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목차보기
문화리뷰
Print Friendly, PDF & Email
‘국내전시’
‘강정, 미래의 기록
(A Statement of Continuous Journey)’을
읽고 생각하다
글_하윤주 미술평론가
강정 가는 길
이제는 여름의 미술축제로 자리 잡은 ‘강정 대구현대미술제1)(이하 강정 미술제)’, 올해는 어떤 작가들이 자연과 사투를 벌여 승리했을까라는 걱정 반 기대 반을 안고 길을 재촉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닫힌 공간에서의 전시 관람은 관객에게 정적인 감상 태도 혹은 내적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나 광장에서의 예술 감상은 이와는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열린 공간이기에 좀 더 능동적인 감상 태도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강정 미술제가 열리는 낙동강 강정보 디아크 광장은 낙동강과 허허벌판 광장이라는 자연무대, 강정보와 디아크라는 거대한 인공물이 내뿜는 에너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예술작품이 어떤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냈을까를 기대하는 것 역시 강정 미술제가 선사하는 독특한 설레임이 아닐 수 없다.
2017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성공의 기록
이번 ‘2017 강정 미술제’를 알리는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출발’, 과감한 변화와 확장’, ‘건축과의 협업’이었다. 이는 이전 미술제들과 구별되는 전시의 내용과 형식으로 읽혔다. 1회 ‘강변 랩소디(감독 박소영, 2012)’와 2회 ‘강정가다(감독 박영택, 2013)’가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가 가진 역사성에 기반한 미술제였다면, 3회 ‘강정에서 물․빛’, 4회 ‘강정,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5회 ‘강정 대구현대미술제5(감독 김옥렬, 2014-2016)’는 장소성, 즉 강정이라는 현장성이 더 강조된 미술제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6회 ‘강정, 미래의 기록(감독 안미희, 2017)’은 기존의 전시가 시도하지 않았던 변화를 찾아 나선 여정이 된 듯하다.
최춘웅 「Village Tower」

대구현대미술제는 대구 미술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연구와 전시는 다방면으로 이어져왔다.2) 따라서 필자는 이제까지 강정 미술제가 역사를 회고하는 미술제 혹은 강정이라는 현장을 재해석하는 미술제였다면, 앞으로는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는 행사가 아니라 대구의 미술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미래지향적 미술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이번 미술제의 주제 ‘강정, 미래의 기록’은 내용적으로 기존의 역사성과 현장성을 넘어서서 미래에 방점이 있는 미술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시기적절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한편 단순한 조각제를 넘어서서 ‘건축과의 협업’은 전시 공간(디아크 광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여는 시도였다. 필자 역시 강정보 디아크 광장이 가진 열악한 전시 환경 극복을 위해 특정 구조물이 현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실현하였는지 나름 기대가 컸다. 특히 미디어 아트를 소개하면서 노출스크린(함양아「새의 시선」) 뿐 아니라 터널식 구조물(제니퍼 스타인캠프「Fly to Mars 8」), 극장식 구조물(임우재「Beyond Space」) 등 다양한 감상 방식은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임우재 「Beyond Space」
실패의 기록
‘새로운 변화와 확장’에는 다양한 실패의 변수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특히 야외미술제는 자연과 그리고 시간과 싸워야 한다. 필자는 3회(2014) 미술제에 참여한 바가 있다. 썬데이페이퍼 그룹의 일원으로 디아크 광장에 거대한 천막 「꿈과 꿈 사이(In between dreams」를 설치하였는데, 생각과 생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이자 그늘 하나 없는 디아크 광장에 시민들이 쉬어가는 쉼터이기를 바라며 작업했던 기억이 있다. 설치 과정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이 작품이 전시기간 동안 폭우와 태풍에 온전히 견딜 수 있느냐였다. 알다시피 미술제가 열리는 기간은 우리나라가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을 맞이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술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건축과의 협업’에 맞게 내심 이제까지 미술제에서 보지 못했던 가장 견고한 구조물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장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상당수 작품들이 내부점검 중이라는 글귀를 달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함양아「새의 시선」(위) 제니퍼 스타인캠프「 Fly to Mars 8」(아래)
한편 이번 미술제는 조형성 위주의 기존 야외미술제와 변별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미술제를 위해 ‘건축과 어우러진 다양한 동시대의 미술작품,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 아트, 고정관념을 깨는 설치미술, 관객 참여미술, 강정의 자연과 장소를 소재로 만들어지는 실험예술작품’3) 등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하는 장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작업들4)이 많았는데,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체험하게 하는 목적으로 공간의 확장을 꾀한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과연 여름밤 더위를 피하면서 문화를 향유하고자 강정 광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이 시도가 유효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역시 동시대 미술은 공간적으로나 감상 방법상 너무나 어렵고 먼 당신이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겪은 동시대미술은 특정 매체에 국한되거나 특정 이념을 추구하는 미술이 아니라, 거칠게 말해’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라는 개념이다. 한참 양보해서 낯익은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을 대여5)한 건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굳이 프랑스의 FRAC(The Fonds régionaux d’art contemporain 프랑스 지역자치단체 현대미술 컬렉션)6)의 소장품을 대여7)하여 강정 미술제에 재현한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썬데이페이퍼 「꿈과 꿈 사이」
미래의 기록을 위하여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도전을 시작한 강정 현대미술제, 미래에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기 위해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시작해야할까…
이를 위해 먼저는 미술제의 중심 가치(core value)를 명확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필자 역시 강정 현대미술제가 과거의 유산을 단순하게 반복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유산을 발판 삼아 동시대 예술의 다양한 도전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미술제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열린 라운드 테이블8)에서 논의 된 네 가지 키워드 – 지역성, 아방가르드, 협업, 공공성-는 이를 실현하는 시작점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정 미술제가 해마다 열리는 행사이니 만큼 매해 하나씩 각 키워드들을 심도있게 고민하고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2017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구색맞추기로 끼워넣는 것보다 지역 작가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도록 장을 만든다든지(지역성), 최근 미술계의 도전적인 실험작들 만을 한 자리에 모아본다든지(아방가르드), 개별작가들의 작업이 아니라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의 면면을 본격적으로 소개해 본다든지(협업), 더위를 피해 모여든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관객참여예술의 다양한 장을 연다든지(공공성)하는 시도 말이다.
강정 미술제는 지역 문화재단이 지역민에게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여름의 문화축제다. 동시에 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라는 역사성을 계승하는 의미있는 행사다. 아방가르드 정신을 이으면서도 지역민과 소통해야 하는 이중 구조 위에 선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부디 이 둘 사이에서 빛나는 승전보를 들을 수 있기를…
(사진_달성문화재단 제공, 김사라)
  • 1)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수도권 중심의 경직된 미술계를 뒤로하고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무장, 지역에서 열렸던 도발적인 미술제로서 전국적 현대미술운동의 기폭제가 된 역사적 사건이다. 특히 3회(1977년) 대구현대미술제는 시민회관 전시장과 더불어 낙동강 강정 백사장에서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열리면서 미술제의 정점을 찍었고, 그 역사적 사건은 2012년부터 달성문화재단 주관으로 열리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로 이어지고 있다.
  • 2)<대구미술 다시보기-대구현대미술제 ’74~’79>(2004. 10. 13 – 24), 대구문화예술회관 1-10 전시실, 2004.
  • 3)2017 강정 현대미술제 ‘강정 미래의 기록’ 전시 서문 중
  • 4)전리해(강정보 유람선 달성호 내부), 홍승혜(대구시내 옥외 전광판 4곳), 서성훈(대구예술발전소)
  • 5)디트리히 클링에(Dietrich Klinge)의 「Model for a Big Sculpture V(2004)」,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의 「Fly to Mars 8(2010)」
  • 6)프랑스 신진 예술작가의 창작 독려와 지방예술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 창설된 기관
  • 7)알랭 세샤스(Alain Séchas)의 「Photomatou(2007)」,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의 「Work No, 262(2001)」
  • 8)“2017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라운드테이블-동시대미술과 지역미술제의 방향”, 대구예술발전소, 2017.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