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목차보기
문화공감
Print Friendly, PDF & Email
<릴레이 기고 3>
연극을 즐기자~! ye~! 배우를 꿈구며
글_예병대 극단고도 부대표
22년이나 지난 1995년 무더운 어느 날, 지금까지도 몸담고 있는 극단고도의 문을 처음 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내 나이 17세! 특별한 장래희망도 목표도 없이 지내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 못난 놈 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일찍부터 난 그 당시 여느 아이들처럼 가끔 쌈박질도 하고, 공부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미술 활동만이 나의 쉼터이고, 활력소였다.
그러다 14세 때 처음 접했던 것이 사물놀이였다. 요즘엔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도 많고, 자유학기제로 전문적인 직업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그때 뭐가 있었겠나? 그래서인지 학교 공부가 아닌 사물놀이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어린 나이에 사물놀이를 하면서 무대에도 올라가 보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참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여러 가지 다른 것들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 밴드 이름이 “가들” 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도 ‘그들’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웃긴 이름이지만 그 당시엔 그게 또 얼마나 멋지게 들리던지 우리끼리 뿌듯해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다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가 연극을 한다는 말을 듣고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의 제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별주부전”.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구 연극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극장인 “동아쇼핑 8층 비둘기홀”, 이곳에서 많은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공연을 하였고, 지금은 유명해진 모 배우들도 많다. 아무튼, 이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데, 객석을 가득 채운 300여 명의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었다.
그 공연이 ‘극단 고도’라는 곳에서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극단을 찾아가 호기롭게 ‘극단 고도’의 문을 열었다. 이것이 마치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세계에 몸을 담게 된 순간이었다.
처음엔 그저 재밌어서 했었고, 그 이후엔 잘 하고 싶어서 했었고, 그러다,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했었던 거 같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백화점에서 아동극을 하고 쉬고 있는데 후배 한 명이 날 찾아왔었다.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기자분과 함께……. 후배의 단독 인터뷰였는데 몇몇 선배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는 거였다.
난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대답을 해줬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말을 못 했다 싶은데……. 그때 내 대답이 “하지 말라”였다. “난 미술도 하고 음악도 해봤지만, 내가 해 본 것 중에 연기가 제일 어렵다. 내가 이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그만둘 것이다! 이렇게 힘든 걸 왜 하려고 해?? 하지 마!” 이렇게, 되돌아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이후 그 방송을 봤는데……. 호랑이분장을 하고, 호랑이 옷을 입고, 그러면서 진지하게 말을 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다행히 그 후배는 내가 제일 솔직하게 말을 해줘서 고마웠다고 했었다. 그리고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다. 하여튼 말은 진짜 안 듣는다.(흐흐)
그렇게 연기 인생을 이어오면서 연극뿐만이 아니라 뮤지컬, 악극, 신체극, 방송까지 연기라면 가리지 않고 해왔던 거 같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작품을 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뭐에요?”였다. 나에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솔직히 하나는 아니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하나만 고르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럼 다른 작품에 미안하지 않겠나? 라고 변명도 해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는 내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맨드라미 꽃”이다. 대구시립극단과 함께 했던 작품인데, 그 작품으로 인해 여러 선생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여러 배우들에게 나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맨드라미꽃에는 총 5명의 남자 배우가 나오는데, 그중 3명이나 소위 ‘연기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더 기억에 남는 거 같기도 하다. 사실, 천재들과 같이 작품하기엔 상당히 부담스럽다, 더구나 그때 내가 주연이어서 더욱더.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맥베스”다. 이 공연은 ‘극단 고도’의 20주년 기념공연 이었는데, 피지컬극이라는 형식으로 대사들이 독백들로만 이뤄져 있어 여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3개월간 하루 9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고 한국무용까지 배우며 열심히 준비한 “맥베스”는 하마터면 공연을 못 할 뻔 했었다.

연극’맥베스’
그 이유가 바로, 2015년 대한민국을 공포로 물들게 한 ‘메르스 바이러스’. 그 당시 메르스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어쩔 수 없이 막을 내리기도 했었는데, 우린 2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타이틀을 차마 포기하기 아쉬워 애써 무대를 올렸었다. 빠른 전염병으로 공연 전 개개인 열 체크까지 했던 터라 관객 수에 연연하지 말고 공연을 올리는 것에 만족하자고. 그런데, 400여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그리고, 함성과 박수소리.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한발 한발 움직였다. 내가 마지막에 적에게 죽임을 당할 때 유명한 맥베스의 대사를 읊는데, 마치 그 전쟁터와 삶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연극계 같아서 잊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연극 ‘용을 잡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한 작품만 더 말하고 싶다. 꼭 말하고 싶다. 바로 “용을 잡는 사람들”이다. 3년간 공연을 해온 작품이다. 창작 초연이었고 다른 역할의 배우들이 바뀌어도 난, 늘 같은 역할을 맡아 해왔다. “용을 잡는 사람들”은 판타지 같기도 하고, 풍자 같기도 한 기존의 연극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작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공연은 예술가들이, 특히 연극인들이 일반 관객보다 더 많이 본 거 같다. 그러고 나선 모두들 이들의 삶이 아무런 기약도 없는 길을 묵묵히 나의 의지에 따라 걸어가는 예술인의 모습 같다고, 꼭 예술인의 이야기 같다고 말을 하더라. 특히 2016년 마지막 공연 때엔 오프닝을 끝내고 무대에 들어섰는데 이상하게도, 너무나 이상하게도 무대가 진짜 산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객석을 가득 채웠던 관객들은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고, 정말 산에 올라와 있는 날 보게 된 것이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상태로 어리둥절하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공간 속에서 공연을 끝마쳤는데, 어떤 선배님들이 이런 상태를 연기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좀처럼 겪기 힘든 몰입의 상태를 겪었다고 대견해 하셔서 나에게 잊지 못할 공연 중에 하나로 각인 되었다.
연극 ‘용을 잡는 사람들’
난 공연을 정말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걸 다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쟁이인가?(흐흐)
요즘은 친구들과 연락이 뜸하다. 당연한 것이 지인들과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다. 늘 연습과 공연으로 주말이 더 바쁘고 휴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항상 정해진 시간대로 생활하는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점점 문화 예술계통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예술계통 사람들하고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부족하지 않은 삶, 여유로운 생활…….
솔직히 연기를 하면, 힘들 때가 많다. 전공자들은 이렇게 말하더라. 연기만 잘하면 서울로 올라가게 되고,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유명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연기에 잘하고 못하고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옳은 연기, 바른 연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서 난 늘 새로운 길을 향해 달려간다. 내 힘든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는 지금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비록 찬란하진 않더라도 후회 없는 미래의 연기하는 나를 향해 가고 싶다.
요즘 내가 활동 중인 대구 대명동엔 여러 극단이 존재한다.

서울의 대학로처럼 여러 극단과 단체, 극장들이 모이고 모여 점점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그중 ‘에테르의 꿈’이라는 극단과 ‘극단 백치들’에서 공연을 만들고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가끔 내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연기가 부족하더라도, 표현이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더라도 나보다, 우리 선배들보다 더욱 많은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 후배들에게 지기 싫어서라도 아니, 선, 후배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동료로서 날 좀 더 다듬고, 채찍질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거울 속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요즘 기대하는 것이 있다. 새로운 정권으로 바뀌었으니 연극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는……. 작년에 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여러 번 보도가 되었었다. 솔직히 나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언제였던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없으면 예술인이 아니다”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는데, 난 이름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예술인이 아니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자기가 맡은 상황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블랙리스트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난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질책을 받더라도 내가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편이기도 하고. 이번에 새 정권으로 바뀌기 전, 여러 사람들이 SNS를 통해 투표에 대한 강요를 받은 적이 많이 있는데, 난 글쎄……. 어떤 정권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고 싶지는 않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좀 더 편하게 공연을 올리거나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하하,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한다는 웃음을 살 수도 있겠다.

우리는 돈을 위해서 예술을 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을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잠시라도 웃음과 해학을 주기 위해 그리고 공연을 보는 동안 마음을 편히 가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다만, 새로운 정권이 많이 도와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단순히 일시적인 지원금제도를 넘어서서, 지역을 넘어서고 국경을 넘는 그런 예술의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힘써주시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아니 큰 바람이다. 예술인과 관객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연극 ‘아비, 규환’
마지막으로, 난 지금 연습 중이다. 감사하게도 2017년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아비, 규환”이라는 작품으로 제2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나가는데,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다. 10여 명의 배우들과 여러 스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루를 꼬박 여기에 투자하고 있다. 연습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을 위해서도, 돈을 위해서도 아닌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22년간의 외길 연기인생.
가끔 “스텝치곤 연기를 너무 잘하는데?”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만큼 연출, 무대제작, 소품제작, 디자인, 편집 등등 여러 가지를 소화하곤 하지만, 난 배우다. 늘 배우고 싶다. 그리고 난 욕심쟁이니까 항상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 것이다. 지금 내가 흘리는 굵은 땀방울에 몸이 젖어 힘들고 괴로워도, 곧 바람이 불어 내 몸을 상쾌하게 만들어줄 것을 알기에 난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연기자분들과 문화 예술인분들~ 우리 모두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요. 예술을 한다는 건 우리들에게 내려준 선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