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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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구예술의 힘 :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임순례 감독이 기억하는 박남옥 감독
글_최미애 영남일보 문화부 기자
한국 최초 여성 영화 감독. 박남옥 감독에게 붙는 타이틀이다.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그 어떤 여성’최초’보다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에 비해 박남옥 감독이 1955년 발표한 영화 「미망인」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그 이후 박남옥 감독은 영화를 발표하지 않았다.
영화 「미망인」은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 1997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박남옥 감독의 존재가 알려졌다. 2001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을 촬영하면서 박남옥 감독의 영화 인생이 조명되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갔기 때문에 박남옥 감독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아름다운 생존」제작에 참여했던 임순례 감독으로부터 박남옥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 감독은 박남옥 감독이 유독 아꼈던 후배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는 e메일을 통한 서면으로 진행했다.
최미애 : 박남옥 감독님이 후배 감독 중 유독 임순례 감독님을 아끼셨다고 하던데요. 언제 처음 만나셨고, 만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임순례 : 2000년도에 제가 중앙대 산학협력 프로젝트로 중앙대 주진숙 교수님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 교수님과 저는 여성영화인 모임을 통해 선배 여성영화인의 존재를 기록해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집안일 때문에 한국에 나와 계시던 박남옥 감독님을 이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고요. 워낙 손편지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일본말이 익숙하셨던 것 같아요. 세로쓰기로 쓰시고, 한자나 가끔 일본어를 섞어 쓰시기도 했어요. 달필(達筆)이셨는데, 제가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2009년과 2014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 감독님을 찾아 뵀고, 감독님은 제가 털털하고 여성스럽지 않은 부분이 당신과 닮았다며 저를 예뻐해 주셨습니다.
배우 엄앵란씨(오른쪽)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박남옥 감독(가운데)
(사진제공 : 박남옥 감독 딸 이경주씨)
최미애 : 최근 발간된『박남옥 – 한국 첫 여성 영화 감독』을 읽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대범했던 분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임 감독님이 본 박남옥 감독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임순례 : 한 마디로 시대를 너무 앞서서 태어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십년만 늦게 태어나셨어도 가정적으로나 영화적으로도 훨씬 행복한 삶을 누리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맘껏 재능을 펼치시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대단히 활달하고 적극적이며 다양한 재능을 가지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최미애 : 박 감독님은 어떤 재능이 있으셨던 분인가요?
임순례 : 박 감독님이 대구에 계실 때도 투포환 선수를 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으셨다고 해요. 출판사에서도 일을 하면서 영업과 같은 사업적인 업무도 잘 해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촬영할 때도 스태프들의 밥을 해먹이고, 영화 제작과 관련된 돈 문제도 직접 정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제작자와 프로듀서 역할을 동시에 하신 거잖아요. 여러모로 주어진 일에 대해 어려움 없이 다 해내시는 그런 분인 것 같습니다.
최미애 : 박남옥 감독님은 최초의 여성 영화 감독이었는데, 현재 여성 영화감독님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순례 : 박남옥 감독님을 직접 뵙지 못한 후배 여성 감독들도 박 감독님이 한복 차림에 아이를 업은 상태로 “레디 고”를 외치셨다는 사실을 대부분 한번쯤은 들어봤다고 말합니다. 당시 시대상을 볼 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신 분으로 후배 감독들에게는 대단한 선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첫 번째 길을 만드신 개척자가 있기에 후배들은 그 길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것이지요.
최미애 : 박남옥 감독님의 영화 「미망인」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 감독이 참여했고, 그려지는 여성상도 파격적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임순례 : 전쟁 직후 여성들의 삶을 여성의 시각으로 그렸다는 내용적인 측면과 여성도 감독이 될 수 있다는 모델을 남겨주신 것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미애 : 임 감독님이 여성 영화인들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인 「아름다운 생존」을 촬영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기에 박 감독님의 어떤 이야기가 담겼나요?
임순례 :박 감독님이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미망인」을 찍을 때의 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최미애 : 박 감독님이「미망인」을 찍었을 때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주셨나요?
임순례 : 예전에는 배우들이 동시에 여러 영화를 동시에 찍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민자, 이택균 선생님이 출연하셨는데 당시 잘나가는 배우셨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 오시거나 찍다가 가시기도 했다고 해요.
영화 촬영하는데 가족이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사 이름도 ‘자매영화사’ 였던 걸로 알고 있고요. 동아출판사 고위층이신 형부가 있어서 여유 자금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하지만 영화 제작을 할 때부터 자금을 다 쥔 상태에 하시진 못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아기를 업고 연출을 해야 했고요.
여성 차별이 심하다보니 “아침에 여자가 택시를 타면 재수 없다” 같은 말이 일상적이었던 때죠. 박 감독님도 영화 제작 할 때 겪으셨던 일이기도 해요. 박 감독님이 녹음실에 가면 여자가 일찍 왔다고 해주지 않는 등 작업에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최미애 :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박 감독님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있으셨나요?
임순례 :박 감독님은 적지 않은 연세에도 기억력이 엄청 좋으셨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해서 얘기해주셨고, 미국 자택에서 보여주신 스크랩북의 내용이 엄청 꼼꼼해서 놀랐습니다. 한국 신문을 늘 챙겨보시며 저를 포함한 한국 영화계의 동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듯 한평생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셨다는 점이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박 감독님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영화 「미망인」을 만드신 점이 저희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셨음을 항상 기억하려고 합니다.
미국 LA에서 박남옥 감독의 모습. (사진 제공 : 박남옥 감독 딸 이경주씨)
최미애 : 2008년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후배 여성 감독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박남옥 영화상’을 처음으로 받으셨는데요. 한동안 수상을 하지 않다가 올해 다시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상은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순례 : 서울 국제 영화제는 박 감독님을 기리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고, 제가 영광스럽게도 1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궁녀」를 만들었던 김미정 감독이 수상했습니다. 재능 있는 여성 영화감독이 워낙 많은데, 김미정 감독을 수상자로 정한 것은 유일하게 영화로는 「미망인」을 남긴 박 감독님의 뜻이 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그토록 원했던 두 번째 영화를 김미정 감독이 잘 만들도록 격려하는 의미였습니다. (「궁녀」는 김미정 감독의 첫 번째 연출 작품이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낸 분을 기리는 상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의미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