnivore)’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문화향유의 질에 대한 평등도 중요하다. 도시사람은 국립예술단 공연을 보고 농촌사람은 동호회 공연을 본다면, 양적으로는 둘 다 문화예술행사를 1회 이상 관람(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하는 문화향유지표)한 것이지만 질적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문화향유정책의 성과지표 역시 양에서 질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중앙 중심적 문화향유에서 벗어나고, 지역의 문화적 발전을 위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문화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지역문화전문인력은 문화향유의 지역화와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의 핵심이다. 지난 정부에서부터 양성만 되고 있는 지역문화전문인력이 안정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결단이 필요하다.

중앙 중심적 문화향유에서 벗어나 지역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사진은 2017년에 열린 생동지기 공연 모습. 생동지기는 지역의 생활문화 동호회들의 모임으로 매년 정기공연을 펼친다.

넷째, 지역문화전문인력을 배치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 역시 예산이다. 정부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프랑스 사례에서 본 것처럼, 지역문화의 향유를 ‘보장’하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예산이라는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자는 말은 아니다. 지자체가 아무리 재정이 열악해도 전문인력 1~2명을 배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활동 중인 전문인력에게 역량을 키워줄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지자체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다섯째, 권한을 분산하고 권력을 나누는 문제는 정부-지역 관계만이 아니라 지역의 관-민 관계도 해당된다. 정부가 예산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지역을 줄 세우는 것처럼 지자체 역시 광역지자체는 기초지자체를, 지자체는 민간영역을 줄 세운다. 정부의 권력이 지역으로 분산되도록 노력하면서, 동시에 지역 내에서의 분권에 대해서도 다함께 고민해야 한다.

여섯째, 지역의 역량으로 제2차 지역문화진흥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문화진흥계획의 실행여부를 냉철하게 평가하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법정계획임에도 불구하고 계획 수립과 시행의 강제성이 없다. 평가를 5년 단위로 하지만, 평가에 따른 조치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계획수립과 집행의 강제성이 없으면 계획은 유명무실해진다.

일곱째, 예산이 보장되지 않는 계획은 무의미하다. 정부에서도 계획이 실천되도록 문화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지자체에서도 지역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예산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문화진흥 특별회계 등을 전국적으로 제안했으면 한다.

여덟째, 중앙중심적 정책방향에 맞춰 줄을 세우는 공모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16년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된 공모사업이 70여개에 달한다. 이 중에서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지원사업만 7개이다. 동일한 사업을 공모주체만 달리해서 특정단체에 지원한다. 이 예산을 지역자율형으로 지원한다면 특정단체나 특정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지역이 고루 수혜를 받는 사업이 가능하다.

아홉째, 문화자치의 이론적-실천적 논리를 제공하는 지역학을 키워야한다. 문화적 지역발전의 첫걸음이 지역의 올바른 이해다. 지역에 대한 이해는 ‘아프리카 냄새를 잃은 코끼리는 이미 코끼리 따위가 아니지’라는 말처럼 지역의 냄새를 잃지 않는 것이 기본전제이다.1) 이전의 지역학(일명 1.0)은 역사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거나, 실증적·통계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단계(자료학)에 그친다. 새로운 지역학(2.0)은 과거 중심의 자료학적 연구에서 벗어나 주민의 일상성과 미래를 전망하는 문화연구이다.

끝으로, 지역 내 지자체와 민간조직, 지역 간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지자체 간, 유사 시설 간, 동일한 목적의 기관 및 단체 간 단순경쟁은 제로섬게임이다. 동일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면 힘을 모아야 한다. 협력은 지자체뿐 아니라, 생활권 내의 문화시설과 단체 등 모두에 해당된다. 지역문화와 관련된 모든 기관과 단체가 힘을 모아야 문화자치가 가능하다.

<참고문헌>
  • 김규원, 2015, “프랑스 지방 문화분권 정책의 변화와 방향성”, 『문화와 정치』, 2(2): 101-130.
  • 김용신, 20080, “다문화사회의 시민형성 논리: 문화민주주의 접근”, 『비교민주주의연구』, 4(2): 31-57.
  • 장세길, 2015, “문화민주주의를 넘어 – 전라북도 사례로 살펴본 새로운 문화전략 모색 -“, 『지역사회연구』, 23(2): 45-63.
  • 1)경인일보 2017년 8.7일자(http://m.kyeongin.com, ‘손경년의 늘찬문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