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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미술장르에서의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
글_이우석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사무국장

새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말 그대로 밑에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문화정책의 혁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문화정책은 문화에 대한 개념과 원칙 그리고 문화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정책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이전 정부들처럼 문화정책이 개혁이나 혁신의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정책의 개념은 다양하지만 진정한 문화 정책의 개념은 1968년 유네스코가 개최한 원탁회의에서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원탁회의에서 문화정책은 한 사회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물적, 인적자원의 최적 이용을 통해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위나 부작위의 총제를 의미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정책은 그 기조와 방향에 따라 무간섭주의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요청하는 유형으로 나뉜다. 강력한 정부주도형 문화예술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유형으로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스위스와 프랑스다. 지방자치단체 주도형으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는 연방정부에 문화 관련 부서가 없을 뿐 아니라, 연방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에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민간단체 주도형의 전형적인 나라는 미국이며,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의 중간노선은 영국이다. 영국의 문화정책은 문화부문 간의 다른 요소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중앙과 지방 정부 행정수단의 총체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정부주도형에 해당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검열과 통제가 폐지되며 자유주의 정책으로 흘렀다. 그 후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제정되고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문화 예산이 비로소 정부 예산의 1%를 넘어서게 되며 국가가 주관한 문화정책이 생겨났다.

새로이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은 사람 중심·국민중심의 문화정책이 되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블랙리스트 같이 문화예술 근본이 되는 독립성·창의성·다양성을 훼손하는 낡은 과거를 확실히 청산하고, 국민 중심의 새로운 문화행정체계로 완전히 혁신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문화행정원칙의 준수
문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행정의 원칙을 준수하겠다며 이를 위한 정부-문화예술지원기관-문화예술계 간의 공정성 협약 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문화정책 공약 중 본인이 가장 지지하였던 부분이다. 대선 과정에서 적폐청산을 핵심 모토 중 하나로 내세운 만큼 출범 초기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과거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는 데 집중하고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집중하였으면 한다.

예술인의 창작 자유를 확실히 보장하고 복지제도를 포함해 창작의 여건을 전폭적으로 강화하는 정책기조 아래 공약 사항들이 점검되고 실행 계획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문화예술지원기관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문화예술 지원심사의 투명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문화예술 지원심사를 비롯해 문화행정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본다.

문화정책에서 실적 위주나 계량적 수치 산출은 무의미한 것이나, 한 번이라도 문화정책 기금관련 기획서를 써본 사람이라면 정부에서 얼마나 수치에 연연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다. 예술활동과 행정활동은 엄연히 다른 영역의 것이다. 예술을 다른 행정과 같은 기준으로 측정하고 운영하는 그 순간 문화정책의 의미 역시 상실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술인 창작·복지 지원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의 시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기본 생활의 안정이 필요하다. 작가가 일상의 문화예술 생태에 기여할 수 있게 참여 폭을 넓히고 또 문화산업 생태계를 공정하게 만드는 방법은 최저 생활의 기본적인 보장이다.

2003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등의 입장료에 일정액을 부과하던 기금 모금 방식이 위헌 판결을 받은 뒤 2004년 5273억원에 달하던 문예기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바닥을 드러낸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고 출연을 확대하고 체육·관광기금을 전출하는 방안이 이야기 되고 있다고 한다. 재원의 보전과 함께 그 사용에서도 안정적이고 간소화된 업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부주도형 문화 정책을 실현하고 있는 프랑스나 스위스와 같이 간단한 증빙으로 기금을 위한 예술 활동이 아닌 예술작업을 위한 기금의 출현으로 작가가 예술 활동에 몰두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시스템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선발 과정에 통과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통과했더라도 사후정산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또한 나름의 문화정책지원의 진화이겠지만 시스템마저 불안정하게 수시로 바뀌어 과연 누구를 위한 진화인지 모를 지경이다.

또한, 예술인을 위해 지역 유휴공간을 작업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창작 주거 인프라를 조성하고, 예술교육·생활문화·지역 문화재생사업과 관련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부분도 좀 더 적극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의’엥테르미탕'(Intermittent) 같은 예술인 실업급여제도 도입도 추진된다고 들었다. 엥테르미탕은 공연·영상 분야의 비정규직 예술인에게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예술인이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가 의무화되고, 경력·활동 유형에 따른 표준보수지급 기준도 마련되고 이에 따른 실업급여의 지급은 작가의 최소한의 기본권이라 생각된다. 예술인들에 대한 긴급생활자금 지원, 상해·재난 지원 등 긴급지원시스템의 구축도 구체적으로 운용되었으면 한다.

지역 문화 복지 구현

모든 지역민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역 문화 복지를 구현하겠다는 정책 구상도 구체화하였으면 한다. 본격적인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지역문화가 꽃피울 수 있게 지역문화 분권의 실질적인 지평을 여는 게 필요하다. 통합과 분권의 문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자율성을 높이는 분권형 문화균형 전략을 위한 문화정책에 대한 장기구상이 가동되어야 한다. 국내 차원에서는 심각한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문화진흥기금 확충, 폐 산업 시설·노후건물·지하상가 등을 활용한 지역 문화 재생사업 지원, 문화도시 지정 활성화 등도 검토가 필요하다.

유럽에는 ENCC(European Network of Cultural Center)라는 2,500개 이상의 유럽문화센터를 연결하는 단체가 지역 문화를 이끌고 있다. 우리도 단위 문화센터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화해 가는 연합체를 만들어 가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지역민이 가지게 될 것이다.

지역문화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문화 분권의 실질적 실현과 구체적인 방안으로 문화·체육·관광 지출비에 대한 세액공제제도 도입,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의 사용처 확대 및 지원금액 현실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 동네 생활문화 환경 조성 및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 등이 제시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방안들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작가지원의 지역연계도 만들어져야만 한다.

공정한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정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주요 문화-관광 자원인 문화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보존과 활용 정책도 추진 바란다.

문화 예술 인식 고양
2005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기념 순회전`에 출품된 10억 원대의 조각 작품이 파손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뉴턴이 땅에 떨어지는 사과를 추처럼 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1969년 조각 작품「뉴턴에게 경의를 표함」의 추 부분이 관람객 중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전시를 주최한 측은 경종을 울리기 위해 떨어져 나간 추 부분과 파손된 작품을 그대로 전시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문화예술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이다.
<사진 > 관람객의 부주의로 손상된 「뉴튼에게 경의를 표함」이라는 작품.
전시를 주최한 마이아트링크측은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 떨어져 나간 추부분과 파손된 작품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2005년1월21일자)
추가 떨어지면서 우리의 자존심도 함께 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음악이나 무용 등 다른 공연장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거로 안다.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그 측면만 본다면 우리나라는 후진국에 머무는 셈이다.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문화예술의 인식 고양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일반인에게는 더욱더 자주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확대하고, 학생들에게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문화예술 감상과 해석의 교육도 보강하여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진정 21세기에 4차, 5차 산업을 위한 진정한 대비라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외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개인적으로 부러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드라마 속 그들은 집의 부유와 상관없이 훌륭한 예술 작품들이 벽에 아름답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예술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문화예술을 특별히 잘 아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일들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충분히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는 가정에서도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문화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재작년 본인의 프랑스 파리 개인전에 평범해 보이는 모자가 방문했다. 아들은 어림잡아 일고여덟쯤 되어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종이 한 장을 봉투에 넣어 주었는데, 아들은 그 봉투를 들고 와서 나의 작품 중 하나를 직접 골라 구입했다. 봉투에는 가짜 수표가 들어 있었지만,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림을 사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그 작품 대금은 나중에 어머니가 지불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운 문화가 그들에게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문화와 예술을 감상하고 공유하고 그 소중함을 알고 가질 수 있는 문화다. 지금도 가끔 나는 그 프랑스 어린이가 건넨 가짜 수표를 꺼내 보며 미소 짓곤 한다. 나이가 들어 본인의 회고전을 하게 된다면 그 수표를 꼭 함께 전시하고 싶다. 수표가 상징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어떤 곳의 예술가도 녹록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술을 향한 큰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열정 가득한 예술가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정책으로 인해 더 크고 아름다운 문화 예술을 꽃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본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에 바라는 문화정책에 관한 글을 쓰며 국내외 문화정책에 대한 자료를 심도 있게 찾아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무척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대구문화재단에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