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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2>
삶의 축적과 이동
글_이민주 미술작가
방천아트 대표
어두운 밤, 바다 위에서 최소한의 생존 수단인 뗏목에 몸을 싣고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는 작은 불빛을 밝혀본다. 다섯 번째 작업실 이동을 준비하며 작가로서의 삶과 이동, 그리고 그간 쌓인 작업과 짐들을 대구예술발전소의『대구예술생태보감』전시에서 바다 위 최소한의 생존과 항해의 단위인 뗏목으로 표현해 전시장에 설치 해 두었다. 작업실과 작업들이 나와 함께 쌓여가며 이동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두고 나니 작업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다.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작업과 삶이 조금씩 유연해지고 서로 섞여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때론 쉬어가거나 때론 속도를 내는 법을 배워간다.
뗏목;삶의 축적과 이동 : 작업과 짐, 혼합재료, 3mx2.5mx2m_2017
1. 나무지우기 시리즈-1_캔버스 위 아크릴_90x161_2008
2. 나무지우기 시리즈-2_캔버스 위 아크릴_90x161_2008
먼저 작업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내 작업의 출발점은 추상적인 페인팅들이었다. 행위와 물성을 통해 나아가는 회화성에 몰입했던 적도 있었지만, 곧 나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마주했다. 그 공허함의 답을 찾기 위해 나를 마주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의 성향을 발견해 나갔고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생각하며 그 공허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작업을 잠시 쉬었던 시기가 내게는 변화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준비의 기간이었다.
추상적인 페인팅이 주변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것은 「urban life」연작이었다. 이 시리즈는 디지털 작업과 설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된다. 이 실험을 통해 페인팅과 디지털 작업, 설치에 대한 감각과 접근 방법의 차이, 풀어 낸 이야기가 갖는 감정적 차이에 대해 몸소 느끼게 된다.
1. urbanlife20100301, 116x91_acrylic on canvas, 2010
2. memory, 가변설치, 디지털프린트_2011
3 비닐맨션, 가변설치, 비닐 이름표 등, 2011
안심상회, 버스 프린트 위 아크릴, 120x 102, 2014
위로의 방, 영상과 혼합재료, 25×18, 2014
회화의순간,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4
디지털 드로잉 작업과 설치 작업은 본인의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작업의 경우는 드로잉과 페인팅의 복제, 이미지의 변형, 오브제와의 배치가 결합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결과물이 아닌 현실의 나에게 맞닿아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작업으로 페인팅, 설치 등의 이미지가 층층이 쌓이면서 사진과 판화의 개념을 갖게 되었고 에디션이 가능한 작업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의 페인팅에 대한 표현방식은 원본과 거기에서 파생된 작업이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복제하면서 자유롭고 폭 넓어지고 있다.

무거운 것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보다 가벼운 것으로 층층이 쌓여가는 선택적 레이어의 개념이 나에게는 더 알맞았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성을 좀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설치작업으로 이어졌다. 설치작업에 있어 과거의 추상적인 페인팅들은 내게 좋은 재료와 토대가 되어 주었고, 그 위에 이야기와 감성을 쌓기 시작했다.

pupup, 디지털프린트, 42×30, 2014
1. Bus, 캔버스 위 혼합재료, 30×25, 2014
2. Money and, 캔버스 위 혼합재료, 3025, 2014
예술 공간 ‘거인’에서의「둥지」작업은 나와 공간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게 된 계기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조형적으로 매체의 나열이 아닌 하나의 완전한 설치로 이뤄진 의미도 있지만 그 행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났다. 나는 그곳의 전시실 어느 공간 사이로 새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발견했다. 거기에 영감을 받아 그곳 주변의 물품들과 유년기의 추억이 있는 물건들로 나만의 둥지를 만들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작가라는 존재가 희미한 빛에 의존해 어디론가 자꾸만 떠나는 작은 새 같다는 생각에 ‘새’라는 존재에 완전히 몰입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전시에 사용했던 오브제들을 다시 제 자리에 돌려주면서 내가 가진 것과 주변의 것들을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둥지,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5
그 후 설치 작업에서 나는 내가 무언가가 되는 설정을 종종 하는데, 마치 연극이나 한편의 드라마를 쓰는 것처럼 흥미롭다. 한 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그리거나 표현하지 않고 시리즈별로 작업방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가로서 만족감을 얻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내 머릿속과 주변에 넘쳐난다. 그리고 나는 과장되지 않게 그것들에 진심을 담아서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제주도 다빈치 박물관에서 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품은 나에게 장애물을 넘는 작은 아치교가 되어주기도 했고, 작업실의 작은 간이 의자들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다리가 되어 나의 삶의 이동을 표현해 주기도 했다.

현재 작가로서의 활동 외 비영리예술단체 ‘방천아트’의 대표로 있다. 여기서 나는 전시기획과 아트마켓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 기획이나 행정 등에 대해 배우거나 한 적은 없지만 글을 쓰고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도상화 해내거나 뭔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원래부터 즐겨왔기 때문에 크게 힘들진 않았다. 이 활동으로 파생된 것들이 작업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되거나 어떤 행위가 만들어내는 결과나 에너지가 될 수 있기에 이런 활동들 역시 작가로서 살고 있는 현재의 내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다.

효목동, 예술발전소 작업실 모습, 2016
지역의 미술작가로 활동하며 아트마켓을 운영하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시작은 방천시장 B커뮤니케이션에서의 개인전이었다. 유행처럼 번지는 플리마켓들이 아니라 지역의 미술작가, 공예작가들이 참여하는 아트마켓을 만들고 싶었고 함께 자리하고 싶었다. 지역 작가들의 그림을 시작으로 그림이 들어간 상품과 미술 교육, 현장체험용 상품, 그리고 예술적 가치가 담긴 소품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어보고 준비했었다. 하지만 거리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내가 생각하던 아트마켓과 현실의 ‘방천아트마켓’간의 거리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의 ‘방천아트마켓’은 그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했던 시기를 지나 김광석 길과 방천시장 사이에 안착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아트페어보다 좀 더 가볍고 친근하며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아트마켓을 토대로 미술시장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보고자 방천아트마켓의 운영진인 미술작가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가고 있다.

미술작가, 공예작가들과 함께 아트마켓에서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에서 벗어나 참여하는 작가들을 위한 전시를 자체적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거리의 상품을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 작품화 시켜보거나 반대로 예술 작품을 상품화 시켜보기도 하는 등 유연한 시도를 했다. 또한 아트마켓은 그 존재 자체가 전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16년 문화예술회관의 ‘살며 예술하며’ 단체전에 방천아트마켓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참여 작가들 개개인의 작품으로 전시가 될 수도 있지만 마켓에 참여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삶과 마켓의 이야기 자체가 전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ArtXDesign, 방천아트마켓 기획전시 방천난장, 2016
방천아트마켓 전시 2016 살며 예술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아트페어와 아트마켓은 닮은 듯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술시장의 성격이 강한 아트페어는 예술작품 위주의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아트마켓은 예술작품 뿐 만 아니라 미술작가, 공예작가 또는 더 나아가 미술계와 무관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가벼운 소품이나 예술작품에서 파생되어 나온 소품까지 다양하게 거래된다. 아트페어의 벽은 높다. 예술가들에게도 높고, 시민들에게도 높다. 그 높은 벽을 조금 허물어 아트마켓은 예술이라는 것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그 벽에 창문을 놓아주고 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계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같이 성장할 있고 작가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언젠가 사람들이 공원을 산책 하며 커피 한잔을 들고 아트마켓에 들려 지역 청년작가들의 그림을 한 점 구매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작업과 여러 활동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삶과 작업의 조화, 작업과 그 외의 다양한 예술 활동의 균형이었다. 그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채찍이 된 건 다른 게 아니라 ‘현장’과 ‘경험’이었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현장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속에서 얻은 것들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누구에게도 배울 수도 없으며 같은 환경 속에 놓였다 해도 모두가 똑같은 것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내 삶에서 균형을 잡으며 작업, 전시, 기획, 미술교육, 축제, 아트마켓 등의 다양한 일들을 따로 또 같이, 때로는 한꺼번에 모두 하기까진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필요했다. 행복하게도 좋은 동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서로 다양한 견해를 나누며 해나가는 작업은 정해진 룰이 없어서 더 흥미로웠다. 나 역시 나보다 어리고 활동의 기회가 적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 노력했다.

이런 계기로 지역의 청년작가들을 위해 전시 기획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아트마켓에 참여하는 미술작가, 공예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뿐만 아니라 마켓엔 참여하지 않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들의 전시인 ‘정원의 귀환’, ‘방천청년아트페어’가 되었다. 특히 ‘방천청년아트페어’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지역의 청년작가들과 함께 작가가 주최가 되는 아트페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어쩌면 화랑이나 화상, 기획자분들은 본인의 입지를 침범한다고 싫어할지도 모르겠고, 나의 행위들을 오해 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입지가 아닌 다른 곳을 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었던 ‘방천청년아트페어’의 방향은 기존의 아트페어보다 너무나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방천이란 동네의 특색이 묻어나는 축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비록 작가들 사이에서 기획 등의 다른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작가란 이미지의 희석을 우려하며 꺼려하거나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이미지가 작가의 이름처럼 떠오르는 것이 가장 명확한 작가로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양한 삶과 작업의 이야기를 엮어 풀어냄으로써 다각도에서 나를 볼 수 있게 하는 입체적인 작가로 성장하고 있다.

1. 기획전시 포스터
2. 방천청년아트페어_2016
예전의 나는 설자리가 없는 미술 작가였지만 내 스스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제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삶을 사는데 있어 경제적인 요건 역시 중요하다. 많은 작가들이 서로의 경제적 상황을 걱정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작업 활동은 그림을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여유가 있나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또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작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예술 강사 활동으로 인하여 경제적 자율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면서 내가 최근 작업을 해 나가는 태도는 하고 싶은 작업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방향이 되었고 이로 인해 조금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고 있다.
1. 화가와 예술가, 디지털프린트, 가변설치, 2016
2. 화가와 예술가,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6
이와 같이 예술가의 사회적인 다양한 활동은 작업적으로도 많은 긍정적 요소를 안겨다 준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함에 있어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평소보다 바빠진다는 점이다. 시간에 쫒기고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집중과 휴식을 적절히하며 동시에 여러 일이 가능하였고 그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치교, 각목 끈 비닐등, 310x110x90, 2015
이런 나의 다양한 활동들이 작업으로 소화되어 나오기 시작했던 지점은 ‘아치교’, ‘move’로 연결된다. 내가 지내 온 둥지에서 나와 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작업과 삶을 해쳐 나가는 것이 막막한 황량한 대지 위에 홀로 서있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거기서 내가 필요한 것은 차례 차례 놓인 계단을 밟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 위험한 장애물이 나왔을 때 그 장애물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품인 아치교에서 영감을 받은 ‘아치교’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후 나의 설치작업은 모두 분리와 재설치가 가능하며 따로 또 같이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move, 수집품, 작업물 등 혼합재료, 높이 250, 2016
그 이유는 작업이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필요한 무언가 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꼭 어디론가 자꾸만 떠나는 여행자 같았다. 여행자에게는 짐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분리와 이동, 재설치가 가능하며 단일의 존재로도 존재성을 가지며 모여서도 이야기가 가능한 작업의 방식은 내가 필요로 하는 실질적 현재의 상황과 닮아있다. 그리고 장애물을 건너 나의 작업들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는 ⌜move⌟에서는 쌓여가는 작가로써의 이야기와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아 삶의 축적과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뗏목을 매개체로 한 작업 역시 삶의 축적과 이동을 이야기하는 연장 선상에서 이뤄졌다. 이 일련의 작업들로 나는 높이 올라가는 방향보다는 멀리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하게 됐다.
,life is, 영상, 수집품, 작업물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6
삶에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들을 적절히 취하고 적용하며 재밌는 것들을 실험하고 복합적으로 일을 해 나간다. 나를 표현해 나열해나가고 그것들을 뒤섞어본다. 한때 나의 많은 행위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었고, 이해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어떠한 글로도 나를 설명할 수가 없고 그나마 나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진행 중인 작가이고, 앞으로 해 나갈 것이 많으며 매우 복합적인 삶을 살고 그것을 그대로 작업적으로 표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며 나는 새가 되었고, 다리가 되었고, 뗏목이 되었고, 움직이는 성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들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또한 이러한 글을 적는 시간을 통해 지금까지의 나의 활동을 스스로가 돌아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다.