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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빛나는 잡음에 끌리다
LP 전문 라이브 뮤직바 ‘CUSA 18’
인터뷰이_CUSA 18 김성민 대표
인터뷰어_홍보발간팀, 정리_박선경
아날로그로의 회귀. 최근 디지털에 둘러싸인 사람들이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하고 있다. 컴퓨터나 모바일로 책을 읽기보다 책의 바스락거림이 좋고, 방금 떠오른 생각을 종이 위에 펜으로 써 내려가면서 느끼는 오감의 만족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LP는 이 같은 아날로그로의 회귀 대표주자다. 턴테이블 바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레코드판으로 내려가면서 음악이 재생되는 순간의 희열 같은 것이 있다. 이런 LP음악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LP가 사라질 것처럼 세상이 들썩거렸을 때도 조금의 미동조차 없이 LP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러한 노력 덕에 다시금 빛을 보는 날을 맞이하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방천시장 김광석길에서 서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LP 전문 라이브 뮤직바’CUSA 18′ 김성민 대표가 바로 LP음악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그가 이처럼 LP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추억에 젖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였다. 좋은 음악을 좋은 소리로, 그리고 편한 장소에서 듣고자 하는 열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CUSA 18’도 있었고 그 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도 이어진 것이다. 김 대표의 확고한 음악 철학 덕에 음악애호가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은 ‘CUSA 18’에서 그의 음악사랑, LP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Q. 요즘 SNS에서 ‘아날로그’, ‘LP’, ‘음악다방’으로 검색하면, 대구지역의 많은 공간들이 소개되고 있던데요. 이처럼 특별한 공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LP와 처음 만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A. 10대 때인 중학교 3학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을 많이 들었어요. 가끔 녹음을 하기도 했지만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은 지나가는 음악이잖아요. 음악을 계속 듣고 싶어서 LP판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사서 모으다 보니 지금까지 보유 하게 됐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디스크라든지 음악을 나오게 하는 기계들(?)을 사 모으는 취미나 비슷한 그런 것이 있어요. 그러다가 20대 초반 무렵, 예전 유신학원 거리에 고시학원들이 있었는데 거기엔 ‘음악다방’이라는 공간들도 있었어요.

음악다방에 가보면 음악을 트는 DJ들이 다 있었거든요. 거기서 저도 음악을 틀곤 했었어요. 그런데 거기선 정작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못 듣고 손님이 좋아하는 음악만 듣게 되더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을 더 즐겁고 더 신나게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다 오디오를 찾게 됐죠. 좋은 오디오에서는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생각에 점점 오디오 마니아가 돼 갔어요.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오디오를 사고 싶어지고,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하고요. 지금까지 그게 생활이 됐고 음반을 모으는 걸 하게 됐어요. 이런 생활들이 90년대 초반까지 가요.

CUSA18 김성민 대표
LP판은 90년도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제작을 안 하게 되요. 레코드판 제작방법이 어렵거든요. 큰 동으로 된 기계판이 플라스틱판을 찍어내는 방식인데 생산비용도 많이 들고 인건비도 많이 드는데다 제작하는 방법도 어렵다보니 80년대 후반 쯤 획기적인 것이 나오게 되죠. 컴팩트디스크(CD)인데요. LP는 여기에 넣고 재생하는 방법이고 CD, 즉 디스크는 이 기계에 넣고 재생을 하는 거죠. 디스크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크기에요. LP는 디스크에 비해 자리를 엄청 차지하죠. 또 LP는 잡음도 많이 생기고 먼지도 많이 묻고요. 보관하기도 어렵죠. CD는 뭐가 묻으면 닦아내면 되죠.
Q. LP는 어떻게 관리를 하나요?
A. LP는 닦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LP는 닦아서 보관한다고 해도 좋아지지는 않아요. 제대로 보관하려면 음악을 틀어야 해요. LP 사용을 계속 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 쌓인 먼지가 걸러져 나와요. 단점도 있어요. 많이 들어서 닳으면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예전 학창시절에는 LP 한 장 사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어요. 80년대만 해도 LP 한 장에 3,400원 정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꽤 비싼 편이었죠. 그 한 장을 사서 주구장창 들어요. 계속이요. “너 얼마나 들었어?”라고 물으면 “진짜 판이 닳아서 잡음이 날 정도까지 들었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닳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LP가 불편한 점이 그 부분이라 그 다음 CD가 나오고 CD가 나옴으로 인해 더 이상 LP를 생산하지 않게 됐죠. 그러면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LP가 안 나오게 됐어요. 그 뒤에는 컴팩트디스크만 나왔죠. 그러다보니 LP가 자연스럽게 골동품이 되는 겁니다. 구하기 힘든 LP의 경우 가격이 굉장히 비싼데,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LP가 살짝 퇴색이 되면서 LP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CD로 교체를 하게 됐어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요. 음악을 원래부터 듣지 않는 사람들은 LP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는데 저처럼 음악을 계속 듣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지는 거죠. 내가 LP를 모을 것이냐, 더 이상 LP생산이 안되는데… 지금부터 나오는 것은 CD를 살 수 밖에 없어요.
LP에 대해 설명중인 김성민 대표

CD와 동시에 갖고 있느냐하는 고민도 생겼었죠. 그래서 갖고 있는 음반들이 CD로 나오게 되면 교체를 하기 시작했죠. 사 모으고 또 사 모으고요.(웃음) 디스크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LP로 듣게 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됐어요. LP는 준비사항이 길죠. 케이스를 열고 곡이 끝나면 쫒아가서 다음 곡이 재생되게 만져야 해요. 세상은 점점 편리한 쪽으로 가잖아요. TV처럼 채널을 돌리다가 리모컨을 누르는 것처럼.

하지만 LP로 듣는 소리와 디스크로 듣는 소리는 달라요. 귀로는 구별을 못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관한 뇌파 실험을 하면 알 수 있어요. 한 실험에 의하면 아날로그, 즉 LP로 음악을 들으면 뇌파가 굉장히 안정적이고 편안한 구조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LP로 나오는 최신 음악

그 얘기가 나오고 나서부터 다시 LP를 찾는 사람이 생겼고요. 저도 LP를 계속 듣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걸 집에서 듣게 되니 제약을 받게 되죠. 결국 집에서 나와서 밖에서 듣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어요. 그러던 차에 아는 동생이 인테리어 쪽 일을 하고 있어서 사무실에 가게 됐어요. 그 동생이 사무실에서 오디오로 음악을 듣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 집에 더 좋은 오디오가 있으니까 이걸 여기다 놓고 내가 음악을 들으러 올게”라고 하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와서 편하게 음악을 듣게 됐어요. 와인도 한 잔 하면서요. 그러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하고 모여서 같이 듣게 됐어요.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다 보니 이럴게 아니라 LP 바라든지 음악카페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죠. 그래서 처음에 상인동에서 정말 조그마한 공간에서 바를 운영하게 됐어요. 커피만 팔고 음악을 틀었죠. 근데 여기를 찾는 손님들이 “공간도 너무 좋고 오디오도 너무 좋은데 왜 작은 규모로 운영하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큰 공간에서 운영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소리라는 게 좋은 공간이 형성되어야 제대로 나오는 거다 보니 넓은 공간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었어요.

장사가 주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간을 좁게 운영을 했어요. 사실 제가 투 잡을 하고 있어요. 오전에는 다른 일을 하고 오후에는 음악카페를 운영을 하고 있어요. 오전에 다른 일을 하고 피곤하지만 오후에 음악을 듣는 일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점점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돈벌이로는 좋았죠. 음반도 사 모을 수 있게 되고요. 그런데 이것도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못 듣게 되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상업적으로 갈 수 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되면 결국 뮤직카페라는 본연의 의미가 퇴색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카페는 여기서 다양한 음악을 듣고 여기서 음악을 들으면 행복감을 느끼고 즐기는 공간이니까요. 그냥 시내 백화점, 길거리에서도 제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들이 나오니 제 가게가 별다른 차별성이 없어지더라고요. 차별성 한 가지는 다른 집보다 소리가 좋은 거였죠. 오디오가 좋았으니까요.(하하)근데 우리는 오디오 카페가 아니라 LP 카페인데요. 결국 2층까지 확장을 했었다가 5년 정도 가게를 쉬고 대봉동으로 오게 됐어요. 여기서는 한 달에 한 번 공연도 해요. 공연은 1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8번짼데요. 출연진은 언더그라운드 급 말고 레전드 급들만 와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했어요. 이미 언더그라운드 급은 김광석 거리에서 버스킹도 하고 공연도 이미 많이 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공연을 하되 퀄리티 있는 공연을 하려고 했죠. 와서 공연을 하시는 분들도 소리를 듣고 좋아해요. 이번 달은 휴가 가는 분들이 많아서 뺐어요. 9월 16일에는 공연이 있어요. 놀러오세요.(웃음)

Q. 그때 와서 촬영도 하고 공연도 관람해도 될까요?(하하)
A. 네. 당연하죠. 여기서 하고 싶었던 점은 정말 놀이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주말에는 한번 씩 신나는 음악을 틀어서 클럽처럼 만들기도 하고요. 가게가 좁다보니 관객들과 서로 가까이서 즐길 수 있게 하죠. 필 받으면 집에 안가고 계속 공연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희 가게에 영상이 지금 나오는데요.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게 되면 집중을 못하게 되요. 영상으로 듣는 음악이 제 기준에서는 완벽하지 않거든요. 일반인들은 잘 구분이 안 되는데요. 그래서 저는 세팅을 할 때 스피커를 위에 놓아요. 그러면 마치 공연장에서 보는 느낌이 나요. 올해 콜드플레이가 한국에 왔었잖아요. 제가 그 표를 못 구해서 가질 못했어요. 제가 직접 못 가본 아쉬움에 영상을 틀고 음악을 들었는데요. 그게 대박이었어요. 여기서 듣고 영상을 보면 너무 좋아요.
CUSA18 내부 라이브러리
Q. LP는 자주 틀어놓으시나요?
A. 네. LP도 자주 틀어요. 저는 영상 쪽 보다는 LP나 CD 라서요. 음원도 양질이 아니면 잘 안틀어요.
Q. 가게이름이 한번 들으면 잘 잊혀 지지 않는데요. 음악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사실은 제가 독단적으로 지은 건 아니고요. 건물주와 협의를 하다보니까요.(웃음) 이름을 짓고 나서 의미를 부여했는데요. ‘사롱드 쿠파 18 올드’라는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Q. 가게 이름을 말하다보니 제가 발음을 너무 세게 했나싶었어요.(웃음)
A. 네. 이름은 자기가 기억하기 쉬운 쪽으로 가게 되죠. 기억하기 정말 쉽죠. 보통 음악 바들을 보면 음악과 관련된 이름을 많이 걸죠. 대부분이요. 뮤지션이름인 ‘비틀즈’ 같은 거죠.
Q. 계속 이런 공간으로 운영을 하실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발전 방향을 생각하시는지?
A. 여러 군데서 운영을 하다 느꼈던 부분들을 여기에 와서 실험적으로 하는 것도 있어요. 정말 사람들이 내가 신나는 음악을 틀었을 때 춤을 출 것 인가 말 것인가, 공연을 했을 때 과연 관객들이 박수만 칠거인가, 같이 호흡을 할 것인가 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죠. 여기서 미완성된 작품은 다음 공간에서 완성되지 않을까싶습니다. 이제 1년 정도 운영을 했으니 아직 더 실험을 할 계획입니다.
CUSA18 전경
Q. 계속 실험적으로 운영을 하고 계시는데요. 내가 정말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나요?
A. 예전에는 DJ 박스가 있었는데요. 음반을 틀고 멘트를 하는 곳이요. 저는 멘트는 잘 안하고 묵묵히 음악을 틀어주기만 하는데요. 손님들의 표정이나 그런 부분을 잘 살펴봐요. 이 공간에 음악이 어울리는지 많이 보는 거죠. 제일 기분 좋은 것은 내가 오늘 사람들을 들썩이게 하고 싶다했을 때 손님들이 들썩이면 되게 뿌듯해요.
반면에 한 번씩 음악 소리를 높여 달라 줄여달라고 할 때는 굉장히 힘들어요. 누구에게 맞춰줄 수는 없거든요. 공간자체가요. 그리고 여기는 제가 선장이 되고 제가 배를 띄워야 하는 거거든요. 아까 보셨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4인 이상, 복장불량은 입장불가 등등 써놓았는데요. 그 이유는 자칫하면 분위기가 제가 원하는 대로 안가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안 되는 경우들도 있었죠. 큰 공간은 컨트롤이 안 되고 작은 공간은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CUSA18 앞 공지사항 간판
사실 손님들을 제가 많이 가려요.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 것은 제가 트는 음악에 손님들이 웃기도 울기도할 때예요. 어느 날은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이 왔는데 하루 종일 감탄만 하고 계시더라고요. “역시” “캬” 이렇게 만요.(하하) 그런 분들을 보면 제가 기분이 좋죠.
이처럼 LP 바나 뮤직 카페가 단지 옛 향수만을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 하고 싶은 건데 공감해 주시면 좋죠. 공연도 그래서 하는 겁니다.
Q.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인 것 같아요.
A. 사실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은 없었는데요. 운영을 하다 보니 복합문화공간으로 가게 됐어요. 지금은 복합적으로 이어가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