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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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에세이
대구 1세대 남성 무용가 김상규
대구 1세대 남성 무용가, 김상규
글_이종희 경희대학교 박사과정, 문화예술학회 대표

한국 현대무용의 개념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 한국 1세대 남성무용가, 대구 최초의 남성무용가, 예술 행정가, 무용 교육자 등 그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다는 건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1945년 광복 이전의 대구무용의 활동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1935년 최승희의 무용공연을 시작으로, 1936년 조택원 도불(渡佛)기념 무용공연이 있었으며, 1944년 7월에 이시이 바쿠 무용생활 30주년 기념공연이 대구공회당에서 마련되었다. 같은 해에 최승희와 조택원도 대구공회당에서 무용공연을 가졌으며, 8․15광복직전에는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 조용자도 대구공회당에서 무용발표회를 가진 바 있었다. 이처럼 대구의 무용계는 8․15전에는 최승희, 조택원,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독무대였다(대구시사, 1995. 김용철, 2014 재인용).

명망가인 안동김씨 자손으로 부친 김병호와 모친 정직영(경상북도 군위군 금구동 134번지)의 슬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상규(1922년 5월 25일생)는 천석군의 부농이었던 환경 덕분에 늘 집안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하였다. 대구 수창초등학교 재학 시절 경험한 조택원과 최승희의 공연은 그의 예술적인 감성을 자극시키는 매개가 되었으며, 춤에 대한 열망을 지니게 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14세(1937년)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김상규는 동경전기학교 및 와세다 대학 법학과에서 3년 동안 수학(박성실, 1997)하며 신무용의 아버지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이 되었다(송수남, 1999).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상규는 법학도로서의 길이 아닌 무용가의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장남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이유로 자신의 전공을 살려 대구 남전주식회사(지금의 한국전력)에 취직을 했다(박민우, 2013). 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그는 낮에는 근무를 하고 밤에는 날마다 회사사무실의 한켠에 책상을 치우고 거기에서 춤 연습을 했으며 제자를 가르쳤다.
그를 찾아오는 학생들의 수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1946년 5월 <김상규 신무용연구소>를 개소하게 되었고, 1949년 사흘간 만경관에서 하루 두 차례씩(오후 1시, 8시) <제1회 개인 발표회>를 가졌다(송수남, 1999). 김상규의 신무용연구소 개소와 첫 발표회는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현대무용’을 전파시키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낯설기만 한’현대무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신무용’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는 있었으나 그는 첫 발표회를 통해 과감히’현대무용’이란 표현을 프로그램 속에(박명용 등, 2001) 사용하였다.

이렇게 첫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끝을 냈으나 다른 한편으로 가족적인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온 집안에서는 “이제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며 질타가 대단하였으며 특히 어머니의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들을 낳아서 판·검사 시키려고 일본에 유학을 보냈지 춤 쟁이 만들려고 보낸 것이 아니다. 내 살아생전에 춤추는 꼬라지는 절대 볼 수 없다”며 공연장은 초상집 같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평소 연습 때는 악사들의 수발은 물론 식사와 음식을 손수 해 오셔서 “우리 아들 공연 잘하게 연주 잘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등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송수남, 1999).

1949년부터 1978년까지 총 13회에 이르는 개인공연을 통해 많은 작품을 안무하고 발표했다. 특히 1979년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회귀(回歸)」라는 작품으로 참가하여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87년에는 그가 집필한 대본「산하」가 작품화(안무 주연희) 되어 제9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참가하여 안무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정진하는 인간상’- 김상규 무용발표회를 본 조지훈 구상 등 시인의 찬사(대구시사, 1995).

1950년’문총구국대 경북지대 조직준비위윈회(무용위원 김상규)’를 구성, 1951년’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무용위원장 김상규)’1957년 ‘경북무용가협회’를 결성하여 대구, 경북지역의 무용가들을 결집시키는 리더쉽을 발휘하며(성기숙, 2010) 예술 경영인으로서의 모습을 지니기도 하였다. 이러한 김상규의 활동은 60년대로 이어지면서 대구·경북 무용계는 김상규의 독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1957년 제2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전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예총)’의 결성으로 무용가들의 조직인’한국무용협회’가 발족되었으며 김상규를 주축으로 한 대구지부의 활동이 시작되었다(대구예총50년사, 2012).

1959년에는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에서 1961년까지 강의를 맡아 학교 교육을 시작한 김상규는 1960년에서 1962년까지 경북대학교사범대학에 강의를 나가며 대구지역의 무용 발전에 무던히 노력을 하였고 실질적으로 대학 강의는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의 무용발전과 확산을 시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강의를 나갔다고 한다. 특히 1966년부터 1988년까지 약 22년 동안 안동교대에 재직(송수남, 1999)하며 무용이 체육교과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춤 단체’카리타스’를 통한 창작무용교육, 무용의 불모지인 안동이라는 지역사회에 춤의 위상을 제고 시키는 역할(성기숙, 2010)을 하는 등 그가 보여준 무용교육에 대한 적극적 활동과 지역사회에 문화적 파장은 실로 큰 성과라 할 것이다.

이후 김상규는 지병이 악화되어 안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점점 악화되어 대구 경북대학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1989년 1월 8일 딸 김소라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1991년에는 딸이자 제자인 김소라 교수가 안동에서 김상규 추모무용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성기숙, 2010).

김상규가 활동한 시대적 상황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유교의 영향으로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남성이었고 또한 부호인 안동김씨 집안의 장남이었다는 점,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던 태생의 배경은 오히려 예술가로 살아가기에 제약이 많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특히 보수적인 가치가 지배하고 문화예술에 대하여 천시하던 지역의 지방특색을 감안할 때 그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김상규는 현대무용가로서의 개척정신과 무용교육자로서의 헌신으로 요약된다.” – 성기숙, 2010
김상규가 바로 신무용기의 현대무용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신무용기의 창작품 형태와 그 정신을 끝까지 고수했던 현대무용가 김상규의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 문애령, 2003
“최승희, 조택원의 신무용 개념과 달리,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개념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아야 한다” – 이숙재의 주장/ 송수남 1999 재인용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무용의 탄생(선구자, 또는 개척자)이라는 크나 큰 족적을 남기면서 무용사조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으며, 대구지역의 최초 남성무용가로서 지대한 공헌은 몰론 그의 박식하고 논리 정연한 무용철학 및 미학적 관점에서 무용에 대한 정의와 개념을 규정하였으며, 우리나라의 무용실정에 맞게 체계화하였다. 이러한 무용관을 교육에도 적용하여 교육무용으로서 단순한 실기위주의 도구로만 전락할 수 있는 무용교육을 전인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완전한 인격체를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으로서의 충분한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 현대무용단인 ‘대구시립무용단’의 창단으로 많은 현대무용가를 배출하여 대구를 현대무용의 메카로 현대무용의 허브로 자리매김한 그의 무용사적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재산과 모든 인생을 건 한 무용가, 대구·경북에 무용사적 문화사적 교육사적 발자취를 남긴 남성무용가, 그는 김상규(1922 ~ 1989)이다.

<참고문헌>
  • 김용철.(2014). 남성무용가 김상규의 무용철학과 교육사상. 영남의음악과 무용의 전통을 찾아서. 계명한국학총서31.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계명대학교출판부
  • 대구시편찬위원회.(1995). 대구시사 제5권, 408~412.
  • 문애령.(2003). 표현주의 현대무용의 한국도입과정에 대한 고찰. 대한무용학회논문집 제36권, 21~40.
  • 박명용, 김석환, 이승복, 이진우, 정순진, 김상열, 임현선. (2001). 현대 사회와 예술. 서울: 푸른 사상사
  • 박민우. (2013) 김상규 생애를 통한 무용사적 고찰. 석사학위논문.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대구
  • 박성실. (1997). 한국근대무용사에 나타난 김상규의 춤 연구: 교육자적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울
  • (사)한국예총대구광역시연합회[대구예총]. (2012). 대구예총50년사. 대구: 동 연합회.
  • 성기숙, (2010). 춤의 전통과 정신. 서울: 민속원.
  • 송수남. (1988). 한국무용사. 서울: 금광.
  • 송수남. (1999). 한국 근대춤 인물사 : 최승희에서 김보남까지. 서울: 현대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