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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불확실한 미래와 불완전한 세상
글_서영완 대구국제현대음악제 사무국장
종착역 없는 열차는 한쪽 방향으로만 끝없이 치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차의 탑승객들은 앞 칸과 뒤 칸의 설정으로 나뉘어 서로를 향한 지루한 대결을 칸칸이 이어갑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 질주하는 열차에 꽤나 명확한 시스템을 구성해 놓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꾸깃꾸깃 그 속에 끼워 넣었습니다. 어떻게 결말이 나게 될지, 그리고 새로운 질서는 결국 이루어지게 될지에 대해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결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꿀꿀한 시스템에는 역시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완벽한 클라이맥스 뒤에 찾아오게 되는 것은 또한 완벽한 허무인 것일까요. 그 내용을 뒤로하고 이 영화에서의 설정은 한열차가 브레이크장치 없이 끝없는 불확실의 영역으로 한없이 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그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마냥 픽션인 양 편안한 기분은 아닙니다.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는 은유로 가득한 세상, 그리고 그저 조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불완전한 상태인 것으로 말입니다. 또한 이런 미래를 우리는 불안하게만 꾸미고 있습니다.
영화<설국열차>(영화제작사 제공)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도 인간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견제하 정화할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할까요? 이 두 가지를 저울질 하는 동안 이미 인터넷 기술력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상상력과 거의 같은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현실화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곧 우리를 앞질러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우리는 그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두려움은 외부로부터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길은 그 과정으로만 본다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그 단어가 명명되는 그 순간 모든 것은 경직되고 무조건 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마치 이 명제에 모든 인류가 맞추어져야 할 것처럼 여기어졌고 매스컴은 이 변화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 시키고 있으며 그 답에 맞추어지지 않는 인간은 영원한 낙오자가 될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활동을 표준화하는 두뇌연구, 그 표준화된 빅데이터를 학습하는 딥러닝기술, 스스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무인시스템, 생산의 틀을 바꾸어놓을 3D인쇄기술, 사람을 도와 많은 일을 감당해낼 로봇공학, 스스로의 신경망을 만들어 자신의 오류를 보고 없이 수정해 나가게 될 인공신경망 등등의 단어들을 대면 할 때면 우리의 내면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무력함과 개별성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세계는 콘텐츠의 양과 다양성의 축적에 승부를 걸었던 초기단계를 지나 이제는 점차 정보들을 효율적이고 빠른 속도로 엑서스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용량이라고 하더라도 클릭한 번으로 그 모든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시키고 또 그 방대한 내용을 하드드라이브처럼 엄청난 속도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여기에 더해지고 있는 것이 빅데이터와 딥러닝으로 양산되어 인공신경망을 통해 생산되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입니다. 먼 이야기 같지만, 위키피디아 인터넷판은 인공지능에 의해 자체 수정작업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지식의 생산자는 인류에서 A.I.로 넘어가게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는 우리 대로의 체계를 분리하게 될까요? 인간의 고유영역인 창작 활동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일상생활 속 A.I(사진 : Unsplash 제공)

얼마 전 유행했던 작곡기법 중 알고리즘 작곡법이 있습니다. 조건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 조건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인간이 정해놓은 그 범위 안에서만 작곡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의 전자제품회사 소니에서 ‘Flow Machine’이라는 딥러닝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어 비틀즈의 45곡을 학습하게 한 뒤 비틀즈 풍의 음악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Daddy’s Car’는 조회 수 백만을 넘어서고 있고 공개된 후 프로그램이 만든 음악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평가까지 받게 됩니다. 여기에 힘입어 재즈, 클래식, 팝, 하우스에 이르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학습한 후 작곡된 음악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콘서트를 열게 됩니다. 물론 연주와 가사는 사람이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고는 하지만 컴퓨터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느낌은 어떠했을까요.

또한, 이러한 기술력의 발전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작곡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영역에 걸친 창작 활동을 유도했습니다. 쉽고 간편하게 여러 가지의 콘텐츠를 끌어넣기만 한다면 간단한 음악이나 동영상 쯤은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프로그램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같은 이야기이지요. 배역을 넣고 긴장도를 높이고 인물을 연결하고 스토리 전개를 넣으면 대본은 만들어지는 식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기존의 예술가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의 창작이라는 영역은 이미 관객들을 감동하게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향 평준화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문화는 기계가 다 해주는 것쯤으로 여겨지기에 이를지도 모르지요. 역기 기술력의 발전이 우리를 앞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의 모든 생산물은 프로그램화된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우리의 생각의 속도를 훨씬 앞서는 과학/인터넷기술의 발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음악의 아버지 바하는 ‘완벽한 예술은 기술을 숨긴다.’라고 했습니다. 작곡에 있어서 기술적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이디어를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의 이 기술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작자의 작품을 보거나 들으면서 그것으로부터 감동이라는 것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이유를 단순히 기술의 완성도가 좋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작곡가의 음악을 판단하면서 그가 남긴 어느 단 하나의 작품으로 그 작곡가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작품의 좋고 나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곡가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작가로서의 방향성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가정신이라고 합니다. 이 작가는 어떠한 작품을 지향하고 추구하는가, 어떠한 인생의 무게를 이 작품을 통해 남기고자 하는가, 왜 이런 작품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물음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 작품과 작가 또한 평가 돼야 합니다. 여기서 기술은 그저 작가의 의도를 담아내는 빵틀에 불과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먼 미래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진 A.I.도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고 더 키워나가야 할 부분은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것들을 온전히 지켜나가려는 의지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성을 회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고유영역인 창작성,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자기만족, 예술가로서의 의무와 책임, 인류에 대한 사랑,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로의 방향성, 개별적인 음악적 색채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등을 생각한다면 문화라는 거대한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나 평균적인 수치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