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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 1
Boys(Girls) be ambitious
글_박재민_조명디자이너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는 1994년 인기리에 방영된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배우 한석규가 외친 대사이다. 당시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그런지 감수성이 예민하던 필자에게는 그냥 드라마 속 대사가 아니었다. 흔히 지금 이야기하는 중2병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그런 대사였다.

한참 후에나 알게 된 이야기지만 “Boys be ambitious”라는 문장은 그냥 드라마 속 대사가 아니라 W. S.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라는 한 미국인이 약140년 전 삿포로 농업학교(현 홋카이도 대학교)에서 8개월 정도 부학장으로 재직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제자들에게 연설한 내용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원래 연설의 전체내용은 기독교적 세계관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Boys be ambitious”라는 첫 문장만이 남아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 어원이 어찌되었던 자칫 세상을 원망하며 의미 없는 사춘기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 짧은 문장하나가 필자에게는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외침이 되었다.

감수성 많은 문학도, 하지만 꿈은 변한다.
그 시절 나의 꿈은 중등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그냥 국어선생님이 아니라 소설과 시를 쓰는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당시 또래 남자친구들은 축구, 농구가 일상이었지만 나는 독서와 음악 감상이 더 좋았다. 그게 더 낭만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더 큰 이유는 운동신경도 별로 없었고 딱히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 나의 “Ambitious”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중창단에 입단하면서 꿈이 변하기 시작했다.

입단한 중창단에서 처음으로 음악과 성악을 진지하게 접할 수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동기 중에 성악(聲樂)적 재능이 가장 많았던 친구가 전공하게 되었고 3개월 뒤 나도 따라 성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해서 성악이라는 꿈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난 성악을 좋아했나? 아님 음악? 아님 공연예술?
나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조명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성악이 좋아서 음악을 한 것인지, 음악이 좋아서 성악을 전공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성악이라 음악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 싶다. 만약 주위에 연극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배우를 하고 있을지 누가 알까? 지금은 그냥 공연예술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고 비록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물어본다. “너는 왜?,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음향이 아니라 조명을 선택을 했는지”말이다. 필자의 눈에는 무대조명이라는 것이 시각적 요소도 많이 있지만 음악적 요소가 훨씬 많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무대조명은 그 매력이 아주 대단한 장르이다. 마치 어느 합창단의 지휘자가 단원들의 소리를 하나로 만들 듯이 나는 수많은 종류의 조명기와 수많은 컬러들을 매칭 시킬 때 나만의 음악이 빛으로 표현된다. 어떤 때는 강렬하게, 어떤 때는 화사하게, 음악이나 극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조명을 왜곡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기술인가? 예술인가?
예전에는 무대조명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을 조명기사 또는 기술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 들어서도 공연을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 직업, 장르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조명디자인 등 무대 미술가들을 창작자 또는 아티스트 등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긍정적인 인식변화가 일어나는 과도기를 넘어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필자가 전공한 성악이나 오페라의 영역에서도 경우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론적으로 오페라를 설명할 때 종합예술로 말하고 있지만 음악적 요소에 외에 무대 미술적 요소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지역에서 이 분야를 깊게 공부하거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목소리가 부족한 현실이다.

나비부인, 토스카, 투란도트 등을 작곡한 푸치니는 오페라가 전반적으로 연출이나 무대미술, 조명, 막의 설정 등의 효과와 특별히 배우의 연기력이 매우 중요시 된다.1) 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작곡가인 그가 음악적인 부분 외에 다른 것들도 아주 중요시하고 있는 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조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것을 주의를 기울이는 귀(with an attentive ear)”라고 표현했으며, 조명은 드라마의 변화에 밀접하게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2)
그리고 푸치니는 모든 무대 장치, 노래, 연기, 장면, 그림, 조명 등을 최대의 효과를 위해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극적변화에 있어서 조명이 조심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막이 너무 빨리 오르는 것은 곧 오페라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까지 말했는데 그는 성공적인 오페라를 위해서 막이 오르고 내리는 시간까지도 상당히 신중했음을 알 수 있다.3)

필자는 무대조명을 피겨스케이팅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스케이터 한명이 경기를 끝낸 후 대기 장소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자신의 점수를 기다린다. 이때 점수는 예술점수와 기술점수로 나뉘어 평가된다. 무대조명 역시 이 부분이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성과 기술적 능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일지 모르나 성악도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올해 초 필자는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요즘 어린 청년들에게서 퇴사가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필자의 퇴사는 분명 그 유행을 따라가고자 함은 결코 아니었다. 왜 내가 무대조명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대조명이라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도 먹고사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는 않았었다. 단지 그냥 좋아서 시작했던 일들이었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일들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무대조명 외에도 강의, 극작, 연출, 음악 등 공연예술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일들을 겸해서 하고 있다. 물론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나 일정한 스케줄은 기대할 수 없지만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理致)가 아닌가? 단지 스스로가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다보면 한결 쉬운 선택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기 위해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지 않나?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과할 수 있지만 고이지 않게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싶다. 철없던 시절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과 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다.
“Boys be ambitious”
  • 1)임하나,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 관한 연구」, 세종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특별시, 2006, p13.
  • 2)이끈나, 「Verismo Opera와 G. Puccini 『La Bohème』의 Mimi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특별시, 2007, p22.
  • 3)명신,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음악적 표현 방법과 남녀주인공의 아리아 분석: 1막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충청남도 서산시, 2007,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