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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기고 #2
나는 배우다
글_최우정 대구시립극단 단원
나는 배우다.
무대라는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이야기를,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사람. 그것이 배우이다. 무대 위에서 때로는 발가벗겨진 것 같고, 때로는 아쉬움을 최소화하지 못해 마음의 생채기도 나지만, 그날을 채워주는 따뜻한 갈채가 이불이 되어 위로해준다. 내 인생은 땅만 보다가 하늘을 보게 되었고, 꿈만 꾸다 현실이라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난 무대 위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며,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늘 내게 최고의 작품이 될 ‘다음 작품’을 말이다.
옛날에 엄마가 불러주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듣고 4살짜리 꼬마는 무서워서 울었다 한다. 그 소년이 7살이 되었을 때 내리는 비가 슬퍼서 눈물이 났다 한다. 사춘기 때 그 소년은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음반만 들으며 어두운 방구석에서 홀로 공상을 친구삼아 시간을 보냈다 한다. 조용하고, 어둡고, 숫기 없던 그 아이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차범석의 ‘산불’이라는 연극을 보고 인생이 달라졌다 한다.

그게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내가 ‘대문’ 릴레이 기고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전부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한 치 앞을 모르고 전전긍긍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아간다. 인생을 바꿀 타이밍은 ‘사고’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그걸 받아들일 용기와 의지가 있느냐…? 난 ‘YES’였다.
차범석의 「산불」이라는 연극은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나의 태몽도 산불이라더니 그래서 인생은 드라마인가보다. 무대 위에 있던 연극배우가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위대해 보였고 멋져보였다. 난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꼈다.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그들처럼 나도 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고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을 주고 싶었다.

연극이라는 예술에 완전 무지했던 내가 첫 연극과의 조우에서 느낀 감정치곤 참 적나라하고 묘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나는 바로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 야구방망이가 두세 개는 부러지고 집의 창문도 깨졌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고, 철없는 외동아들의 절실함을 이길 순 없으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안타깝게도 난 실력이 없었다. 응시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오기가 생겼다. 대학은 포기하고 열정과 개척만 생각하며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명동에 있는 극단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심부름하며 오디션이란 것은 다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난 실력 없는 빈털터리 갓난쟁이였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고 배가 고팠다. 500ml 우유로 하루를 버티는 나날들이 많아졌다. 일 년 반 남짓한 서울살이는 참 혹독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중무장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실력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 건가. 이게 바로 코미디가 아닌가.

이때 난 그렇게 땅을 많이 보았다. 은둔형 외톨이, 루저, 그저 공상가, 뜬구름 잡는 아이, 나는 꿈만 꾸고, 꿈과 절실함만 가진 그냥 상념가였다. 간절함, 절실함, 스무 살의 용기와 기백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의 화려한 빌딩들만 쳐다보다 목이 부러진 꼴이었다. 그렇게 핑크가 아닌 잿빛으로 흐려지려고 하는 찰나 난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갔다. 그 2년간 난 인내와 끈기, 꿈에 대한 혼란함을 선물 받고 대신 내 인생을 지탱해주던 아버지라는 큰 나무를 잃었다. 전역 후 생계를 위해 생선 장사를 하시는 홀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리고자 공사장이나 고깃집, 옷가게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꿈을 잊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찰나, 미처 한번 제대로 피워보지도 태워보지도 못한 불씨 ‘나의 꿈’이 고개를 들었다. 상자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그 꿈에 대한 열정과 절실함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그래! 먼지 묻은 불씨지만 조그만 동산이라도 한번 태워보자! 5년, 10년만 딱 제대로 덤벼보자. 움직이자! 행동하자!”.
지난날 어둡고 조용하던 내가 아닌 진취적으로 행동하며 생각보다 발자국 하나가 먼저 앞서는 내가 되고자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최현호’ 대신 ‘최우정’으로 개명을 하며 본격적인 연극인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극단 ‘한울림’이었다. 아동극과 성인극을 병행하며 얼마 안 되는 수입에도 마냥 행복해하며 극단생활에 투신했다. 혹자에겐 애송이일 수 있는 그 7년간의 극단생활이 지금의 내가 딛고서 있는 한 뼘의 땅의 뿌리다. 극단 ‘한울림’의 대표이자 연출가이신 정철원 선생님은 나의 첫 번째 연극 스승님이다. 연극이 순수 예술이란 걸 몸소 보여주시고 끊임없이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드시는 연극적 멘토이다. 좋은 스승과 좋은 동료가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어 난 짧은 시간 안에 <대구연극제>에서 좋은 상들을 수상 할 수 있었다. 2007년 「사랑을주세요」로 연기상을, 2009년 「녹차정원」으로 우수연기상, 2013년 「돌날」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말도 안 되는 과분한 순간들이었다. 꿈을 향해 무작정 들이댄 것치고 너무나 과분한 행운이 주어졌다. 아마 아들의 꿈을 그렇게 반대하셨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하고 최우수연기상을 받고 맘속으로 다짐했다. “아버지! 상은 감사하지만 독약이라 여기고 자만하지 않고 더 잘할 겁니다”하고 말이다. 이듬해인 2012년 뮤지컬배우 이민주를 만나 결혼하였고 대구시립극단에 상임 단원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시립에 들어가서 처음 이국희 감독님, 그리고 지금의 최주환 감독님, 그리고 선배들과 동료배우들과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 그리고 시립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그 모든 것들이 울타리 같고 구속받는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웠다. 바로 책임감이다. 예술인에게 책임져야할 가정과 직장이 있다는 건, 자유로웠던 영혼의 날개를 잃은 것만큼의 핸디캡이 장착된 것 이라 생각 할 수도 있다. 또 그 누군가는 예술인이 월급을 받는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곤 하는데 ‘온실’, ‘무덤’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아마도 자유로움이 제한되고 고립되어 정체되거나 퇴보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난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어디서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나의 다음 꿈은 무덤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배우와 관객, 객석과 무대, 살아있는 사람과의 만남, 사람의 힘, 그 향기가 더 짙고 깊으며, 오래 남을 수 있는 사람, 배우가 되고 싶다.

나는 꿈을 이루었는가? 그 어린 날의 「산불」은 어찌되었나?
대답은 ing…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내 인생의 키워드, 해시태그는 #내성적인, #열정적인, #개척, #미친놈, #똘끼, #광끼, #대구하정우, #에너지, #대체불가능, #원탑, #산불, #플린이아빠, #홉이아빠 등 절실함의 크기이다. ‘절실함’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의 절실함은 부끄러울 만큼 작아져 먼지가 되어 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아니,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어서 바다 밑 거대한 절실함의 크기가 아직은 남아있길 소망한다.

지금의 나는 분명 성장했다. 20년 전의 최현호에서 지금의 최우정이 있기까지 그 시간들은 분명 나의 머리를 커지게 했다. 하지만 몸집, 마음집, 의식도 함께 커져야 하는데 반비례가 되는 것 같아 고민이며 끊임없는 상념에 빠지게 한다. 그 상념은 아마 끝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해야할 숙제일 것이다. 연극을 시작한지 20년도 안된 풋내기이지만 10년 후 또 10년 후엔 더 괜찮은 배우가 될 거라 확신한다.

나는 배우다.
눈물도 많고 조용하며 내성적이고 미친놈 같았던 아이가 꿈을 이루었고, 원 없이 관객들과 소통하며 무대 위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울고 웃는다. 인생은 참 신기하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 중에 인생 선배들도 많겠지만, 어떤 이들은 곧 다가올 수 있을 사고 같은 찰나를 만나면 반갑게 악수 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꿈을 꾸고 꿈을 가지고 꿈에 도전하기 바란다.

내가 사는 지금을 누군가 담장 밖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이 연극이고, 카메라앵글을 들이댄다면 그것은 영화이듯이, 지금의 이 순간을 누구보다 진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그대들의 ‘지금’이라는 무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