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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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창조공간 조성사업,
수창1946 프로젝트
글_신동호 청년예술창조공간 총괄기획자, (사)인문사회연구소장

1976년에 지어진 KT&G사택을 청년예술창조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로공간사업 – 폐산업시설 문화공간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KT&G사택은 중구 수창동(대구예술발전소 옆)에 소재한 대구연초제조장의 부속시설이다. 1999년 폐창된 후 정리기간 동안 운영되다가 2000년대 초 그 용도를 마감한 곳으로 1,500여 평의 부지 위에 4층, 20, 30평형대 18채의 아파트형 주택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수창1946 프로젝트는 KT&G사택을 문화공간화하기 위한 과정적 프로젝트로서 ‘1946’은 수창동의 탄생년도이자, 대구에서 1946년이 지닌 역사문화적 맥락을 담고자 하는 의미이며, 총괄기획자의 선임과 더불어 프로그램 매니저(김병호, 손영복), 큐레이터(책임 최윤정, 보조 조수현), 사무국(팀장 이동수, 홍보 박하임, 디자인 전유진, 간사 이유정)을 구성하고, 건축MA(김유진), 컨설턴트(이광준, 이정희) 등의 진용을 갖추고 출발했다.

청년예술창조공간

 

# 공간 만들기의 철학적 고민과 이슈들

청년과 공간플랫폼, 청년 생태계와 공간에 대한 고민들과 실행들은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으나 근본적인 가치의 지향보다는 단발적인 처방이나 정책적 소비에 그치고 있는 사례들이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술, 창조 등 공간에 부여된 키워드에 대한 해석과 적용, 주체의 생산이라는 관점의 공간 만들기, 지역의 청년 창작자 생태계와 공간의 관계성, 지역의 역사문화적 맥락과 장소성, 건축적 이슈들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했다.

먼저 사회적 회복력(resilience)을 지닌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드웨어의 변화를 넘어 대안적 주체성을 만들고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공간, 마음생태-사회생태-자연생태를 함께 생각하는 대안적 생태계(Eco-sophy)를 실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동체의 공간을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고도 역동적인 실체로서 이해하려는 관점, 공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pace)이라는 관점'(르페브르, Lefebvre) 또한 필요하다. 지배권력에 의해 구조화된 공간, 일상이 소외되는 공간을 넘어 ‘재현의 공간’에서 ‘공간적 실천’을 통해 차이를 생산하는 ‘공간 생산’의 능동적인 주체들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그 공간은 시민성과 공공성을 함양하는 사회적 공론의 장인 ‘래디컬 스페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셋째, 도심 속 야생생태계로서 스스로 직조하고 생산하는 창작활동하는 사람(브리콜뢰르)이 모일 수 있는, 야생의 사고가 가능한 공간,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리적인 것들을 만드는 메이커스-장인(Craftsman)(리처드 세넷, Richard Sennett)들을 기르고 협력하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넷째, 전통적인 예술생산과 소비의 패러다임인 블록 예술에서 벗어나 결속과 연결을 형성하는 ‘그물망 예술’로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주체의 일상생활에 밀착하여 타인과 관계 맺는 ‘정체성 기술'(Identify Technique)로서 예술이 실현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는 프로-아마추어라는 구분에서 벗어나 ‘예술생태계’라는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전문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시민 창작자, 청년 창작자들’이 활동하는 공간임과 더불어 향수/향유-여가-취미활동공간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창작공간, 활동공간이라는 관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정책이 시민의 일상, 생애기술, 내러티브에 귀 기울이고, 삶의 품격을 높이는 문화공동체 형성, 사회자본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콘텐츠, 공간, 인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예술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섯째, 수창동 일대의 역사문화, 시민의 삶을 해석하고 공간과 시간의 리듬을 회복하는 문화적 재생, 도시재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콘텐츠를 아카이브하고 재맥락화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청년예술창조공간 오픈식 공연

 

# 공간 만들기의 과정들

위와 같은 고민을 담은 수창1946 프로젝트는 대구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실시설계와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테스트베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pj01.공간의 기억>, <pj02.공간의 대화–창생전(蒼生前), 프레 오픈>, <pj03.공간의 사유>, <pj04.공간의 실천>, <pj05.공간의 생산> 순으로 단계를 구분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간을 플랫폼으로 ‘지역의 청년창작자들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이들을 주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아울러 공간 변용의 방향으로 (1) 아파트형의 획일적인 공간 스타일을 ‘다양성과 중첩’을 있는 공간, (2) 공간의 시간성과 역사성, 지역의 역사문화를 재맥락화한 공간, (3) 청년창작자들과 시민들의 활동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활용성을 있는 공간, (4) 대상과 기간을 특정하는 방식의 레지던시가 아니라 청년창작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이용기간도 유연성 있는 ‘아트 스테이(Art Stay)’ 공간 등이었다.

<pj01. 공간의 기억>은 2016년 8-9월, 47팀(87명)이 참여한 가운데, 먼지가 쌓이고 버려진 가재도구들이 남아있는, 십수년간 방치되어온 공간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실험적 창작활동과 더불어 공간 변용과 공간 운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 과정이었다.

청년예술창조공간 전시공간

<pj02.공간의 대화–창생전(蒼生前), 프레 오픈>은 2016년 10월, 29개팀(88명)이 참여한 가운데, 공간 전체를 시민들에게 개방해 <공간의 기억>을 통해 아카이브된 실험적 활동들을 공유하고, 공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시공식과 같은 의미의 프레 오픈으로 진행되었다.

<pj03.공간의 사유>는 사업 전 과정에 걸쳐 공간의 건축적 방향에 대한 여러 차례의 건축회의와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 워크숍, 사례 답사, 공간 운영 방안, 운영 주체에 대한 담론의 장(라운드테이블) 등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pj04.공간의 실천-수창2017>은 2017년 11월부터 공간 오픈 이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공간의 다양한 운영 방안을 모색해보는 과정으로 수천명의 청년 네트워크가 함께 하는 청년플랫폼이자 사회적경제 주체인 협동조합/마을기업(더폴락, 내마음은콩밭, 레인메이커, 좋은공연연구소 등)과 더불어힙합앨범 제작, 밴드 공연, 수제맥주 등 워크숍 구조의 ‘수창문화학교’와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수창반상회’, 청년문화공간에 대한 상상 클래스 ‘수창상상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독립출판 팝업 스토어 및 북 마켓’, 작가와의 대화, 책 먹는 밤 등 ‘스몰 북 스몰토크’, 독립출판 제작자 및 서점의 네트워크 프로그램 ‘년말대책’, 16명의 청년예술가들이 공간을 꾸미고 꼴라보작업을 펼치는 오픈 스튜디오 ‘자기만의 방’, 빈티지아트마켓인 ‘크뤠잇마켓’ 등 공간의 운영방안을 찾아가는 다채로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예술창조공간 <공간의 실천-수창2017>

아울러 공간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전시 프로그램(전시감독 윤규홍, 보조 윤현정, 조준호)으로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한 기획전시 ‘당신의 숨결마다 (Every breth You Take)’전, 대구 출신의 청년작가 12명이 참여한 ‘뉴 에디션( New Edition)’전이 펼쳐지고 있으며, 아카이브 전시인 ‘수창 스토리지’에서는 수창동 변천사, 대구연초제조창 및 사택의 공간사 및 생활사와 더불어 수창1946 프로젝트의 과정 전반이 전시되고 있다.

 

# 공간의 생산을 위한 고민들

<pj04.공간의 실천>을 통해 공간 운영 방안과 주체에 대한 고민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숙제들이 남아있다. 8부 능선을 넘어온 지금의 상황에서 공사 마감과 더불어 공간 명칭, 보다 구체적인 운영 방안, 운영 주체 등이 <pj05.공간의 생산> 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청년 스스로 공간을 생산하고 운영하는 청년플랫폼이자, 청년창작자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과 더불어 전문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과 연계하는 예술생태계이자, 앵커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 창작자의 스타트업/창업/창직공간의 기능 또한 담아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청년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건강한 시민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함과 더불어 수창동 일대의 문화적 지역재생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가능성을 여는 열쇠는 ‘청년창작자생태계가 당사자 주도성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보아왔다. 청년 ‘스스로’가 미학적, 윤리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가능성을 기획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청년생태계는 만들어칠 수 있으며, 청년공간은 공공적인 운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청년 스스로가 주도하는 집단지성과 협력의 힘이 청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청년예술창조공간 <공간의 실천-수창2017>

또한 이는 공간과 관련된 지원정책이 생태계/플랫폼 지원으로 옮겨가야 가능한 일이다. 공간에 대한 지원이 개인/단체들을 경쟁시켜 선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을 당사자 주체에 맡기고, 공동 기획단/공동 프로젝트를 포괄예산제로 지원하며, 참여자들의 공유-협력을 통해 생태계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때 가능한 일이며. 또한, 청년을 끊임없이 정책적으로 소비하는 ‘청(년을) 알(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청년은 꾸준하게 사랑받는 인기 상품이다. 청년들이 고달플수록 청년은 잘 팔렸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청년을 찾아 ‘청년 실업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기업도 ‘청년 고용에 앞장서겠다’, ‘스펙 초월 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청년을 불러내고 소비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청년의 삶은 나빠졌고, 청년들은 지쳐 갔다.” (경향신문 특별 취재팀, 부들부들 청년, 후마니타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