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온 첫날 한 개를 만났다. 해가 넘어가는 늦은 오후에 누런 개 한마리가 인근 건물입구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평소에도 길에서 마주치는 개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터라 옆에서 얼쩡거렸다. 한동안 미동도 없던 그 개의 격렬한 꼬리짓과 함께 잠시 후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이 나타나셨다. 어찌나 호들갑을 떨며 반기던지, 내 기분도 덩달아 괜히 좋아져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구 레지던시 소식을 전할 때마다 주변에서 들리는 대구의 여름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는 나를 작업실에 잡아두어 낮에는 작업실에 머물다가 해가지면 자연스레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그곳에 있는 동안 동료작가 자현과 함께 날이 어둑해지면 예술발전소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이후 그 개가 머물던 자리가 자갈마당 일부 건물이고, 여성분은 속칭 방석이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크한 누런 개가 메리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살고 있음을, 예쁜 눈썹을 가진 공순이라는 개 역시 이곳에서 메리와 둘도 없는 친구사이로 지내고 있음을 차차 알게 되었다.
2. 2017 자갈마당과 예술발전소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 밤이 되면 메리와 공순이를 만날 수 있다.(좌)
3. 2017 이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메리(좌)
4. 2017 이모들이 마련해준 메리의 집(우)
메리와 공순이는 떠돌이 개였다고 한다. 메리가 6년 전쯤 먼저 이곳에 나타났고 당시에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메리에게 한두 번 먹을 것을 주다가 아예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실제 메리는 자갈마당 이모들이 골목 한 켠에 마련해준 독립된 집에서, 예쁜 화분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몇 년전 이 공원으로 산책을 오는 또 다른 개, 뽀솜이의 새끼들을 한번 출산했는데 한 마리는 죽고, 나머지는 입양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메리는 중성화수술을 했고 살이 찌기 시작했단다. 먼발치에서 뽀솜이가 나타나기만 해도 짖어대고 특히 낯선 사람에게는 쉽사리 곁을 내어주지 않는 메리. 유독 남자를 싫어해 자갈마당을 찾는 남자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 대기 일쑤다. 한없이 따르다가도 무언가 석연치 않으면 이모들의 손길조차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의 메리가 되지 못한…… 애교가 많은 공순이와는 달리 등 돌려 앉은 메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메리는 어디를 보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갈마당이 사라지고 나면,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내몰리면 메리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나 애지중지 하는 집을 남겨두고, 저녁마다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들을 떠나, 메리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6. 소리내어 말하기 연습2,3,4_ 37.5×43.5cm(각각)_ 천에 수채연필_ 2017(우)
7. 예술은 극단적 변신을 기획하는 장소를 위한 필수조건인가?1) _30×50cm(각각) 천에 혼합재료_ 예술발전소 5층 내 설치장면_ 2017(우)
- 1)예술은 극단적 변신을 기획하는 장소를 위한 필수조건인가?_2017
동료 작가 자현과 함께 대구예술발전소에 입주 당시 프로젝트로 진행한 작업의 문구이다. 우리는 밤이 되면 메리와 공순이가 있는 수창공원으로 나가 뻘쭘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그리고 테라스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발전소 내 작가들과 인근 주민들이 문장의 한 글자 씩 쓰면서 선뜻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