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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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표현> 리뷰
대구미술관 기획전시
글_이민정 독립큐레이터, 미술사
대구미술관은 대구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근간과 가치를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올해는 ‘대구미술관 포럼’1)을 개최하여 대구 근현대 미술의 형성 배경과 전개, 발전과정을 연구하고, <대구미술을 열다-석재 서병오>(2017.2.21-5.14)에 이어서 <풍경표현>(2017.9.29-12.31)을 기획하여 격변하는 근대 화단의 전통 서화와 신문물의 유입으로 태동하는 서양화단의 움직임을 조명하였다.
대구미술관 <풍경표현> 전시장 전경
한국 화단은 근대기 수묵채색 일변도에서 유채와 수채 등 새로운 매체가 일본으로부터 유입되어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대구 화단 역시 전통회화를 계승하는 ‘교남시서화연구회’2)와 근대 서양화 도입기에 형성된 ‘영과회(0科會)’3)와 ‘향토회(鄕土會)’4)를 중심으로 주요 활동이 이루어졌다. 특히 대구 화단에 수채화를 보급시킨 서동진(1900∼1970)은 영과회, 향토회 등의 구심적 역할을 했으며, 1926년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통해 화단의 기틀을 마련하여 이인성(1912∼1950)과 김용조(1916-1944) 등의 후진을 양성하고, 1950년 대구 ‘화우회'(畵友會)를 창립하여 대구의 미술 활동을 주도했다. 이후 1960년대 초 앵포르멜 운동이 일어나던 초기 단계에서 조직된 ‘앙그리(Angry)’5)와 ‘신조회(新潮會)’등의 추상미술과 ‘이상회(以象會)’라는 구상계열의 양자 구도 움직임이 대두하고6), 이 구상계열과 추상계열이 상호 경쟁하며 대구 화단을 지배하였다.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로 대표되는 실험적인 미술운동 등 대구 미술계의 활발한 움직임은 한국 미술사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이인성 <경주풍경>, 캔버스에 유채, 24×47cm, 1938(좌) / 이인성 <사과 나무>, 캔버스에 유채, 91×116.5cm, 1942(우)
이번 전시 <풍경표현>은 근대의 구상화단과 광복 이후 추상미술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화단의 활동을 주목하고 풍경이라는 단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속성을 가진 풍경화가 대상의 단순 재현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작가의 관념적인 세계관의 표현으로 재해석되는 개념 변화의 과정을 조명하기 위하여 ‘변화하는 세계, 근대의 풍경’, ‘경계를 넘어’, ‘풍경의 장면과 실제의 해석’, ‘오늘날의 풍경, 표현’ 등 네 개의 주제로 다루었다. 물론 이번 전시가 대구미술 100년 역사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보다는 ‘풍경’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대구 근현대미술에 대한 담론과 전통 산수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지형 속에서 등장한 풍경화라는 장르에 대한 담론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고희동,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1×46cm, 1915(좌) / 김관호, <해질녘>, 캔버스 유채, 127×128cm, 1916(우)
한국의 초기 풍경화는 1세대 일본 유학생인 고희동(1886-1965, 1915년 귀국), 김관호(1890-1933, 1916년 귀국), 김찬영(1893-1960, 1918년 귀국) 등에 의한 서양화 도입과 함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고희동은 1915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서양화가의 효시’라고 소개되었고,7) 현재 그의 풍경화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자화상」에서 배경으로 풍경화 그림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풍경화를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관호의 「해질녘」은 최초로 소개되었던 한국인의 풍경화이고, 1916년 10월 20일자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사진으로 실린 「풍경(風景)」은 들판에 미루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전통 산수화가들은 눈여겨보지 않은 평범한 주변의 풍경으로 시선이 옮겨왔음을 인식할 수 있다. 특히 조선미술전람회(1922-1944, 총 23회 개최)의 출품작 중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일상적인 평범한 농촌이나 나무, 숲. 들녘의 풍경 등 목가적 경치를 그린 작품이 다수 등장한 것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었음이 주목된다.
「사진: 김관호군의 요사이 그린 그림」, 『매일신보』에 기재, 1916.10.20.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향토적 소재와 인상주의를 계승한 풍경화가 한국 구상회화의 주된 경향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변화하는 세계, 근대의 풍경’에는 1930년대부터 5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 산수화와는 다른 미감으로 주변의 평범한 일상과 도시풍경을 담은 서동진(1900~1970), 서진달(1908~1947), 이인성, 김수명(1919~1983), 박명조(1906~1969), 손일봉(1906~1985), 이경희(1925~) 등으로 이어지는 대구 구상화단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인성의 「경주풍경」, 이경희의 「대구의 뒷거리」 등에서 보듯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써의 일상적 풍경은 자연의 재현이라는 풍경화 개념에 대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화단을 휩쓸었던 앵포르멜은 본격적인 추상미술 운동의 기점으로 간주되는데,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는 구상미술과 추상미술 간의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경희, <대구의 뒷거리>, 종이에 수채, 73×93.5cm, 1955
두 번째 섹션 ‘경계를 넘어’는 추상화의 열풍 속에서도 구상의 길을 걸어온 김우조(1923~2010), 이대원(1921~2005), 강우문(1923~2015), 김영재(1929~), 김종복(1930~) 등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확립된 회화 세계를 선보인다. 특히 김영재, 김종복은 줄곧 자연을 소재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단순한 자연 형상의 재현이 아니라,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찬 윤곽선과 미묘한 명암대비, 견고한 화면의 구성을 보여준다. ‘풍경의 장면과 실제의 해석’에서는 박현기의 「폭포」를 비롯해 문인환(1962~), 도성욱(1971~), 장이규(1954~) 등의 사실적인 풍경과 권부문(1955~), 김옥선(1967~), 민병헌(1955~) 등의 ‘실제 풍경’ 사진을 전시함으로써 다양한 장르로 풍경을 해석하는 작품들의 비교 감상을 유도한다. 이어서 ‘오늘날의 풍경, 표현’에는 장상의(1940~), 박대성(1945~)의 전통적인 수묵 기법 작품과 서용선(1951~), 문성식(1980~), 차현욱(1987~), 장미(1984~) 등 다양한 매체와 표현방식으로 구현하는 동시대 풍경화의 해석을 제시한다.
장미, Who am I (부분), oil on panel, installation,2017(좌) / 박현기, 낙수, 2 channel video, audio installation, demension variable,1997(우)
도성욱, 박현기, 풍경표현전시전경, 대구미술관, 2017
근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양상을 시대와 매체로 분류하면서 동일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특색을 짚어보려 한 시도는 새로웠으나, 대구 근대 화단의 조명에서 시작하여 동시대 미술까지의 확장과 영역 설정, 작품 분류에 공백이 많아 설득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대기 작가들은 새로운 미의식에 대한 열망으로 전위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고, 이들의 활동을 추적하는 과정이 바로 대구 미술의 궤적을 그리는 작업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대구미술사에 대한 통시적 접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행 연구과 미술자료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조사가 필수적이며, 때문에 이번 전시가 남긴 과제가 적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 미술계는 특정 운동이나 이론이 아니라 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대구 미술을 조명하기 위한 미술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주목된다.
  • 1)대구미술관은 대구지역 미술자료의 수집과 학예연구기능 강화를 위해 대구미술관 포럼을 7회에 걸쳐 다음의 주제로 진행하였다. 1회 대구화우회와 미공보원화랑, 2회 앙그리와 63미전, 3회 이상회(1969)와 신조회(1971), 4회 대구의 초현실주의 작가, <박광호>에 대하여, 5회 경계에 선 작가들-최욱경, 기시오 스가, 6회 <대구미술 다시보기-대구현대미술제 ’74-’79>대하여, 7회 인공갤러리.
  • 2)1922년 1월 27일 서병오(1862∼1935)가 대구 지역 서화계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개설한 기관.
  • 3)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등이 결성한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 단체로 프롤레타리아 경향의 작가와 아카데미즘 경향의 작가들이 함께 하는 예술단체. 1927년 창립되어 3년간 지속. 조덕연, 「대구구상화단의 성립과 전개」, 『한국학논집』, 제49호,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2, p.248.
  • 4)영과회가 해산된 이듬해 사회성이나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 서양화 단체로서 영과회의 회원이 중심이 되어 설립. 1930∼1935년 대구에서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김성암, 이인성, 배명학 등이 모여 결성한 서양화단체. 위의 논문.
  • 5)1963년에 결성된 ‘앙그리’의 창립멤버는 김진태, 김구림, 김인숙, 권영호, 정도화, 이정혜, 정주호, 이영륭, 마영자, 박병용, 박휘락, 박곤, 박설이다. 그룹으로서의 활동은 단 3년 정도로 단명에 그쳤지만 추상미술의 적극적인 수용과 발표의 장소로는 처음으로 시도된 자리였다.
  • 6)“이상회는 구상계열(서양화·조각)의 작가로 69년 10월에 조직된 것인데 “신조류보다는 대중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구상을 주로 하되 사실에 그치지 않고 예술적인 조형화를 지향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어 약간의 보수적인 냄새를 풍긴다. 이상회는 강우문, 권영호, 홍성문, 김관, 남철 등 창립회원과 많은 젊은 작가들을 흡수하여 회원의 숫자에 있어서는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중략) 이상회와는 대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단체는 신조회인데 장석수, 정점식, 박광호, 정인화 등 비구상계열 작가들로 1972년 6월에 발족했다. “스스로 만든 영상의 확장에서 시대의 벼경을 체험하며 미래의 분명한 과제를 찾자”는 태도로 미술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던 신조회는 창립회원 외에도 백경원, 장대현 등 젊은 작가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경향신문』, 1976.07.14 기사.
  • 7)1915년 3월 11일자 『매일신보』는 고희동의 도쿄미술학교 졸업 뉴스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특보하면서 “서양화가의 효시”라고 강조했고, 졸업 작품 「자매」 사진도 크게 싣고는 “조선에서 처음 나는 서양화가의 그림”이라고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김윤수 외, 『한국미술 100년』, 한길사, 2006,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