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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1>
나는 대구 청년예술가다!
글_ 곽보라  전문성악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합창단 음악코치
바람이 분다. 새 바람이 분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예술을 하면 밥 굶는다’ 라는 말이 이제는 옛말이 되어주길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새 바람이 부르는 희망의 찬가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렇다. 나도 대구의 젊은 예술가다.
모르면 용감하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고3 이 되고도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성악레슨을 받기 시작한 학생이 겁도 없이 시창(모르는 곡을 악기 등의 도움 없이 악보를 처음 보고 계이름으로 노래하는 것)시험을 보는 대학에 지원서를 냈다. 시험장에 들어가 응시번호와 인사를 하고 시창을 시작하는 순간, 방 안의 모든 교수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계이름을 모두 읽어내고 나서 나도 그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저 잘했죠?’ 의 의미였다. 시험을 치고 나와서까지도 시창은 첫 음과 끝 음만 맞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끝 음이 맞아서 기분이 좋았던 나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내가 박자와 리듬을 모두 무시하고 정직하게 끝 음만 맞추고 당당하게 나왔다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당시엔 입시를 위해 최적화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마냥 설레고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가두다
개인적인 동기야 어찌 됐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겠다는 마음을 품은 순간부터 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경쟁에 익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자의든 타의든 보다 나은 성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몰아붙일수록 결과는 참담했다.
하루는 누구보다는 낫다는 오만으로, 하루는 누구보다는 잘하겠다는 오기로, 그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보냈다.
애초에 틀린 것이었는데.. 지극히 주관적이라 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해 누가 감히 잘하고 못하고를 나눌 수 있다는 말인가? 헛소리다. 하물며 모두가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하는 게 성악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을 흉내 내면서 나 자신이 가진 독창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엇나간 열정은 결국 건강의 적신호로 이어졌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만하면 잘하는 거 아냐?’ 라는 교만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당연히 그 당시 계획되었던 모든 것은 엎어졌다.
지나고 보니 다 별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했는데, 솟아날 구멍이 다 있었더라. 그저 반추의 시간이었고 오히려 음악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세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니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나’니까 느낄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나’니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러내는 것.
통(通) 하였느냐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을 기억하는가? 그중에서도 특히 여주인공이 난생처음 오페라를 보게 되는 장면.
주눅이 든 그녀에게 남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The music is so powerful’. 그녀는 이내 오페라에 빠져들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눈물까지 흘린다.(영화에서의 오페라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음악이 가진 힘을 경험한다면 말이다. 영화의 여주인공을 보면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청중들의 표정에서 ‘진짜 나와 같이 느끼고 있구나, 이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공감되고 있구나!’라고 느껴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예술가가 다 그렇겠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젊은 예술가들에게

감사하게도 한국에서의 생활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게 지나간다. 어제와 오늘, 자의와 타의로 뒤섞인 선택들에 지쳐서 음악에 대한 설렘이 옅어진다 싶을 때면 소극장 공연을 찾는다. 어릴 적 배우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아직도 옅게 남아있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 이번이 마지막 공연인 양 모든 열정을 폭발시켜버리는 젊은 배우들은 나에게 큰 자극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나면, 오히려 내 안에 무언가 차오른다.
그것은 지나간 나의 무대에 대한 반성일 때도 있고, 그들이 연기를 통해 표출시킨 메시지에 대한 감동일 때도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여, 우리는 서로에게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때론 삶의 무게보다 무거운 창작의 고통을,
때론 예술이 주는 희열과는 달리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되어주기를 선택해준 그대들이 있기에
우리들의 삶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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