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_홍보발간팀, 정리_박선경
김 : 저는 김금환 선생님이 창단했던 영남오페라단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 인터뷰는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몇 년 전 한 잡지에서 ‘김금환 선생님’에 대한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제자와 손자, 그 시절 선생님들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을 가져왔어요. 선생님의 사진은 예전에 좋은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여기 가져온 사진들만 남아 있어요.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을 텐데요. 그 때 선생님이 주인공 남자고 제가 주인공 여자였어요. 사진들은 너무 흐릿하네요. 사진의 배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페라에 썼던 소품들은 다 선생님 손으로 다 만드셨어요. 마치 오페라 ‘라보엠’ 처럼 가난한 화가, 문학가, 오페라단원들이 열정 하나로 뭉친 그런 시절이 있었거든요.
김 : 저는 제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김금환 선생님은 생애 전체가 오페라로 가득 찬 분이셨어요. 선생님은 서울에서 활동을 하셨을 때부터 이미 국립 오페라단 종신 단원이었고 한국에서 테너로 유명했어요. 안형일 교수님과 선생님이 한국의 테너로 쌍벽을 이루었죠. 그 후 선생님이 대구로 오시면서 대구 오페라 발전의 계기가 되었지요. 그리고 영남오페라단을 만드셔서 10년 동안 이끌어가셨어요. 제가 24년째 영남오페라단을 맡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영남오페라단에서 ‘토스카’, ‘라보엠’, ‘나비부인’ 등 연달아 작품을 했었는데요. 선생님과 함께 한 작품은 두 개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라보엠’이구요. 선생님은 단장으로써 연출을 하셨어요. 재주가 너무 많으신 분이였죠. 아까 이야기 드렸듯이 밤새도록 공연 소품을 직접 만드셨어요. 오페라에 관련한 모든 것을요. 열정도 많으셨고 그 시절 연주를 제대로 배울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 선생님은 연주를 하면서 지도도 하셨지요. 대단한 분이셨어요.
성격 면에서는 대구음악인들이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갑고 그랬어요. 그것 때문에 아마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본 김금환 선생님은 정확하고 빈틈하고 절대 남에게 실수 안하시는 분이에요. 자존심이 정말 강했어요. 저도 그렇긴 하지만 오페라를 하면 어디 가서 도와달라고 홍보를 해야 하는 데 그걸 못하셨어요. 얼마나 오페라가 가난했겠어요. 그런데도 한 번도 남에게 부탁을 안 하셨죠. 독실한 가톨릭신자여서 스캔들이나 그런 면에서도 깔끔하셨고, 도덕성이나 이런 면에서도 뛰어나셨어요.
김 : 그 당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으셨어요. 그리고 대구가 오페라의 메카가 된 것이 김금환 선생님의 공로가 지대했다고 봐야하죠. 왜냐하면 오페라 불모지인 대구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페라’는 이런 것이라고 알려줬죠. 처음으로 대구오페라협회를 만드셨고 오페라 ‘토스카’를 1회로 올렸죠. 임우상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자고 건의하신 것도 김금환 선생님이시라고 해요.
선생님의 큰 업적은 음악, 성악 하는 사람들을 오페라 무대에 서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고, 더 대단한 것은 뜨거운 열정으로 단 한회를 쉬지 않고 10년 동안 오페라를 올린 것이죠. 영남대학교 교수시절에도 정말 완벽하고 철저하게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빈틈이 없으셨죠.
홍보발간팀 : 대구에서 특별하게 내세울게 없었던 때, 공연문화도시라는 브랜드가 생겼는데요.
김 : 오늘날 대구 오페라의 초석을 놓아주신 김금환 선생님의 공로와 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교수님으로 대구에 오시면서 이미 서울과 일본에서는 인정받고 활동하셨던 열정을 거의 오페라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대구에서 활짝 피우셨어요. 대구오페라하우스 건립을 건의하는 한편, 해마다 주역가수이자 연출가로, 또 제작자로 끊임없는 활동을 하셨어요. 저는 영남오페라단 2대 단장으로서 선생님을 이어받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특히 2018년은 한국에 오페라가 시작된 지 70년째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첫 오페라는 1948년에 개최된 ‘조선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입니다. 창단 단장이신 이인선 선생님과 김자경 선생님이 주역을 맡으셨지죠. 그 후 김금환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지금은 오페라 문화가 전국적으로 많이 발전했고 특히, 대구가 오페라의 도시, 공연문화의 도시가 되었죠.
김금환 선생님은 대구에서만 아닌 한국 최고의 테너였습니다.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영남오페라단도 없었겠지요. 그런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우리가 오페라라는 문화를 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문화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든 초석을 놓아주신 분이 바로 김금환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