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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2>
한여름밤의 꿈처럼 찬란하게 빛나길…
글_ 이민주
처음 이 릴레이기고 제의를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자격이 있나? 노래하고 춤추고 대사 몇 마디 할 줄 아는 내가 뭐라고 젊은 예술가사이에 끼어 나의 목소리를 낸단 말인가!’ 이었다. 문장능력도 없고 어휘력도 부족한지라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모두 내려놓고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소소하고 일반적이지만 그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 이야기 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며 어머니가 어렵게 구해주시는 만화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수백 번 돌려보면서 대사와 노래들을 다 외워버렸다. 막연히 “나도 저렇게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좀 커서야 그게 바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라는 걸 알았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이 극의 플롯 전개에 가미되어 잘 짜 맞추어진 극의 형식이다. 그래서 뮤지컬 배우는 노래, 춤, 연기 이 모든 것들이 충족되어야만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뮤지컬이 대중화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이다. 고3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대구에 최초로 뮤지컬과가 생긴’대경대학’에 수시로 합격하게 되면서 뮤지컬과의 인연을 쭉 이어오게 되었다. 첫 단추가 중요한데, 나의 첫 스승님은 정말 최고의 스승님이셨다. 미국에서 오신 흑인교수님 이셨는데 항상”more energy!! more energy!!”라고 외치시며 무대 위 에너지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동양인은 표정이 많이 인색한 것 같다며 표정을 좀 더 쓰라고도 말씀해주셨다. 존경하는 교수님들과 3년 동안 창작 작품들을 만들면서 나의 뮤지컬에 대한 개념들은 그렇게 만들어져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극단생활을 했다. 낮에는 아동극을 하고 저녁엔 정극 연습을 하며 무대의 꿈을 꾸었다. 그러던 중 2006년 대구에서 열리는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이하 DIMF)을 준비하며 전야공연인 <번데기>라는 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연극협회, 음악협회, 무용협회 이렇게 대구의 예술협회가 힘을 모았다. 운이 좋게 여자주인공을 맡게 되었는데 실력보다 과분한 역을 맡으며 많이 깨지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것을 밑거름 삼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자 서울에 올라가자 맘먹었다. 그렇게 <헤어스프레이>, <맘마미아>를 연달아 앙상블로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맘마미아>는 거의 5년 정도에 걸쳐 꽤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한 작품이라 많이 애정하게 되었다. 처음 작품이 시작 할 때는 가장 뒷자리에 포지션을 받았지만 이후 점점 앞쪽과 중앙으로 포지션을 받게 되었다.

<맘마미아> 리셉션 중 중년의 어느 부인이 오시더니 나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깜짝 놀라 “저요?”라는 바보 같은 대답을 했다. 그 부인은 나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나만 보였다는 말을 하며”십 년 뒤엔 최 정원 씨 같은 슈퍼스타가 되실 거예요!”했다. 대사한마디 없는 작은 역이었지만 관객 중 그 누군가는 나를 보며 에너지를 받고 무대 위 어느 곳이건 어느 순간이건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대 위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존재가 되고 그때의 그 일은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필리핀 한인 타운에 뮤지컬 공연을 가게 되어 그때 만난 배우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연극배우인 그와 함께한 작업은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같은 무대예술이지만, 차이점은 분명 있었다. 뮤지컬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기와 울림 있는 발성, 그리고 무대에 대한 마음과 자세….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존경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의 동반자까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멋진 파트너이다. 평생 잊지 못할, 나에게 과분한 행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제7회 딤프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게 된 일이었다. 초이스 씨어터의 <오미스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여자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결혼하면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고자 하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내용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그런 행운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그때 사실 나의 뱃속엔 5개월의 아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복덩이라 불리고 있다. 임신 초기 때라 조심해야 할 시기였는데도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작품이라 많이 힘이 들었다. 한 장면 끝날 때마다 대기실에서 뻗어있다 등장하고 뻗어있다 등장하고를 반복하며 무사히 공연을 마치게 되었다. 작품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에 대한 보상이라 하기 에도 너무 과분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잘 버텼다고 토닥이며 감사히 수상했던 것 같다.

앞으로 배우인생에서 그 상이 나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나의 마음과 의지에 달렸다. ‘절대 교만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며 끊임없이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자’이 생각을 항상 되 뇌이며 지금도 작품에 임하고 있다. 대구에 뮤지컬 하는 후배들이 점차 많이 생겨나면서 저절로 선배가 되면서 항상 되 뇌었던 말을 후배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배우들의 수는 한정되어있고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은 많다보니 작품을 쉽게 접하고, 역할도 쉽게 얻다보니 무대에 대한 마음 또한 쉬워졌다고나 할까…. 그 많은 작품과 배우 중에서 내가 맡게 된 작품과 역할은 기적을 거쳐서 나에게 왔다.

대사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노래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들을 감사해야 한다. 감사함은 절실함을 만들고 절실함은 좋은 작품을 만든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우는 소모품이다. 연출가가 그리는 그림에 내가 가진 이 색깔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색으로 바뀔 수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짝 떴다 사라지는 수많은 별들처럼 우리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독보적이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대의 흐름에 따라 도태되거나 잊혀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우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며, 끊임없이 빛을 내야 한다. 특히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상 비주얼이 강한 무대공연이다. 화려함, 다채로운 볼거리, 의상, 분장, 그 무엇 하나 빠져선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관객들의 공연문화 의식도 많이 높아졌다. 그냥 해서는 절대 좋은 배우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좋은 배우…이 말은..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관객들에게 좋은 기운과 생각을 전달해주는 좋은 배우 말이다. 옆집 아저씨가 나의 공연을 보고 힘을 얻고 동네 할머니가 나의 노래에 기분이 좋아지고, 나의 한숨에 눈물과 감동이 그려진다면 그건 아마 이미 좋은 배우가 아닐까… 앞으로 나의 길의 방향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마냥 노래와 춤이 좋던 소녀는 지금 한 사람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어릴 적 꿈꾸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물론 20대의 화려했던 과거를 다시 되돌릴 순 없지만, 더 귀한 것을 얻은 셈이다. 하지만 종종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배우이기 때문에 엄마임을 포기해야 할 때와 엄마이기 때문에 배우임을 포기해야 할 때이다. 대부분은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것이다.

첫째를 임신하고 큰 행운이 다가왔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 또한 내 평생 한 번 해볼까 말까 한 큰 역할도 해내며 우먼파워, 엄마파워를 드러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될 뿐이다. 늘어나는 주름살은 우리를 더 나은 배우로 보여주는 메이크업일 것이다.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난 나의 모습은 아마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땀 흘리고 호흡하며, 빛나고 있지 않을까?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 찬란했던 무대 위의 순간도 환상이 되고 찰나로 남지만, 우리 배우들은 그 찰나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 찰나의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열정적이며 그 무엇보다도 빛나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